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과 트럼프의 ‘뜨거운 악수’ : 70년 적대 끝낸다
난관 끝 탄생한 북미공동성명, ‘한반도 평화’ 새 시대로 첫걸음
한반도 분단 이후 70년에 걸쳐 적대관계에 있던 북한과 미국. 두 나라 정상의 '뜨거운 악수'로 마지막 냉전의 벽이 허물어지는 대전환이 시작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만나 역사적인 첫 악수를 나눴다. 두 정상은 정상회담을 통해 공동성명을 합의하고 적대관계 종식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첫 걸음을 뗐다.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센토사'섬은 '평화와 고요'라는 뜻을 담고 있다. 싱가포르는 지난 2015년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대만의 마잉주(馬英九) 당시 총통의 양안회담이 열린 나라이기도 하다.
70년 적대관계, 첨예했던 북미대결
북미 두 정상의 만남은 작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그만큼 적대관계가 뿌리가 깊고 첨예했기 때문이다.
1945년 해방과 동시에 그어진 38선, 1948년 현실화된 남북 분단, 그리고 1950년부터 3년간 막대한 희생 속에 처절하게 벌어진 한국전쟁 이후 북한과 미국은 철저한 앙숙 관계가 됐다. 이후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 1969년 미 정찰기 격추 사건, 1976년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 등 양국 간 정치군사적 대결전은 숨막히게 이어져 왔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냉전도 종식됐지만 한반도는 오히려 긴장이 격화돼 왔다. 1993년 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 대결은 전쟁 위기로 치달을 만큼 첨예해졌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북미관계에는 잠시 숨통이 트였다. 그해 10월 북한의 조명록 차수가 미국을 방문했고 '북미관계 개선', '종전'과 '평화체제'를 표방한 북미공동선언이 나왔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고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도 추진됐다.
하지만 네오콘을 등에 업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북미관계는 다시 최악으로 치달았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고 2002년 10월 다시 핵 위기가 촉발됐다. 6자회담을 통한 협상과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를 담은 9.19 공동성명 합의(2005) 등 유화 국면도 있었으나 얼마 가지 못했다. 그 이후 북한은 2006년부터 2017년까지 6차례 핵실험을 단행했고, 2017년 12월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세기의 악수' 대반전 일궈낸 트럼프-김정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도 살벌한 대결을 펼쳐왔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서로를 "꼬마 로켓맨",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비난했고 "화염과 분노"(트럼프), "핵 단추"(김정은, 트럼프)와 같은 위협적 언사가 오고 갔다. 미국의 대북 군사옵션도 제기되면서 전쟁 위기감은 증폭됐다.
하지만 두 정상은 대반전을 일궈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우방이 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실감 나는 극적인 장면이었다. 두 정상은 오랜 적대관계를 뒤로 하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맞잡았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악수는 마지막 남은 냉전 지대에서 전쟁과 대결이 막을 내리고 있다는 상징이었다. 그야말로 '세기의 악수'로 불릴 만하다.
이번 회담을 통해 두 정상은 신뢰구축의 디딤돌도 마련했다. 약 140분에 걸친 단독-확대 회담, 이어진 업무오찬과 산책에서 두 정상은 가감없이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공동선언 서명식에서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한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김 위원장과 함께해 영광"이라고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똑똑한 협상가"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두 정상의 만남은 과거 세계사적 회담들에 비견된다. 1972년 2월 적대국이었던 중국을 방문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미중정상회담은 7년 뒤 미중수교로 이어지며 '데탕트' 시대를 주도했다. 1986년 10월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군축협상은 냉전종식의 출발점이 됐다. 1989년 조지 H. 부시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몰타 회담을 통해 '냉전 해체'를 선언했다.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
물론 북미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미국의 대표적 강경파인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리비아식 해법'을 거론하자 북한이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담화를 통해 강력 반발하면서 갈등도 있었다. 이어진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담화를 빌미로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 회담 취소 결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온갖 우여곡절을 극복하고 두 정상은 회담을 성사시켰다.
김정은 위원장은 단독회담에 앞서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길은 아니었다"며 "우리한테는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기도 했는데,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했다.
두 정상의 만남이 성사되기까지는 남북의 주도적 노력도 있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분 봄바람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4.27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선언으로 이어졌다. 남북 정상의 만남은 '한반도 평화 시대'의 개막을 선언하는 동시에 북미정상회담의 길을 열었다. 또 북미정상회담이 취소됐을 때 남북의 두 정상은 다시금 판문점에서 만나 정세를 재반전시켰다.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미국으로 파견,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따뜻한 편지였다"고 화답했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첫걸음, 북미공동성명
북미공동성명은 이처럼 수많은 난관 끝에 탄생했다. 공동성명에는 과거의 적대관계를 끝내고 미래의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두 정상의 의지가 담겨 있다.
두 정상은 공동선언에서 "역사상 최초"로 열린 이번 회담이 "수십 년간의 긴장과 적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데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또 "(양국의) 새로운 관계구축이 한반도와 세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게 될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 받으며 평화·번영의 시대를 함께 열어 나가기로 했다. 공동선언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을,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 또 ▲평화와 번영을 위한 양국 국민의 열망에 따른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노력 동참 ▲전쟁포로(POW), 실종자(MIA) 송환 등을 합의했다.
공동선언에 담기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미사일 엔진 실험장 폐쇄를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시계는 빠르게 움직일 전망이다. 두 정상은 공동선언에서 합의를 완전하고 신속하게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를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북한의 고위급 인사가 빠른 시일 내에 후속 회담을 개최한다는 점도 명시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평화체제 구축의 핵심 과정인 '종전선언'도 가시권에 올려 놓았다.
두 정상의 만남은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재차 밝혔다. 또 적절한 시기에 평양을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세기의 만남'은 계속된다.
- 기사 : 최명규 전문기자
- 민중의소리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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