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역사: 파나마운하와 미국의 추악한 전쟁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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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역사: 파나마운하와 미국의 추악한 전쟁

파나마 운하 계획은 16세기 중엽, 에스파냐 국왕 카를로스 5세 때부터 수립되었다. 그때는 '개척'의 차원이었고 상용의 목적이나 빈도가 뚜렷치 않았다. 그래서 실제 공사는 1880년 이후에 비롯되었다. 그 전 해에 수에즈 운하를 완성시킨 프랑스의 레셉스가 의욕적으로 시작하였으나 복잡한 지형과 기술 문제로 9년 만에 중단하였고 미국이 그 뒤를 이었다. 이미 1855년에 복잡한 파나마 지협을 횡단하는 철도를 부설한 미국은 파나마 운하를 통하여 대서양과 태평양의 교역과 외교력의 영향력을 동시에 확보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콜럼비아 정부의 반대와 저항으로 쉽게 뜻이 이뤄지지는 않았다. 여기서부터 파나마 현대사의 비극이 시작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1904년 프랑스 회사의 운하소유권을 사들였는데, 그 지역 일대까지 넘겨받으려 했으나 콜롬비아가 거부하였다. 이에 미국은 파나마를 콜럼비아 동맹으로부터 분리 독립시키기 위하여 폭동을 선동하였고, 그 결과 독립국가가 된 파나마와 운하에 관한 조약을 맺게 된다.

양국이 맺은 조약은, 매우 불평등한 상황에 의한 불평등한 내용의 문서였음에도, 어쨌든 조약의 효력을 갖고 있었다. 파나마 운하 건설에 당시 약 3억 9천억 달러(현 가치로 4천억 달러 상당)를 투입한 미국은 그 운하를 100년 동안 조차하고 주변 10㎞ 일대를 점거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조약을 맺었다. 주변 10km 일대는 파나마 전 국토의 5%에 해당한다. 미국은 운하 지대를 총괄하는 총독을 임명하여 직할 통치를 하였다.

약소국을 통째로 집어삼키던 시절이니 조약이라면 어쩌면 양호한 셈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파나마 국민들에게는 불평등한 것이고 또한 그 조약을 골간으로 하여 맺어진 미국과의 관계가 더러는 모욕적이기도 했다. 그래서 파나마 현대 정치사는 ‘운하 조약 갱신’이라는 화두로 전개되었다. 1964년에는 조약 갱신을 요구하는 시위로 파나마 국민과 미군 23명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하였다.

1968년 10월,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오마르 토리요즈에 의하여 양국의 조약이 갱신되게 되었다. 1973년과 1978년의 두차례 협정 체결을 통하여 1903년 조약 폐기, 운하 운영 관리 회사 설립, 1999년 12월 31일 파나마 정부가 운하 지배권 소유 등이 그 내용이었다. 토리요즈 정권이 운하 조약 폐기와 비동맹 그룹 가입 등으로 치달은 것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세력이 국민의 숙원과 '민족 감정'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정책을 취하려는 일반적인 흐름이었다. 사실 그는 국내적으로, 군인의 정치개입을 합법화한 신헌법을 밀어붙인 독재자였다.

하지만 토리요즈는 1981년에 원인 불명의 비행기 추락 사고(CIA 작전설도 제기되었다)로 사망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주인공이 등장한다. 마누엘 노리에가 장군이 그 사람이다. 1938년의 오늘, 2월 11일 파나마시티에서 태어난 노리에가는 파나마대학을 중퇴하고 페루의 코리오스육군사관학교를 거쳐 파나마 국방경비대에 입대하였다.

미국과 이스라엘에서 특수 정보전 교육을 받았으며 한때 미국 마약단속국의 정보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1969년 토리요즈 쿠데타 직후 군정보부사령관에 취임하였고 토리요즈의 비행기 사고 직후 실권을 장악하였다. 직선 대통령 바를레타와 그를 계승한 델바에가 있었지만 그 위에 노리에가가 있었다. 그에 대한 국내외 비판 여론이 비등해지고 미 법무부가 그를 마약 밀매 혐의로 기소하자, 당시 델바에 대통령은 노리에가를 군사령관 직에서 해임시켰다. 하지만 노리에가를 지지하는 의회가 델바에를 축출하고 노리에가를 수반으로 추대하면서, 파나마 최대의 비극이 잉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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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에가는 여러 얼굴을 가진 실력자

레이건에서 부시로 이어지는 1980년대의 미국은 중남미 일대에서 벌인 다양한 작전이 거듭 수렁에 빠지면서 뭔가 강력한 '수단'이 필요했다. 특히 '이란-콘트라 스캔들', 즉 미국의 최고 구조라고 할 수 있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불법적으로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고 그 판매대금의 일부를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에 지원했던 일 등은 미국이 '자유'와 '정의'의 전도사가 아니라 추악한 거래와 음모로 유지되는 나라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었다.

그 한 축에 마누엘 노리에가가 있다. 미 국가안전보장회의까지 가담한 니카라과 반군의 주요 자금원이 마약 거래였는데, 이 출처가 노리에가였다. 노리에가와 미국은 비틀린 음모와 검은 거래 관계로 시작하여 '적대적 공존'으로 유지된 팽팽한 긴장의 관계였다.

중남미 사태가 점차 불리하게 돌아가고, 여기에 노리에가가 파나마 국민들의 숙원인 운하 조약을 무기로 강하게 맞서자 레이건 대통령은 결국 노리에가를 축출하기로 결심한다. 사정이 어찌되었든 한 독립자주국가의 수반은 '마약 밀매 혐의'로 체포하는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 작전명이 바로 ‘정당한 목적’(Operation Just Cause)이다.

이 작전 '정당한 목적'은, 여러 면으로 보건대 그리 정당하지 않다. 우선 미 마약단속국이 축출의 예비 과정으로 1988년 2월에 노리에가를 플로리다주 연방법원에 기소했는데, 일국의 수반을 다른 나라의 주 연방법원에 기소할 수 있는지 여부도 문제지만, 레이건 대통령은 노리에가가 사임하고 '안전한' 곳으로 망명한다면 기소를 취소한다는 제안을 하였고 동시에 경제 제재에 돌입하는, 양동 작전을 구사했다. 마약 밀매 혐의자 체포 작전이 아니라 한 나라의 기틀을 뒤바꾸려는 작전이 개시된 것이다.

물론 노리에가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이에 미국은 쿠데타와 암살, 그리고 직접적인 군사 작전을 통한 체포 계획을 수립했다. 그 작전이 수립되던 해인 1989년 5월에 파나마에서 대선이 실시되었는데 미 중앙정보국(CIA)는 노리에가가 내세운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파나마의 모든 매체와 정당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이에 노리에가는 야당 후보를 기습하는 등의 맞불 작전으로 다시 정권 연장에 들어갔다.

이제 미국의 '정당한 목적'이 전면화될 때가 되고 만 것이다. 그해 10월 3일, 미 정보 파트의 교육과 지원을 받은 파나마방위군이 쿠데타를 시도하여 노리에가를 체포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은 예상 밖의 반응을 보였다. 쿠데타 세력이 노리에가를 넘겨주려고 하였으나 미국은 거절했다. 노리에가를 지지한 세력이 구출 작전을 벌여 성공하는 과정도 차분히 지켜볼 뿐이었다.

레이건의 뒤를 이은 조지 부시 대통령은(70년대에 그는 CIA 국장으로 중남미의 마약 상태에 개입한 바 있다) 이미 딕 체니 신임 국방장관과 함께 파나마 침공 작전을 세워둔 것이었다. 그들은 노리에가가 아니라 파나마 전체, 나아가 중남미 일대의 세력 재편이라는 큰 그림을 '정당한 목적'으로 그렸던 것이다.

마침내 1989년 12월 20일 새벽 1시, 미군은 '정당한 목적'의 공격을 시작했다. 나흘 전, 어느 미군 병사가 파나마군 앞에서 소동을 벌이다가 피격 당한 일(그것까지도 '작전'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을 계기로 2만 5천여 명의 군대가 투입된 이른바 '정당한 목적'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미군은 노리에가를 생포하였다. 그의 집무실에서는 사용한 흔적이 있어 보이는 마약과 포르노 잡지가 널려 있었고 미군은 그것을 세계 언론에 공개하였다. 그런데 그 조차도 '작전'의 일환이었다는, 제거해야할 인물을 '더러운 병균'의 이미지로 전락시켜 버리는 작전이었다는 신빙성 있는 의견이 추후에 제기되었다.

이는 이라크 전쟁 당시 후세인을 체포한 미군이 속옷을 갈아 입거나 치아 검사를 받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있는 후세인의 모습을 세계 언론에 공개한 것과 같은 맥락의 일이다. 그 녀석도 알고 보면 별 거 없다는 식의 수치심과 모욕감을 후세인과 그 지지세력에게 안겨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노리에가를 생포했지만, 그것이 작전의 전부는 아니었다. 미군은 파나마시티와 콜론의 민간인 거주 지역에 폭탄을 퍼부었다. 수많은 민간인이 사망했다. 대포, 로켓포, 탱크, 기관총 등이 동원되었다. 파나마군은 한달 여 동안 저항하다가 이듬 해 1월 31일에 항복하고 만다.

미군에게 생포된 노리에가 이 '정당한 목적'의 진짜 목적은 노리에가 체포 정도가 아니라 중남미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의 위상을 제고하고 전체적으로 판세를 다시 짜기 위한 것이었다. 한 때 미국의 충견 노릇을 했던 노리에가는 자국 내의 폭압 통치, 정권 유지를 위한 선심성 통치, 이 자금 확보를 위한 마약 밀매 관장 등의 역주행을 감행하였고 이 역주행을 통제하려는 미국의 사정권을 벗어나기 위해 쿠바,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콜롬비아의 마약 밀매 조직 등과 관계를 맺으려다가 끝내 종신형에 처해졌다.

펌) 정윤수의 Boo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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