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 일기 2021. 10. 22

in #stimcity5 years ago (edited)

3.JPG

암스테르담에 다녀왔다. 그야말로 주마간산의 여행이었다. 대관절 하루동안 암스테르담에 대해 뭘 얼마나 느낄 수 있냔 말이다.

1.jpg

그러나 언뜻 보기에 이 도시는 정말 흥미롭다. 반 고흐 미술관이 있는 지역에선 클래식 콰르텟이 버스킹을 하고 있고 하이네켄 양조장은 맥주 체험을 하러 온 젊은이들로 가득이다. 해가 지자 중앙역 주변의 뒷골목은 활기가 넘친다. 잭 챈에 따르면 관광객이 코로나 시절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난 모습이라고.

그는 나를 기어코 홍등가로 안내해 라이브 포르노쇼를 보겠냐고 연신 물어봤다. 나는 답했다. "Maybe later." 마리화나 가게 앞에 서서 한 대 피워 보겠냐고도 물었다. 역시 말했다. "Maybe later." 이런 풍속에 대한 내 호기심은 자연적 노화와 함께 애저녁에 증발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 앞에서 큰 제한을 두지 않는데다, 요조 숙녀들이 홍등가 주변에서 아무렇지 않게 산책을 하고, 심지어 매춘부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은 생경했다. 내게 모든 생경함은 신선함이다.

2.JPG

반 고흐 미술관에 나를 방목한 잭 챈은 내가 빈센트의 그림들에 흠뻑 빠져 있는 두 시간동안 그새 달리기를 하고 왔다. 66세의 이 홍콩 장년은 달리기 중독이 있다. 그는 깃발 꽂기식 여행을 하는 스타일인데, 나와는 180도 반대다. 나는 발길 닿는대로 가고 필이 꽂히는만큼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내게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딜 갔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냐이다. 암스테르담 가는 길에 위트레흐트라는 고장에 잠깐 들렀는데, 나는 점심 도시락을 포장하러 구글맵으로 검색된 '손맛'이라는 한국 식당을 찾아 10분간 비를 맞으며 걸었다. 그런 순간이 내게 여행이다.

그러니 잭 챈과 다니는 내내 스트레스일 수밖에 없었지만, 여하튼 그 덕분에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영화 박물관도 기웃댈 수 있었다. 영화 박물관에 간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갑자기 내리는 폭우를 맞으며 마구 뛰어 배에 올라타는 순간, 그게 내게 여행이다.

잭 챈은 생각하기 전에 먼저 행동하고 보는 스타일이다. 대단히 저돌적인데, 그래서 자주 잘못된 길로 들어선다. 거기에 대해선 논평하지 않겠다. 그냥 그는 그런 사람이다. 주차장에서 잭 챈은 차 키를 잃어버려 한참 백팩을 뒤졌다. 나는 키가 있을법한 작은 지갑을 열었다. 키는 거기 있었다. 잭 챈은 약간 민망해 하며 한 시간을 달려 로테르담으로 돌아와 나를 호텔 앞에 내려 놓았다. 그게, 내게 여행이다.

Sort:  

멋진 여행기입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05
TRX 0.33
JST 0.080
BTC 63745.71
ETH 1690.28
USDT 1.00
SBD 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