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기념일 떠올리는 주례 목사님

in #kr8 years ago

오늘은 제 결혼 기념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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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학 때 공부를 참 안했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달은 건 결혼할 무렵이었습니다. 주례를 부탁해야 하는데 회사 사장님께 부탁하긴 그렇고 이른바 ‘은사’님께 주례를 청하자니 기억나는 은사가 한 분도 안 계신 겁니다. 주례를 부탁하러 간다면 아마 백이면 백 “자네가 사학과였나?” 하고 눈을 동그랗게들 뜨실 게 뻔했으니 난감할 밖에요. 그렇다고 아내에게 주례 선생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기는 웬지 체면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때 아내가 별 고민 다한다는 듯 한 마디 했지요. “목사님한테 부탁해.” 다니던 향린교회에 홍근수 목사님이 시무하실 때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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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근수.jpg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교회에 다닌다고는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정말로 '다니는' 수준의 유령 교인이었던 겁니다. 즉 연애할 때부터 향린교회를 기웃거리기 시작했으니 결혼할 때는 2년 정도 다닌 처지였지만 이른바 정회원도 아니었고 목사님도 막상 찾아가 뵈면 “어 우리 교회 신도셨어요?” 하실 것이 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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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고개를 저었지만 대안이 없지 않으냐는 아내의 채근에 당시 부목사님이셨던 이혜진 목사님께 언질을 드리고 나름 정성껏 쓴 편지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전화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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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은 정회원이 아닌 경우 주례를 하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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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렇지 쩝쩝 입맛을 다시는데 이혜진 목사님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정회원 된다는 약속을 하시면 주례를 서 주시겠답니다.” 뭐 이런 약속이야 1만번이라도 하지요. 이런 곡절을 거쳐서 홍근수 목사님은 제 주례 선생님이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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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가 없으면 결혼식이 아닌 것 같고, 번듯한 주례 모시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하지만 장담컨대 주례사를 제대로 기억하는 신랑 신부는 가물에 나는 콩보다도 적을 겁니다. 결혼식날만큼 정신이 혼미한 날은 평생을 통틀어 많지 않으니까요. 저도 아내와 함께 입장해서 주례 앞에 선 뒤엔 그저 빨리 끝내 주십쇼 하는 마음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직하지만 천둥 같은 주례사가 제 귀를 울렸습니다.

"결혼은 연방제 통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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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참말로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연방제 통일이라면 빨갱이 통일의 동의어로밖에 생각 안하는 우리 아버님의 낯빛 변하는 소리가 빠드득 하고 들렸습니다. 가뜩이나 감옥 갔다 왔던 그 목사 아니냐며 탐탁지 않아 하셨는데 숫제 연방제 통일이라니. 그리고 그 뒷전에선 '통일' 외치는 친구들과 험하게 다퉜던 제 이력을 익히 아는 친구들의 웃음 소리가 들립니다. “와 저 자식 연방제 통일 죽어라 싫어하더니 결혼은 연방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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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이 서로의 단점을 극복하고, 서로의 허물을 감싸 안으면서 하나를 이루는 연방제처럼, 부부는 하나됨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멘.. 빨리 끝내소서) 또 부부는 독립체입니다. 어떠한 외세의 개입 없이 자주적으로.... (아멘.... ) 둘이 하나가 되어 험한 세파를 헤치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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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목사님의 '연방제 주례사‘는 감동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뜻이야 좋고, 취지에도 공감은 하지만 결혼식에 오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에게 그 언사가 어떻게 다가서는가의 문제는 또 다른 것이기 때문에 저는 일종의 해프닝으로, 그냥 사람들 웃기는 에피소드로만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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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혼 20년을 넘어서는 요즘은 홍근수 목사님의 그 카랑카랑했던 연방제 주례사는 새삼스럽고도 감동적으로 제 삶에 와 닿습니다. 다른 남편들처럼 능력이 출중하지 못해 호강시켜 주지 못하는 건 그렇다고 치는데 눈치가 없고 배려가 없고 동작이 늦고 게으르고 할 일을 찾아서 하지 못하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여러 모로 부족하면서 자존심만 드높은 북한 같은 남편이 돼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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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여 말한다면 홍 목사님이 말씀하시던 남북의 연방제나 연방제 결혼의 일맥상통을 느끼게 되었다는 점도 있겠습니다. 이미 크게 싸우고 헤어진 부부같은 남과 북이건, 18년 전 홍 목사님 앞의 저희 부부같이 이제 막 함께 걸음을 시작하는 초보 부부건, 둘에게 소중한 것은 둘이 서로 필요하다는 깨달음이었을 것이고, 서로 필요해지려는 노력을 게을리 않겠다는 다짐이었을 것이고, 삶에 지치고 서로의 단점에 찌들어도 그래도 이 사람밖에 없다는 믿음이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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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홍근수 목사님의 주례사는 1국가 2체제로 살든 한 집에서 각방을 쓰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기대고 또 점점 줄어드는 미래를 함께 살아갈 사람이라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그 나라와 집안이 깨질 리는 없다는 도를 베풀어 주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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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목사님은 만년에 파킨슨 병을 앓으셨고 주변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좀 특이한 경험을 했습니다. 언젠가 오랜만에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교회를 찾으셨을 때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더니 홍 목사님은 크게 반가워하시며 몸을 일으키시는 겁니다. 옆에서 목사님을 부축하던 이가 당황해 할 만큼 말입니다. 가볍게 인사나 드리려던 저도 급 황송하여 허리를 깊숙이 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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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목사님은 미소를 살짝 지어 보이셨습니다. 저를 기억하셨던 건지 아니면 다른 교우로 착각하셨던 건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미소는 결혼식을 마치고 축하합니다 하며 손을 내미시던, 그야말로 어린아이같이 활짝 피어나던 천진한 웃음을 떠올리기에 넉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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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득 그 웃음이 떠오릅니다. 그게 아마 제가 마지막 뵌 목사님이었을 겁니다. 이제 천국에서 행복하시겠지만 가끔은 그 웃음이 그립습니다. 지금도 친구들은 술자리에서 제 결혼식 얘기를 하며 웃을 때가 있습니다. “결혼은 연방제 통일입니다. 낄낄낄.” 아마 제가 백발이 되고 허리가 굽어도 제 인생 가장 행복하지만 정신없던 날 정신을 번쩍 들게 했던 목사님의 주례사는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 목사님의 구김살 없는 웃음과 함께 말입니다. 천국에서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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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주례사에서 결혼은 연방제 통일을 주장했을 정도면,
그 사상적 성향은 안봐도 알겠군요.

베트남 적화통일에 희열을 느꼈다는 자도 마찬가지이고요..

^^ 세상을 좀 넓게 보시길

제 입장에서는 세상의
현실을 파악하시길 추천드립니다.

저도 모르게 북한 같은 남편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내에게 잘해야지요^^;

네 북한 같은 남편 되면 정말 곤란하죠

향린교회라면 영화 1987에서도 나왔던 그 교회잖습니까~
유명한데서 유명하신 분이 주례를 서셨네요~
저는 그 주례 선생님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뭐 향린교회에서 한 건 아니구요 ^^ 주례는 보아 주셨지만 ^^ 홍근수 목사님이

산하님 결혼기념일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정말 제가 인생에서 잘한 일 중 하나입니다

흥미로운 주례사네요 ㅎㅎ 지금은 좋은 추억거리지만 당시에는 정말 당황하셨겠네요. 기념일 축하드리고 와이프 분과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 위와 같습니다....

ㅎㅎㅎ 정말 정말 기억에 남는 주례사였겠네요! 저도 친구 결혼식에서 주례해주신 한 목사님의 말씀이 (다른 의미로) 엄청나게 기억에 남는게 하나 있었는데..여기서 말씀드릴 건 아니지만요 ㅎㅎㅎㅎ 제 결혼식에서 들었던 주례말씀은 무엇이었나 한번 떠올려보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주례사 기억하는 친구는 거의 없더군요 ㅋㅋㅋ 저도 그거 아니면 다 까먹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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