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형제입니다?

in #kr5 years ago

범죄로 읽는 한국사 - 우리는 형제입니다?
배우 조인성이 주연을 맡은 영화 〈비열한 거리〉는 씩씩거리며 경찰서에 쳐들어간 ‘찌끄레기’ 조폭(조인성)이 누군가를 엄청나게 두들겨 패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기도 조폭인 주제에 그는 이렇게 묻지. “건달이야? 깡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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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에서 조인성에게 얻어맞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동생이야. 철없이 주먹 휘두르기를 좋아해서 사고를 쳤고 철거를 앞둔 집에서 이사할 비용을 합의비로 털리게 된다. 조인성은 이런 동생을 다잡아 보려고 애쓰는 이율배반의 조폭인 셈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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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세계에 깊숙이 발 들이고 있을망정 가족들에게는 헌신적인 가장이고, 자신을 닮아가는 동생에게 “너는 공부 열심히 해라” 식으로 말하는 캐릭터는 일종의 클리셰처럼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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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이 남매인 게 좋지만, 세상 살아가기에는 형제나 자매가 좋다는 말이 있다. 남매는 각자 짝 찾아 살아가다 보면 데면데면해지는 경우가 많고 명절날 얼굴 보기도 여의치 않게 되지만, 형제간이나 자매간에는 엇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서로를 속속들이 아는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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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영화나 드라마가 남매보다는 형제, 자매의 우애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소재로 취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니. 오늘은 세월을 뛰어넘어 경찰서 유치장에서 벌어진 영화 같은 ‘형제’ 이야기 몇 토막을 들려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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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린 시절을 보낸 서울 영등포는 과거 꽤 넓은 지역이었다. 지금의 관악구·강서구·구로구·금천구가 모두 영등포였으니까 짐작하겠지? 강남의 옛 지명인 영동(永東)은 바로 영등포 동쪽이라는 뜻이야. 강남 개발 전 허허벌판에 배 밭이 있던 강남을 뚜렷이 부를 이름이 없어서 ‘영등포 동쪽 동네’라는 뜻으로 불렀던 거지. 드넓은 관할구역을 가지고 있었던 영등포에는 일제강점기부터 ‘영등포경찰서’가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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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즈음, 일제 경찰은 곳곳에서 벌어지는 ‘가짜 형사’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어. 우는 아이에게 ‘순사 온다’고 겁을 주던 시절이었으니 “나 ○○경찰서 형사인데”라고 들이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왈칵 겁을 먹었고 그 틈을 노린 사기가 빈번했던 거지. 영등포경찰서 관할 지역과 인근 평택·수원에서도 동일범 소행으로 보이는 사건이 줄을 이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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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군 서면 가학리(현재 광명시 가학동)에서 가짜 형사가 나타났답니다. 거기 김봉권이라는 사람한테 자기는 본정경찰서 형사이고 소도둑을 잡으러 왔는데 (···) 소를 사러 온 것처럼 꾸며서 체포하려 한다고 둘러댔습니다. 그래서 (소 값으로) 돈 삼십 원만 빌려달라고 해서는 그냥 줄행랑을 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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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군 대방리(현재 서울 대방동)에도 그 가짜 형사가 나타난 것 같습니다. 마차 끌고 가는 사람을 잡아서 자기가 시흥주재소 순사라며 몸수색을 하고 돈을 빼앗아 달아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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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정 이수교 근처에서도 그놈이 나타났습니다. 자전거 타고 가는 사람을 붙잡고 영등포서원이라고 하며 몸수색을 하고는 현금 삼십사 원을 털어 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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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 지역에서 동일범으로 보이는 사건이 계속 발생한 영등포경찰서는 눈에 불을 켜고 범인을 찾아 나섰고 마침내 용의자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어. “27세 한홍수로서 필수·정남·정욱 등 일곱 가지 가명을 가진 자로 절도·사기 전과 3범이며 올해 8월 서대문형무소를 출옥했는데 여죄가 상당히 있을 모양(〈조선일보〉 1938년 12월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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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 유치장에서 취조를 받던 대담한 가짜 형사 한홍수는 곧 대경실색을 하게 된단다. 안양 지역의 잡화상에 침입해 금고를 들고 나오던 절도범이 경찰에 딱 걸려 쇠고랑을 차고 끌려왔는데 자기 친동생 한정수였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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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아 나는 기왕에 버린 몸이라 죄를 짓고 이곳에 와 있지만 너까지 이곳이 웬 말이냐. 차라리 죽여버리겠다(〈조선일보〉 1939년 2월5일).” 수십 차례 가짜 형사 노릇을 하며 돈을 털었던 악당이지만 동생마저 자기 같은 범죄꾼이 돼버린 현실 앞에 무너지고 말았던 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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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들도 깜짝 놀라 한홍수가 정말로 동생을 죽여버릴까 싶어 다른 감방에 격리할 만큼 형은 서슬이 시퍼렜다. 다급히 동생을 분리한 뒤 한숨 돌리는 경찰을 한홍수가 불렀다. “부탁이 있습니다. 이 외투를 좀 동생에게 전해주십시오. 동생이 얇은 옷을 입고 있더라고요. 제발 이걸 입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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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5일이면 맹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고, 당시 경찰서 유치장은 난방 시설 같은 걸 기대하기 어려운 곳이었으니 그는 얇은 옷을 입은 동생이 눈에 밟혔던 거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물을 금치 못하게 했다”라고 하니 형사들도 측은했던 모양이다. 당시 영등포경찰서 사법주임은 이렇게 말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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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친의 사랑이란 위대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형은 전과도 있고 범행도 커, 용서의 여지가 없다지만 아우만은 아직 초범인 모양이니 될 수 있으면 훈계하여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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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약 39년 뒤 영등포경찰서 유치장에서는 또 다른 형제가 눈물로 상봉하게 된다. 절도 피의자 한 명이 영등포경찰서에 잡혀와 유치장에 들어갔지. 그런데 유치장 근무를 하던 순경에게 이상하리만치 피의자가 낯이 익었어. 20년 전 가출해 생사를 모르는 동생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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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유치장에 웅크린 피의자에게 고향을 물었다. “당신 고향이 어디요?” “충청북도 옥천이요.” 그 순간 경찰의 가슴은 두방망이질 쳤다. 그의 고향도 옥천이었거든. 그때부터는 마치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같은 풍경이 유치장에서 펼쳐졌다. “아버지 이름은?” “어머니 이름은?” 대답은 빈틈없이 맞아떨어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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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했던 대로 절도 피의자는 경찰의 동생이었어. 20년 만에 만난 형제는 범죄자와 감시자가 돼 창살을 사이에 두고 부둥켜안을 수밖에 없었다(〈동아일보〉 1977년 8월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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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 순경’으로 기록된 형의 나이는 32세, 동생의 나이는 27세였어. 기사에는 ‘20년 전 가출’로 쓰여 있지만 일곱 살짜리 꼬마가 무슨 가출을 했겠니. 가출 이유는 ‘가난’이었지.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가난 때문에 버려졌거나 어딘가에 맡겨지면서 부모로부터 떨어진 게 아닐까 싶구나. 20년 만에 범죄자로 눈앞에 선 동생에게, 순경이 된 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형이 동생을 감시하게 되다니 이 무슨 운명이냐. (···) 석방된 뒤에는 새사람이 돼 서로 의지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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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세계란 인간성을 제거하는 만큼 성공하기 쉽고, 범죄자들은 누군가의 피눈물을 양분 삼아 제 욕망을 채우는 존재이지. 하지만 나이 든 경찰들은 그런 말을 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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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옛날엔 범죄의 이유라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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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바닥에는 가난이 자리 잡고 있었고, 무슨 짓을 해서든 살아남아야 했던 시대적 한계 속에서 범죄자가 양산됐다는 뜻이겠지. 물론 굶어죽을지언정 남의 것을 탐하거나 남을 해치지 않은 이들이 훨씬 더 많으니 그들의 죄는 엄연하고 처벌받아 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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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동생에게 자기 외투를 입혀달라고 호소하는 질 나쁜 ‘가짜 형사’와 그 기막힌 모습 앞에서 “동생은 훈계해 바른 길로 인도하자” 되뇌는 경찰, 죄인의 모습으로 되찾은 동생에게 “새사람 돼서 의지하고 살자”라고 등 두드리는 ‘이 순경’을 돌아보며 우리가 간직해야 할 마음과 지켜내야 할 무언가를 가늠해보고 싶었다. 오늘 ‘영등포경찰서의 형제들’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였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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