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gvely] 맹자와 리더

in #kr-writing6 years ago (edited)

@songvely July. 20. 2018.




소파에 앉아 책을 읽다가 햇님군이 켠 뉴스를 듣게 되었다. 하루 종일 들어 익히 아는 소식들인데도 읽던 책과 맞물려 괜히 혼자 열 받은 채 글을 쓴다. 불편한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고, 여차하면 내일 아침 복잡한 마음에 글 내용을 지워버릴 지도 모르겠다. 금요일 밤의 불장난 같은 글.








뉴스라고는 잘 보지 않고, 회색분자였던 내가 나라 소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부끄럽지만 채 몇 해가 되지 않았다. 고등학교까지는 대학을, 대학에서는 취업을, 졸업 후에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주변의 인간 관계와 신변잡기적 문제들이 나의 최대 관심사였다.



하지만 이토록 무지하고, 무심하던 나마저도 관심을 갖지 않으면 못 배길 만큼 이 나라의 횡보는 기가 막힌 스토리로 전개 되었다. 비극막장극을 모아 놓은 옴니버스 영화같았다. 그 중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국정농단이었다. 그리고 그 편의 주인공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오늘 국정원 특활비와 공천 개입이라는 죄목으로 1심에서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았다. 온 뉴스에서 말하듯 지난 4월 국정농단 혐의 1심 재판에서 받은 24년형을 더하면 총 징역 32년형이다. 180여억원의 벌금은 차치한다 하더라도 예순 여섯살의 박 전 대통령에게 32년이라는 형량은 꽤나 길게 느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 것은 왜일까.








맹자(孟子) 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맹자를 처음 만난 양혜왕(梁惠王)은 “어르신이 천 리 길을 마다 않고 오셨으니, 장차 우리나라에 큰 이익 이 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이에 맹자는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익 을 말씀하십니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인의 일 뿐입니다.

왕께서 어찌해야 내 나라에 이익이 되겠는가 하시면, 대부들은 어찌해야 내 봉지에 이익이 될까 할 것이고, 일반 관리와 백성들도 어찌해야 내 한 몸에게 이익이 될까 할 것이니,이와 같이 위아래가 서로 이익을 추구한다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 [양혜왕 상]



이는 맹자가 이(利)가 아닌 인(仁)의(義)를 중시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지만, 한 편으로는 리더로서의 왕이 추구하는 가치와 언행이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시사하기도 한다.



지금은 맹자가 살던 시대처럼 군주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대통령이 있다. 한 나라의 정책과 이미지를 바꾸기도 하고,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도 하며, 그 반대이기도 하다. 결국 국가의 존망을 결정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키(타, 舵)를 쥐게 되는 사람이다.



대통령은 실로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자리이고, 그 주변에 있는 많은 이들은 자연스럽게 최고권력자가 지향하는 방향을 따라가고자 노력한다. 그가 추구하는 가치를 함께 추구하며, 그 또는 그녀가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도록 ’알아서 눈치껏’ 실천에 옮기는 행동파들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렇게 일국의 선수(船首)는 대통령의 손에 잡힌 키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은근슬쩍 틀어질 때가 많다.



슬프게도 대한민국의 키는 잘못된 사람들의 손에 쥐어진 적이 참 많았다. 죄수복을 걸치고 포승줄에 손이 묶인 채로도 얼굴을 빳빳이 든 전 대통령들이 바로 그 증거이다. 그리고 오늘 박 전 대통령의 재판 소식과 함께 뉴스를 달궜던 기무사 계엄령 문건 소식을 보고나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당시의 야당 국회의원들을 구속해서 국회를 무력화 하고, 시위 진압을 위해 광화문에 탱크와 장갑차를 투입하고... 또 한 번,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퇴보할 위기에 놓여 있었음을 곱씹었다.



4.19는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의 이야기다. 그나마 내가 태어났을 때쯤엔 5.18의 여운이 살짝 남아있을 때였다. 광주에 잠시 살았던 터라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타고 가던 버스가 소위 ‘데모’로 인해 갑자기 멈췄던 기억이 있다. 길이 뿌연 연기로 가득찼고, 엄마는 급히 손수건을 꺼내 내 코와 입을 막아주셨다. 아마 내 부모님대의 어른들에게는 더욱 가슴 깊이 남아있을 그 시절의 기억과 상처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뤄냈던 민주주의라는,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누려온 소중한 가치를 몇십년이 지나 잃을 뻔 한 것이다. 영화로만 보고, 상상만 했던 공포가 현실로 펼쳐질 수 있었다는 것에 가슴이 서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성도, 사과도 없는 침묵.








긍휼히 여기는 마음(측은지심, 惻隱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수오지심, 羞惡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겸손히 사양하는 마음(사양지심, 辭讓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가리려는 마음(시비지심, 是非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 [공손추 상]



맹자는 사람은 누구나 위의 네 가지 마음, ‘사단(四端)’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 마음들은 4가지 단서가 되어 인(仁) 의(義) 예(禮) 지(智)로 발현된다고 믿었다.



하루 전 날인 어제,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 날의 기억을 떠올려 봤을 때 당시의 정부는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 대해 측은함을 갖지 않았고, 자신들의 과오를 부끄러워하기보다는 덮어버리기에 급급했다. 그 이후로도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권력을 사양하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들의 자리를 지켜내고자 하였다. 그런 와중에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과정은 지지부진했고, 상처 입은 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 한 가운데에 그녀가 있었다.








은(殷)나라의 제후국이었던 주(周)나라의 무왕이 은나라의 주왕(紂王)을 정벌하였다. 이는 신하가 임금을 죽이는 반역이었기에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맹자에게 “신하가 임금을 시해해도 되는 것입니까?”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맹자가 말하길



인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하며, 잔적(殘賊)한 사람을 일부(一夫)라고 합니다. 일부인 주(紂)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으나 임금을 시해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 [양혜왕 하]



주나라를 반역자의 나라로 규정하고 교묘히 정통성을 무너뜨리려는 제 선왕에게 맹자는 대담하게도 주 무왕은 인의를 해친 일부(一夫)를 죽였을 뿐, 임금을 시해한 것이 아니라고 답한 것이다. 즉, 군주가 군주답지 못할 때 이미 군주로서의 자격은 박탈당하고, 리더가 리더로서의 면모를 보이지 못한다면 자연스럽게 그 이름을 잃게 된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마음대로 나라를 주무르며 한 나라를 호령했던 이들도 결국은 광장으로 몰려 나온 사람들의 함성에, 촛불에 밀려나게 된다는 것을 현재와 미래의 리더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다음이며, 군주는 가벼운 것이다.

- [만장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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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전대통령이 재판정에도 출석안하고 하는것은 마지막 노림수 특별사면만 기대하는것 같습니다..
10년이든 30년이든 이제는 그분에게는 의미없는 징역기간이니까요.
근데 지금은 너무 민주당이 인기가좋아서 쉽게 자한당이 집권하기 쉽지않느데 언제쯤 박전대통령은 대통령의 특별사면 대상자가 될수 있을런지 알수없지만 상당히 오랬동안 감옥에는 있어야할듯하네요.

그렇죠... 반성과 문제 해결보다는 그런 요행만 노리고 있다는 것이 더 불쾌하기도 합니다..

글을 쓰며 당시의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사실 현재의 여당도 국민들을 중심에 두고 문제를 풀어갔으면 합니다. 권력이라는 것은 언제 어디로 흘러갈 지 모르는 거니까요- 현재 민주당이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결국 민심을 잃으면 세상이 바뀌게 되겠죠..

(jjangjjangman 태그 사용시 댓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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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차에 도전하세요

그리고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양혜왕 장구... 공손추 장구...
우왕... 사실 저는 배웠지만서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역시 고전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통용될 수 있기에 고전인가 봅니다.

흠 특별사면이라... 자유한국당이 정권을 갖게 되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군요...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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