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경십서: 손빈병법 (병가와 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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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십서: 손빈병법 (병가와 법가)

손무와 달리 손빈은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이다. 직접 《손빈병법》을 썼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그가 《손빈병법》을 저술했다고 가정할 경우 그것이 현존 《손자병법》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송대에 무경칠서를 정리하면서 《손빈병법》을 넣지 않은 것은 손빈이 손무의 후손이라는 〈손자오기열전〉의 기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로 보인다.

이는 손빈이 쓴 병서가 2개의 판본으로 전해져 내려왔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손자오기열전〉이 손무에 대해서는 극도로 빈약한 내용밖에 없지만 100여 년 뒤에 등장한 후손 손빈에 대해서는 상세히 소개해놓은 것이 그 증거다. 손무는 가공의 인물이고 《손자병법》의 원저자는 손빈이라는 가인빈작설(假人臏作說)은 이와 유사한 추론에 입각한 것이다. 그러나 《손자병법》과 《손빈병법》의 편제 및 내용이 크게 달라 가인빈작설을 좇기가 어렵다.

《손빈병법》은 큰 틀에서 볼 때 《손자병법》의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그러나 내용만큼은 《손자병법》보다 훨씬 풍부하다. 일부 대목에서는 《손자병법》이 제시한 전술을 뛰어넘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전국시대 중기에 처음 출간된 것으로 추정되는 《손자병법》을 읽고 진일보한 견해를 피력한 결과로 보인다.

손빈이 활약한 전국시대 중기는 전국칠웅이 천하통일의 주역이 되기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이던 시기였다. 정책적으로는 유가와 법가의 노선이 충돌했다. 《맹자》 첫 편인 〈양혜왕 상〉에 나오는 일화에 따르면 맹자가 양혜왕을 만나자 양혜왕이 말했다.

“노인장이 이처럼 불원천리하여 찾아왔으니 장차 우리나라를 이롭게 해주려는 것이오?”

맹자가 힐난했다.

“대왕은 하필 이익을 말하는 것입니까? 오직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만일 대왕이 말하기를,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것인가?’라고 하면 대부는 말하기를, ‘어떻게 해야 우리 집안을 이롭게 할 것인가’라고 하고, 사서인(士庶人)은 말하기를, ‘어떻게 해야 내 몸을 이롭게 할 것인가’라고 할 것입니다. 상하가 모두 각기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면 나라는 위기에 처할 것입니다.만승의 대국에서 군주를 죽이는 자가 있으면 그것은 필시 천승의 제후일 것이고, 천승의 제후국에서 군주를 죽이는 자가 있으면 그것은 필시 백승의 대부일 것입니다.

만승의 영지에서 10분의 1을 쪼개 천승의 제후에게 추고, 천승의 제후 영지에서 10분의 1을 쪼개 백승의 대부에게 녹으로 내리니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실로 의를 뒤로하고 이익을 앞세우면 더 많은 것을 빼앗지 않고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이 어진데도 자신의 어버이를 버리거나, 의로운데도 자신의 군주를 뒤로 미루는 자는 없습니다. 대왕 또한 인의를 말해야만 하는데도 어찌하여 이익을 말하는 것입니까?”

《사기》는 “양혜왕이 재위 35년(기원전 335)에 자신의 예를 낮추고 폐백을 후하게 하여 현자를 초청하자 맹자가 양 땅에 이르렀다”고 기록해놓았다. 승(乘)은 수레의 수효를 말하는 단위로 만승은 천자, 천승은 제후, 백승은 제후의 대부를 상징한다. 맹자가 말한 이른바 하필왈리(何必曰利)에 크게 공명한 사마천은 이같이 평했다.

“나는 《맹자》를 읽다가 양혜왕이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것인가?’라고 물은 대목에 이르러 일찍이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아, 이익을 밝히는 것은 실로 난이 일어나는 시초다. 공자는 이익을 드물게 말해 그 난의 근원을 막았다. 그래서 공자는 말하기를,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망이 많다’고 한 것이다.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이익을 좋아하는 폐단이 어찌 다르겠는가!”

맹자의 하필왈리는 열국의 군주들이 법가 및 병가의 부국강병 주장을 당연시하며 끊임없이 군비경쟁을 추구한 행태를 질타했던 것이다.

당시 법가와 병가 모두 천하통일을 이루어야만 열국의 백성을 도탄에서 구할 수 있고, 이는 반드시 무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손빈병법》은 바로 법가 및 병가의 이런 천하통일 사상을 적극 반영한 병서다.

손빈 자신이 바로 천하통일의 필요성을 절감한 당대의 병가였다. 《손빈병법》이 남북조시대 이후 《손자병법》의 아류로 몰려 퇴장하는 바람에 오랫동안 그의 천하통일 사상을 제대로 파악할 길이 없었다. 죽간본 《손빈병법》이 출토되긴 했으나 많이 훼손된 까닭에 전체적인 모습을 완전히 파악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다만 지금까지 해독된 1만 1,000자 정도의 본문을 통해 《손빈병법》의 큰 윤곽과 손빈의 기본 입장을 대략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손빈병법》은 《손자병법》과 마찬가지로 《한비자》 등의 법가사상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고 있다. 《손빈병법》 〈찬졸(簒卒)〉의 다음 대목을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첫째, 전쟁의 승리는 정예병의 선발 여부에 달려 있다.

둘째, 병사의 용맹은 엄정한 군율과 공정한 신상필벌 여부에 달려 있다.

셋째, 작전의 정교함은 형세의 활용 여부에 달려 있다.

넷째, 군사의 날카로움은 병사의 장수에 대한 신뢰 여부에 달려 있다.

다섯째, 군대의 자질은 병도의 추구 여부에 달려 있다.

여섯째, 군량과 군수품의 여유는 속전속결 여부에 달려 있다.

일곱째, 전투력 증강은 휴식 여부에 달려 있다.

여덟째, 전투력 손상은 전투의 빈발 여부에 달려 있다.”

《손빈병법》이 시종 장수와 병사 등 사람의 역할을 강조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조조가 〈도관산〉에서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가장 귀하니, 군주를 세우고 백성을 거두며 온갖 규율을 정했다네!”라고 읊은 것과 취지를 같이한다. 이른바 인귀론(人貴論)으로 요약되는 그의 인본주의 사상이 약여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군주를 세우고 백성을 거두는 입군목민(立君牧民)은 곧 치국평천하를 말한다. 치국평천하의 요체를 인귀론에서 찾은 것은 탁견이다.

이는 조조가 생전에 《손빈병법》을 열심히 탐독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월전(月戰)〉의 첫머리에 이에 대한 대목이 나온다.

“손빈이 말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인귀론을 설파한 〈도관산〉 첫 구절과 똑같다. 손빈은 기본적으로 백성의 마음이 전쟁의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병실(兵失)〉의 해당 대목이다.

“군대를 지휘하는 사람이 큰 화를 면치 못하는 것은 민심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장실〉에서 전쟁에 패하는 10가지 이유를 들면서 대부분 병사와 백성의 불신을 사는 장수의 리더십 부재를 거론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가 우수한 병사를 선발해 정예병으로 만들 것을 주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백성을 도탄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부득불 전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고, 전쟁을 통해서만 근원적으로 백성에 대한 약탈을 그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한비자가 치국평천하의 요체를 백성에 대한 다스림인 치민(治民)에서 찾지 않고, 백성을 착취하는 관원에 대한 통제인 치리(治吏)에서 찾은 것과 맥을 같이한다. 《한비자》 〈외저설 우하〉의 해당 대목이다.

“군주는 법을 지키고 성과를 내도록 권해 공적을 쌓도록 해야 한다. 관원이 나라를 어지럽게 할지라도 홀로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지키는 선민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난민이 횡행하는데도 홀로 나라를 잘 다스리는 관원이 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명군은 관원을 다스리는 데 애쓸 뿐 백성을 직접 다스리지 않는다.”

법가와 병가의 위대한 면모가 여기에 있다. 전쟁은, 패할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승리를 거둘지라도 수많은 병사가 들판의 백골이 되는 까닭에 그 내용만큼은 참혹하다. 그러나 열국의 백성을 군벌의 착취로부터 근원적으로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부득불 막강한 무력을 배경으로 이들을 제압해야 한다. 법가와 병가는 이런 냉혹한 현실을 통찰했던 것이다. 《손빈병법》 〈월전〉이 첫머리에서 ‘인귀론’을 전제로 부득이용병을 역설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해당 대목이다.

“천시(天時)와 지리(地利) 및 인화(人和) 등 3가지 조건이 완전히 갖추어지지 않으면 비록 승리를 거둘지라도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반드시 3가지 조건을 갖춘 뒤 싸워야 하고, 부득이한 경우에 한해 전쟁이라는 최후의 수단에 기대야 한다. 통상 가장 좋은 시기를 기다려 출전하고, 싸움에 이긴 병사를 다시 전쟁터로 내몰아서는 안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전쟁을 하면 설령 작은 전과를 얻을지라도 결국 더 큰 화를 입게 된다.”

조조가 《손자약해》 서문에서 《도덕경》의 부득이용병 구절을 끌어들여 집이시동(戢而時動)을 역설했던 것과 취지를 같이한다. 《손빈병법》이 〈병정〉에서 “화살은 병사, 활은 장수, 사수는 군주에 비유할 수 있다”며 삼위일체를 역설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법가와 병가가 부국강병을 역설하며 압도적인 무력으로 군벌을 제압해 열국의 백성을 귀족의 착취에서 속히 해방시킬 것을 주장했던 근본 배경이 여기에 있다.

이들이 ‘인의’ 운운한 맹자의 도덕론을 송양지인(宋襄之仁)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식의 접근은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손빈병법》의 위대한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출토된 죽간을 토대로 만들어진 현존 《손빈병법》은 모두 30장이다. 무경십서의 편제를 좇아 편의상 크게 2개의 편으로 나누었다. 제1편 ‘논병(論兵)’은 주로 용병의 이치를 논한 점에 주목해 붙인 제목이고, 제2편 ‘논전(論戰)’은 상대적으로 실전에 관한 내용이 많은 점에 주목한 결과다.《손빈병법교리》도 본서와 마찬가지로 앞뒤로 15장씩 나눠 상편과 하편으로 분류했다.

큰 틀에서 볼 때 30장 모두 출토된 죽간을 토대로 한 것인 만큼 편장의 분류에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제2편 ‘논전’의 제목은 제1편 ‘논병’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실전에 관한 내용이 많은 점에 주목해 붙인 것이다. 요체는 《손자병법》과 마찬가지로 허허실실의 궤도에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손빈병법의 특징 (무경십서, 2012. 9. 28., 역사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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