‘군필’이 기업 채용조건에 들어갔던 이유를 아시나요?
[정치톡] 전쟁을 거부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대체복무제’가 끝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자라면 누구든 피할 수 없는 징병.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현역이냐, 공익이냐, 또는 면제냐를 가르는 신검의 문턱에서 '내가 분단국가에 살고 있구나' 생각을 하게 되지요. 대개의 경우에는 '내 삶'의 영역에서 처음으로 마주하는 분단의 현실일 것입니다.
그렇게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의 입에서는 믿기 어려운 온갖 무용담이 나오기도 하고 "내가 나라를 지키고 왔다"는 자부심을 은연 중에 드러내기도 합니다. 대화의 상대가 같은 현역필이라면 '누가 더 고생했나' 경쟁으로 비화하는 경우도 흔하고, 미필자에게는 "군대 갔다 와야 남자다", 여성에게는 "나 멋지지" 등 남성성의 과시로 이어집니다. 또 병역비리가 뉴스에 오르내릴 때면 그 어느 때보다 분노를 터뜨리며 험한 말을 마구 쏟아냅니다.
그 심리를 말로 다 설명할 수 없겠으나, 아마도 일생의 귀한 청춘을 나라에 빼앗긴 대가로 국가공인 '정상국민' 자격증을 얻어왔다는 자기 나름의 위안이 아닐까요.(참고로, 기자는 '병역필'입니다)
한국사회에서 '군대'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표현이 일상적인 언어로 사용될 정도로, 분단체제를 기반으로 강고하게 성역화된 공간입니다. 또 국가는 병역 여부에 따라 '남'과 '여'의 사회적 정체성을 규정하고, 국민을 등급화해 차별대우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지요.
'병영' 대신 '감옥'을 택한 2만여 명…'양심적 병역거부자' 인정한 헌법재판소
하지만 이제 그러한 모습도 기억의 저편에 묻어둬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2018년 6월 28일, 헌법재판소는 한국사회의 금기를 깬 역사적인 결정을 내립니다. 바로 '대체복무'를 병역의 종류로 포함하지 않고 있는 병역법 5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헌재는 내년 말까지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하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동안 '비국민' 취급을 받았던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군사훈련을 전제로 하지 않는 대체복무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비록 헌재가 정당한 사유 없는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규정이 담긴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해선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평화적 신념이나 종교적 가르침의 이유로 입영 또는 집총을 거부하는 행위를 헌법상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 실현으로 처음 인정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큽니다.
이러한 헌재의 결정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는 제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살인훈련'을 받지 못하겠다며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감옥에 가야 했으며, 처벌을 넘어 차별의 대상으로 사회적 냉소를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고민이 '대체복무제'를 통한 권리 보장으로 마침표를 찍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러기에는 이들이 한국사회에 던진 화두가 너무나 큽니다. 식민지배와 분단·전쟁·독재로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지금까지 1만 9천여 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병영 대신 감옥행을 택했습니다. 이들의 저항은 우리가 당연시 여기던 국가의 강제동원 체계를 다시 바라보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군사정권 탄압에도 이어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저항
사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세계사적으로 그 연원이 오래된 일이라고 합니다. 특히 근대 이래 보편화된 징병에 대한 저항은 한국에서도 나름의 역사성을 띈 채 존재해왔지요.
병역거부와 관련된 한국 최초의 사례는, 근대적 징병제를 강요당한 일제식민지 시기에 처음 나옵니다. 1939년 '여호와의 증인' 조선인 신도 38명이 신사참배와 동방요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구속되는데, 조사 과정에서 '전쟁을 반대한다'는 평화주의적 신념을 드러냅니다. 한국에서는 항일투쟁의 맥락에서 병역거부 역사의 시작으로 평가하는 사건입니다.
일제 말기에는 식민지 민중의 전면적인 병역거부가 이뤄집니다.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 이후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할 때까지 각종 동원과 징병을 추진했지만 많은 조선인들은 이에 불응하면서 산 속으로 몸을 숨기곤 했지요.
해방 이후 1949년 병역법을 통해 징병제가 다시 시작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처벌이 시작됐습니다. 특히 1961년 5.16 쿠데타로 박정희가 집권한 뒤로는 "입영률 100%"라는 사회적 목표를 위해 병역거부자들을 마구잡이로 강제입영시켰으며, 유신 이후에는 반복·가중처벌로 탄압의 강도를 높여갔습니다. 1973년 박정희는 "앞으로 법을 만들어서라도 병역을 기피한 본인과 그 부모가 이 사회에서 머리를 들고 살지 못하는 사회 기풍을 만들도록 하라"고 명령합니다.
이후 병역거부자들은 '비국민적 행위자'로 낙인이 찍혔으며 뺑소니범, 유괴범, 마약사범과 같은 '6대 사회악'으로 규정되기도 했습니다. 박정희는 자신의 집권 유지를 위해 '징병제'와 '군대'를 성역화해 온 국민을 일상적인 전쟁동원 체제로 몰아세웠으며, 심지어는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남성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없도록 '병역필'을 기업 채용조건에 포함시키기까지 합니다. 박정희의 집권유지를 위한 '군사주의'가 온 사회에 뿌리깊게 새겨진 것입니다.
끝내 '평화'로 피어난 '양심'들
그러한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투쟁에 평화적 의제가 결합하기 시작합니다. 7~80년대 '교련교육 반대', '전방입소교육 거부' 투쟁은 직접적인 병역거부 운동은 아니었지만, 평화적 신념에 의한 저항의 목소리였습니다. 민주화 이후 1991년에는 박석진 일경을 비롯한 현역 군인·전경들의 '양심선언'이라는 형태로 복무거부 선언이 이어집니다.
특히 2001년 오태양 씨의 (비종교적) 양심적 병역거부 공개 선언은 대중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후 종교적 이유 외에도 다양한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로 이어지는 물꼬가 됐습니다. 반전평화주의는 물론 생태주의, 여성주의, 성적 정체성 등을 이유로 군대 대신 감옥에 가겠다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온 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예비군 훈련을 거부하는 움직임도 생겨났죠.
군대에 기반한 국가안보 이데올로기.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기 시작한 사람들. 이 현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면서 법원의 판결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2002년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으로는 최초로 헌재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이뤄졌고, 2004년 서울남부지법 이정렬 판사에 의해 최초로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이 나왔습니다. 헌재가 위헌여부 결정을 미루는 사이 하급심에서는 83건의 선고가 쏟아지게 되지요.
사실 그동안 유엔인권이사회를 비롯한 국가인권위원회 등 국내외를 막론하고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라는 권고는 숱하게 있었지만, 국내적으로는 분단상황에 따른 안보논리가 더 강력하게 작동해왔습니다.
하지만 크게 보면, '촛불정권'이 들어선 뒤 한반도 평화체제의 안착이 가시권에서 논의되고 남북간 군비통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시점에 이번 헌재 결정이 나왔다는 데에 더욱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북간의 긴장이 높아져 안보논리가 기승을 부릴 때면 '병역거부'라는 말은 더더욱 입에 올리기 힘들어지니까요. 그만큼 한국사회가 '냉전'을 넘어서 '평화'를 발판으로 할 때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겠죠.
본격 시작되는 '대체복무제' 논의, 완성이 아닌 시작
"개인의 '양심'에 국가가 잣대 들이대지 말아야"
이제는 내년까지 대체복무제를 만들어야 하는 임무가 국회로 넘어왔습니다.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전해철·박주민·이철희(발의 순)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3건의 대체복무제 관련법안(병역법 개정안)이 계류돼있는데요, 입법과정의 주요 쟁점으로는 ▲대체복무 심사 및 관리 주체 ▲대체복무기간 ▲대체복무 형태 등이 거론됩니다.
시민사회에서는 △대체복무 심사 및 관리 주체의 군 독립 △비징벌적 대체복무기간 △현역·예비군 복무 중 대체복무 전환 가능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현재 구속 수감 중인 202명(미결수 1명 포함)의 즉각 석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구속 상태를 유지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이죠.
헌재 판결 다음날인 지난달 29일 가석방된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있는데요, 김진만(31.남) 씨는 2014년 밀양 송전탑 투쟁에 대한 국가의 폭압적 대응을 목격한 뒤 '평화적 신념'에 의해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지난해 4월 18일 구속된 바 있습니다. 김 씨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왔습니다.
"지금 이뤄지고 있는 대체복무에 대한 논의는 양심적 병역거부의 본질적 의미에서 벗어나고 있어요. '어떤 형태의 대체복무가 돼야 하냐'는 수준에서 치고받는 논의가 헌재 판결의 취지와 상반되는 입법으로 이어질까 걱정입니다. 단순히 병역거부에 대응해 이뤄지는 논의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개인의 '양심'에 국가가 잣대를 들이대지 않도록 포괄적인 수준에서 한국사회 전체의 논의가 시작돼야 합니다."
이제 활발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할 시점입니다. 물론 국가의 강제동원에 오랫동안 저항해온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발자국이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분단적폐' 청산과 궁극적인 '양심과 신념의 자유' 실현으로 나아가는 상징적인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톡’은 정치팀 기자들이 여의도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이슈의 전말을 옆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풀어내는 기사입니다.
기사 : 신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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