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거면 그러지말지

in #kr7 years ago (edited)

지금은 밤 12시가 넘은 깊은 밤. 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송이야 너 졸라 예뻐. 섹시하고, 애교도 넘치고."

이런 말을 하는 남자는 나에게 정말 1도 이성으로서 관심이 없었던 것일까?

나와 항상 투닥거리는 한국인 매니저 오빠. 그 오빠는 내가 한국 출장을 마치고 일본에 돌아오니 송이야 너 달라보인다 이뻐졌네 이러면서 내가 말을 걸 때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사무실에서 매니저 오빠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게 있어서 물어보다가 난 그냥 집에 빨리가서 누워서 설교나 들으면서 쉬어야하겠다고 했는데 매니저 오빠는 빛의 속도로 나에게 물어봤다.

"그럼 우리 데이트 할래?"

매니저 오빠는 나와 이미 한 번 데이트를 해 봤다. 엄청 추운 봄날, 드라이브를 데려가 준다면서 차에 시동을 켰지만 오일엔진이 고장이 나서 결국엔 어디도 가지 못하고 오빠 집에 가서 내가 싸간 김밥과 함께 컵라면을 끊여 같이 먹었었다. 난 그 때 아직 연하남을 많이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솔직히 매니저 오빠가 내게 왜 다가오는지 잘 몰랐고, (그냥 여자를 좋아해서? 외로워서? 내가 웃겨서?) 혼자 있는 것보다 재미있는 오빠 옆에 있는게 좋아서 거절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네, 알았어요."라고 답했다.

난 피곤해서 집에 갔다가 매니저 오빠가 근무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서 오피스 근처 맛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다. 오빠는 표정이 시무룩해 있었고, 뭔가 요새 네거티브한 기분이 든다고 좀 자기를 재미있게 해달라고 했다. 하아...왜 난 남자들을 항상 모셔야하는 위치에 처하는가.

평소에 밝은 오빠가 시무룩해 보이는게 짠해서 한국 출장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자학 개그를 하며 오빠를 웃겨보려고 했다. 오빠는 간간히 웃었지만 남자의 갱년기 증상이 빨리 오는지 뭔가 계속 찌푸둥해 있었다. 하아...내가 왜 이 남자와 데이트를 한다고 했을까. 피곤하다...집에 빨리 가고 싶다...

밥을 다 먹고 나오면서 오빠는 피곤해서 전철을 못타겠다고 택시를 타고 집에 가겠다고 했다.

"아 네...그러세요 전 전철타고 갈게요."
"같이 가자."

엥? 같이 왜 가? 우리 집 방향이 틀린데?

"우리 역에서 집에가."

음...왜 이러지? 정말 기분이 꿀꿀해서 누군가 같이 있어주기 원하나? 내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매니저 오빠는 택시를 잡고 나보고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왠지 귀신에 홀린 듯 난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뭐 오빠 집 근처 역에서 우리 집까지도 그렇게 멀진 않으니까. 외로운 영혼 구제하는 셈 치고 택시 정도는 같이 타 줄 수 있지. 평소 내 고민도 들어주고 도움도 주는 오빠니까.

매니저 오빠의 집으로 가는 동안 실없는 농담도 하고 재미있게 가는데 갑자기 오빠가 나에게 매력이 넘친다, 섹시하다, 목소리에 애교가 장난이 아니라고 폭풍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이 인간이 나한테 원하는게 뭐지? 뭔가 이상했다. 진담으로 받아들이면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거지? 하지만 난 아직 연하남을 좋아하는데. 그런데 연하남은 가망이 없고. 매니저 오빠를 받아들일까? 아니야 근데 오빠는 여자를 그냥 많이 좋아해서 별 생각없이 내뱉는 소리들일거야.

별의별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가는데 매니저 오빠가 갑자기 내 무릎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왔다.

"아 뭐하는거에요! 애같이 장난치지 마세요."

신경질을 내며 항의를 하는데 매니저 오빠가 이번에 아예 손바닥으로 내 무릎을 만졌다.

"왜 어때서? 야 너 근데 왜 이렇게 살이 차냐. 왜 스타킹 안 신었어?"

"저 원래 몸이 냉하거든요? 그래서 한약도 먹고요. 아 근데 왜 만져요! 미투할거에요!"

"내 손 따뜻하지? ㅋㅋㅋ 미투해! 해!"

난 재차 만지지 말라고 신경질을 냈고 오빠는 재미있다는 듯이 반응하고 그만뒀다. 그리고 얼마 안가 오빠의 동네에 도착했다. 오빠가 날 갑자기 만진 건 오빠가 나와 잘해보고 싶다는 싸인인가?? 난 그럼 오늘 밤 오빠네 집에서 자는건가???

택시에서 내리면 난 매니저 오빠가 날 자기 집으로 데려가려고 할 줄 알았는데, 오빠는 나를 역에 데려다 준다고 하면서 역으로 향했다. 엥? 이건 내가 생각했던 전개가 아닌데? 오빠는 내가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걸 기다리는건가? 혹시라도 내가 혼자서 착각하고 있는건가?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에 난 오빠와 헤어지고 집으로 향하는 전철을 타고 있었고, 한 역 한 역 집에 가까워져 갈 때마다 택시 안에서 오빠가 왜 날 만졌는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오빠의 집과 내 집 중간 쯤 있는 역에 전철이 정차하려는데 반대편 방향의 전철이 들어오고 있었다. 난 결심을 하고 그 역에서 내리고 반대편 전철을 타고 다시 오빠의 동네로 향했다.

'그래, 그냥 집에 가서 물어보는거야. 오빠의 진심을.'

이미 오빠의 집에는 김밥을 먹으러 가 본 적이 있어서 위치를 기억하고 있었다. 오빠는 도대체 어떻게 나올 것인가? 앗 그런데 건물을 아는데 오빠 집의 호수를 기억을 하지 못했다.

"오빠? 몇층에 계시죠?"

카톡 전화로 오빠에게 대뜸 물었다. 오빠는 매우 당황하면서 (하는 척?) 전화를 받았고 왜 왔냐고 하면서 호수를 가르켜주고 문을 열어줬다.

"왜 왔어? 어떻게 된거야??"

오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고 난 당황스러웠다. 본인이 더 잘알텐데?? 뭐지? 왜 나한테 이상한 말 이상한 짓을 해 놓고 발뺌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오빠 왜 택시안에서 저 만지셨어요?"

"뭐??? 너 지금 그것 때문에 이렇게 온거야?"

SHIT....뭐지 이 오빠? 아....이 시키 그냥 진짜 여자 좋아하는 호색남인건가?

"송이야. 그럼 넌 내가 손 잡으면 결혼할거니?"

이런 18자식.

"송이야 난 널 여동생처럼 생각해."

야 넌 여동생 무릎을 그렇게 만지냐?

더 이상 난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아서 알았다고 집에 가겠다고 했고 매니저 오빠는 택시비를 억지로 나에게 건넸다. 돈을 엘레베이터 넘어로 던지고 싶었지만 그러기도 전에 문이 닫히고 말았다.

솔직히 보통 여자들이면 이런 상황이 창피하고 민망할 수 있겠지만 난 괜찮다. 궁금한 점이 풀렸고, 조금이나마 끌렸었던 사람에 대한 모든 마음을 접을 수 있는 일이 되었다. 돌아가는 택시 안에 매니저 오빠에게 백아연의 이럴거면 그러지말지의 동영상을 보냈다.

"오빠에게 바칩니다. 안아주지 말았어야지를 만지지 말았어야지로 들어주세요."

아...정말...난 도대체 뭐 하는 짓인가....연하남에 이어 매니저 오빠까지.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garbage들을...하나님이시여.

그랬구나 그랬어. 좋았는데 아니였나봐.
이럴거면 바래다 주었던 그날 밤 넌 나를 만지지 말았어야지. 섹시하다고 귀엽다고 애교 많다고 하지도 않았어야지. 이 나쁜 호랑나비개나리십장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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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냄새가 나는 분이네요
가까이 하지 않으시는 걸 추천드려요
송이님을 진지하게 보다 가볍게 만나고 싶어하는 분 같아요
그 남자가 송이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그런 식으로 선을 긋지는 않을거에요

네 절 정말 사랑하지 않는 것은 잘 느껴졌어요...

제가 정말 혼자서 미친 착각을 한 것일까요??

왜 미친 착각 했다고생각하십니까. 매니저가 생각을 하게 만들었군요.

ㅠㅠ 그렇죠??? 그 오빠가 절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는 모습이 참...누가 더 어이가 없었는데...

그정도 용기를 낸 것만도 가상하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십시요.

네? 매니저 오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라고요??

그냥 불쌍하니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세요.

어제 먹다남은 빵 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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