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크군 57연대를 위하여
1915년 4월25일 갈리폴리 상륙작전
윈스턴 처칠 하면 불독처럼 입을 앙다문 불굴의 표정이 떠오르지. 전 유럽이 나찌 독일 손에 들어간 뒤 “우리는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해안에서 적과 싸울 것이며, 우리는 상륙지에서 적과 싸울 것이며, 우리는 도심과 구릉에서 적과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연설하던 처칠의 모습은 역사의 명장면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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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사람이 딱 한 마디 단어를 대면 평정을 잃고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해. 그의 정적들은 이렇게 말했다지. “그 한 마디만 대. 처칠은 입을 닫을 거야.” 대체 무엇이기에? 그 단어는 ‘갈리폴리’야.
갈리폴리는 터키의 다르다넬스 해협 근처의 반도 이름이야. 1차대전 중 오스만 투르크는 독일과 가까워졌지. 수 세기 동안 피터지게 싸웠던 러시아가 독일군한테 박살나는 풍경은 투르크 인들의 체증을 내려가게 해 줬거든.
독일 군사 고문단이 투르크로 와서 투르크 군단을 훈련시키는 등 독일과 투르크간의 유대가 강화되자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군쪽은 심기가 불편해졌지. 차제에 터키를 미리 밟아 버리자는 의견이 제시됐고 그 선봉은 해군 장관 윈스턴 처칠이었지.
“러시아와의 연결 통로인 다이다넬스 해협을 확보합시다. 갈리폴리에 군대를 상륙시켜서 해안가 쓸어 버리고 이스탄불까지 밀어부칩시다.”
이미 독일 고문단의 지휘 하에 요새화가 이뤄져 있던 갈리폴리를 그냥 밀어부친다고? 육군은 말할 것도 없고 영국 해군 지중해 함대 사령관까지도 고개를 내젓는 무리한 작전이었지. 하지만 처칠은 막무가내였어.
그래서 해군 단독으로 갈리폴리를 박살내겠다고 함대를 몰아가지만 해안에 깔린 기뢰와 해안 포대와의 전투 과정에서 배만 잔뜩 잃고 물러서지. 처칠은 해군 장관에서 잘렸고 말이야. 처칠이 갈리폴리만 들으면 불독이 되는 이유를 알겠지.
하지만 영국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육해군 합동작전을 펼쳐서 갈리폴리 반도를 장악할 계획을 세워. 이때 동원되는 육군은 안작 (ANZAC) 즉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군단이었어. 지구 반바퀴를 돌아온 이 혈기왕성한 오세아니아인들은 듣도보도 못하던 땅 투르크의 갈리폴리에 상륙하게 된다.
이에 맞서 싸울 투르크군은 사실 황혼기에 접어든 군대였어. 수백년 전 오스트리아 비인을 포위하며 기세를 올리던 날은 케케묵은 전설이 된지 오래였고 러시아를 상대해서나 발칸의 반란군을 상대할 때나 무력하기 그지없었거든. 마침내 1915년 4월 25일 상륙작전이 개시돼. ‘유럽의 환자’ 투르크군을 쓸어버리고 이스탄불까지!를 외치면서.
하지만 갈리폴리에는 훗날 터키의 국부가 되는 케말 파샤가 버티고 있었지. 그는 함포에 두들겨 맞고 공포에 질린 투르크 군을 향해 절규한다. "우리가 무너지면 오스만 제국 본국이 무너지고, 우리가 이젠 노예가 되는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제군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오늘 우리는 살아남기 위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다.“ 여기까지 듣던 투르크인들은 번쩍 고개를 쳐들었겠지. 그럼 왜 싸운단 말이야?
케말 파샤는 단호하게 말을 잇는다. ”우리는 오늘 죽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오늘 우리들의 죽음이 조국을 지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며그대들 이름은 남을 것이다. 나 역시 여기에서 무너지면 제군들과 같이 시체가 되어 이 땅에 누우리라.“ 이순신 장군의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는 독전에 버금가는 말이었지. ”우리는 죽기 위해 싸운다.“
그러나 일단 물량 공세에서 투르크군은 영국군의 화력에 당할 수 없었지. 상륙하는 영국군과 앤작 군단 (호주, 뉴질랜드)을 향해 있는 대로 총과 포를 쐈지만 점점 총알과 포탄은 줄어들었고 나중엔 돌멩이를 던지고 흙을 뿌리는 상황에 직면하게 돼. 이때 57연대장은 투르크군이 왕년에 즐겨 쓰던 반월도를 치켜들고서 외쳐. “우리는 죽기 위해 싸운다.” 그리고는 앞장서서 해안에 상륙한 적군을 향해 달려나간다.
연대장이 이내 쓰러지자 부연대장이 그 칼을 쥐어들고 달리다가 엎어졌고 이를 지켜본 연대 전체가 한덩어리가 돼 착검 돌격을 감행하지 그들은 영국과 앤작 군단에 돌입해서 치고받는 혈투를 벌이지만 이윽고 전멸하고 말아. 하지만 영국쪽도 타격을 입어서 일순 공격을 둔화시키게 되고 이때를 틈타 투르크군의 보급이 이뤄지면서 갈리폴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앤작군단은 수십만의 전사자를 내고 소득없이 물러서게 된다.
그 승리의 밑거름이 됐던 57연대는 다시 재건되지 않고 터키의 전설로 남아. 지금도 터키군에는 57연대가 없고 57연대장의 이름은 훈장의 이름으로 전승되고 있다지.
사람에게나 그 사람들의 집단에게나 기억이란 의외의 자산이거나 부채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고 이겨 본 놈이 승전가 가사를 아는 법이지. 쪼그라들어만 가던 투르크는 그 전투로 자존감을 회복했고 이후로도 왕년의 제국에는 어림도 없지만 어엿한 독립국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지켜 나가게 된다.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하는 찬송가가 있어. 가사는 이렇다. “어느 민족 누구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 건가. 주가 주신 새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니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 주님 같은 건 따로 모시기로 하더라도 이 가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봐.
어느 개인에게나 개인들의 모임인 집단에서나 일신의 인생을 걸든 집단의 명운을 걸든 결단을 내리고 그 선택에 맞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거지. 그 결단을 내리지 못할 때, 행동하지 못할 때, 나약하게 포기하고 “우리는 안될 거야” 지레 머리를 긁는 순간, 한 집단 전체가 어둠 속으로 들어간 예는 무지하게 많아 바로 구한말 우리처럼. 그리고 얼마전까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엔 형제의 나라 터키 이야기군요. 오늘도 좋은 글 고맙습니다~! 보팅은 글 올라오고 30분 후에 하란 얘길 들어서 나중에 또 들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매일 매일 배우는 좋은 역사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 배었습니다.
저희같은 범부는 상상하기 어려운 결말이 아닌가 싶네요.
우리 독립군의 역사도 그러하겠지요. 전쟁이 아닌 다른 좋은 일에 그 결기와 열정이 쓰였으면 좋으려만... 아쉽습니다.
용기 있는 사람들ㅇ이 역사를 바꿉니다 결국
좋은 글 잘봤습니다!
보팅하고 가요~~!!^^
감사합니다 ^^
처칠의 똘끼 충만한 흑역사군요.
덩케르크 볼 때는 처칠 연설에 감동했지만 그가 히틀러보다 더 많은 식민지 사람들을 학살한 제국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역시 역사는 승리자의 것이고 우리는 그래서 역사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시 명장 밑에 약졸은 없군요.
처칠은 참.... 여러 흑역사가 있지요. 투르크도 뭐...대단한 흑역사가 있구요. 갈리폴리의 투르크는 용감했을지언정
네 사실 역사적으로 강대했다는 나라 치고 안 그런 나라가 없죠. 순수하게 무에서 유를 창조해서 강해진 나라는 거의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