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멸
지난 여름에 열린 독서 모임에서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경멸>을 읽고 글을 써야 했다. 써 갈수록 책과도, 모임과도 관련이 적어지던 중 과제는 생략한다는 공지를 발견했고, 그대로 넣어둔 글이다. 수정 과정에서 하려던 말이 달라지고 말았다.
가장 얕은 관계에서 나는 행동으로 상대를 판단한다. 그가 나를 도우면 좋고, 막거나 빼앗으면 싫어하는 식이다. 4년에 한 차례 연락하던 사람이 사라지더라도 나는 크게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드문 반례도 떠오른다.
더 나아간 관계에서 나는 상대의 의식을 노린다. 그 사람의 메시지가 무례할 때, 나는 그 문장이 괴로운 것이 아니라 나를 그렇게 대해도 괜찮을 것이란 저의가 못마땅한 것이다. 대부분 이 같은 논리로 사랑도, 공격도 시작된다. 적용 대상의 범위가 가장 넓은 영역이다.
가장 깊은 곳에서 의식보다 중요해지는 것은 무의식이다. 모르고 있겠지만 너는 나를 해치고 싶어 해. 이미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이 느껴져. 그러나 이 단계에 이르는 순간 관계는 일그러진다. 정말로 상대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든, 그런 척을 하는 것이든, 나만이 동의하는 기준으로 상대를 교정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나는 참을성 없이 말을 입 밖에 냈다. 그때의 용기에는 평범한 불안과, 내가 틀렸으며 상대가 (다시 합리적인 눈빛으로) 나를 설득해주리란 기대가 섞여 있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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