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낙태죄’로 ‘낙태’를 막아야한다는 종교계, 정말 그럴 수 있을까?

in #kr6 years ago

헌법재판소가 형법 269조1항 등 낙태죄 관련 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뜨겁다. 여성 및 인권 단체 등을 중심으로 여성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낙태죄 위헌’ 결정을 촉구하고 있는 반면에 종교계를 중심으로 ‘태아의 생명’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면서 ‘낙태죄는 합헌’이라고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종교계 전반에서 반대 목소리가 높지만 그 가운데서도 천주교가 가장 완강하게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지난 16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가정과생명위원회 생명운동본부가 서울 명동성당 등에서 개최한 제7차 생명대행진에서 “남자와 여자의 몸이 단순히 생물학적 기능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인격적 존재”라며 “이처럼 배아와 태아의 몸도 한낱 세포 덩어리가 아닌 인격적 존재로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 등 천주교 지도자들은 지난 3월 낙태죄 폐지 반대를 촉구하며 100만여 명의 서명을 헌법재판소에 전달한바 있다. 당시 주교회의는 서명문을 통해 “인간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하나의 인격체로서 인정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잉태된 순간부터 태아는 여성 몸의 일부가 아닌, 독립적인 한 인간이다. 인간 생명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보다 우선한다”며 “낙태는 태중의 무고한 생명을 직접적으로 죽이는 일이다.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므로, 낙태죄 폐지를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주교회의는 이와 관련해 성서와 가톨릭 교리문 등을 인용하며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여성 건강권이라는 명분으로 인간 생명을 내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개신교계에도 보수적 성향의 교단을 중심으로 낙태죄 폐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진보적 성향의 교단들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진 않지만 폐지 반대 입장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불교계에선 공식적으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는 가운데 기본적으론 낙태에 반대하지만 여성들의 현실도 고려해야한다는 의견이 많다. 천주교가 가장 적극적으로 낙태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개신교, 불교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중시해야하는 종교의 특성상 낙태와 관련해 보수적인 입장과 태도를 견지할 수밖에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낙태에 대한 종교적 차원의 의견을 가지는 것과 국가가 낙태를 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낙태를 줄이기 위해 여성을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치에도 맞지 않다. 각국의 사례를 보면 낙태의 법적 허용과 낙태율 증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한다. 낙태죄를 폐지한다고 해도 낙태가 늘어나진 않는다는 것이다. 굿마커연구소와 세계보건기구가 2007년에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낙태 허용 사유가 비교적 자유로운 서유럽의 경우 가임기 여성 1000명당 12명으로 낮은 낙태율을 보인 반면에 낙태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낙태율은 1000명당 31명으로 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다. 여러 조사에 의하면 낙태율은 법적처벌의 유무가 아니라 성교육, 피임 방법, 성차별 정도 등 다른 사회적 요인의 영향을 더욱 많이 받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통계 자료는 낙태와 관련해 종교계의 역할이 과연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만약 종교계에서 낙태를 줄이고 싶다면 낙태죄 폐지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성평등 실현과 올바른 성교육을 비롯한 피임 교육, 여성들에 대한 의료지원을 비롯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 등 다양한 지원과 교육에 나서면 된다. 진정 생명을 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낙태를 줄이고 싶은 것이라면 ‘처벌’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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