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여행 후기 2 - 디오클레티아누스와의 만남

in #kr8 years ago

크로아티아 월드컵 결승 진출 기념(?) 크로아티아 여행 후기
2- 디오클레티아누스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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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에 들어서면서 아빠가 좀 기가 죽었던(?) 게 화장실에 갔을 때였어. 소변기 위치가 다른 나라에 비해 10센티는 높은 듯 한 거야.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소변기 앞에 서 보지만 이내 발뒷꿈치를 사알짝 들어야 했을 때의 그 묘한 굴욕감(?)이란. 뭐 아빠 키가 작을 뿐이라고? 톰 크루즈도 나만하다고! 얘네가 이상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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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크로아티아 지역 사람들의 신체강건함은 내력이 있는 것 같아. 로마는 서력 기원 훨씬 전 아드리아 해의 동쪽 발칸반도 연안에 진출한다. 이 일대에 터잡고 살던 일리리아인들을 격파하고 일대에 세력을 구축한 로마는 근처 달마티아, 판노니아, 다키아 등과 합쳐져 ‘일리리쿰’이라는 속주를 세우게 되는데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이 일리리쿰의 로마 군단은 로마 군단 가운데에서도 그 무력이 막강하고 병사들의 질도 우수했다고 기록해 두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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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골이 장대한 크로아티아 청년들은 유럽 각지의 전쟁에 용병으로도 많이 팔려 갔어. 최초의 세계 대전(?)이라고 부르는 , 즉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가 개입해 치고받았던 30년 전쟁 (1618~1648)에도 크로아티아 청년들은 무더기로 싸움터로 몰려갔지. 자기 고향을 지키는 전쟁도 아닌 남의 전쟁에 징집되거나 팔려가는 연인 또는 남편이나 가족들이 안타까웠던 크로아티아 여인들은 수를 놓아 출정하는 군인들의 목에 걸어 주며 무운을 기원했는데 이게 오늘날 남자 정장의 상징 넥타이의 기원이라고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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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세기 말, 기울어져 가는 로마 제국 시대에 달마티아, 즉 오늘날의 크로아티아지역의 스플리트라는 곳 출신의 한 강골 군인이 나타나. 이름은 디오클레티아누스. 그의 성장 과정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만큼 보잘것없는 신분 출신으로 추정되지만 그는 동분서주하며 사방에서 로마에 도전하는 외적들을 물리치고 로마의 분위기를 일신하고자 했지. 그러나 결국 그 방식은 전제정치의 강화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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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클레티아누스.jpg

로마 제국 시대를 그린 영화를 보면 그 군단의 선봉에 SPQR이라는 문자를 새긴 표식이 선두에 서는 걸 볼 수 있을 거야. 이건 ‘Senatus Populusque Romanus’의 약자로, '로마의 원로원과 인민‘이라는 뜻이야. 공화정 때 표어지만 제정 때까지도 쓰였지. 그만큼 로마의 원로원의 역사는 길었고 그 권위는 드높았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차제에 원로원의 입법 기능을 빼앗아 버려. 즉 원로원의 의결을 거쳐 이뤄지던 법을 자신의 칙령으로 간단히 만들 수 있게 해 버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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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로마 제국을 동과 서로 나누고, 그 공동 통치자를 두었던 것도 그의 작품이야. 그 후 역사 속에서 통합과 분열이 되풀이되고 결국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으로 갈라져 각기 다른 운명을 걸었던 건 바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제국분할의 결과였지 그런데 이 로마 제국의 역사를 바꾼 크로아티아인 (요즘 기준)은 기독교 역사에 남는 대박해의 주역으로 유명해, 재위 초기에는 기독교인들과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말년에는 잔혹하기까지 한 기독교 탄압을 펼쳤어.

“기독교 성경을 불사르고 교회를 파괴하여 평평한 땅으로 만들며 기독교인의 모임을 금한다.”는 303년 칙령에 이어 304년에는 “기독교인들은 고발 없이도 추적, 체포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은 옛 로마의 제사 의식에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형에 처한다”는 무시무시한 칙령을 내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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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전체에 피바람이 불었어.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버리고 목숨과 재산을 지켰지만 죽음 앞에서 당당한 기독교인들도 많았어,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근위대원이었던 세바스티아누스는 스스로 기독교인임을 밝히고 병사들의 화살받이가 되는 형벌을 받지만 기적적으로 죽음을 면했어. 그러나 또 다시 황제 면전에서 그 부당함을 설파하다가 순교했다 또 오늘날 소방관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진 플로리아누스나 뱃사람들의 수호성인이자 폭풍이 불 때 돛대 위의 방전현상인 ‘성 엘모의 불’로 유명한 에라스무스 등 무수한 사람들이 이 대박해 때 목숨을 잃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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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로마적인 피바람을 일으킨 디오클레티아누스는 305년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제위를 물려 주고는 그의 고향 스플리트에 궁성을 짓고 채소 키우며 유유자적 살게 돼. 오늘 아빠가 찾은 스플리트는 이 디오클레아티누스의 궁성을 중심으로 안팎으로 전개된 고풍스런 도시란다. 그러나 이 스플리트의 겉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흔적이라고 치지만 그 속살은 이미 디클레오티아누스가 그토록 없애려 들었던 기독교에 다 내주고 있었지. 성벽도시 중앙에 우뚝 선 성 도미니우스 성당이 바로 그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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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플리트2.jpg

성 도미니우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동향이라 할 달마티아의 주교였고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대박해 때 순교한 사람이야. 그를 기리는 이 대성당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묘지 위에 세워졌다고 해. 그 와중에 황제의 시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말이야. 로마판 ‘황성 옛터’를 굽어보는 도미니우스 성당은 기독교 성인들의 장식으로 그득하다. 그들 중 상당수는 바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 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지. 달마티아 주교 도미니우스의 이름조차 몰랐을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제국을 버리고까지 건설한 그의 안식처를 빼앗기고 유해마저 잃어버린 거지. 역사의 장난 같기도 하고 심술 같기도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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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여행하면서 아빠는 기독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어. 저 혹독한 탄압을 뚫고 결국 로마를 장악하고 소아시아에 퍼지고 몽골 고원에까지 퍼지고 당나라에도 들어왔던 기독교인들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목숨을 걸고 모진 박해에 맞서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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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어렴풋이 찾는다면 “나는 이미 예수의 군병이니 누구의 군병도 될 수 없습니다.”라고 되뇌며 역시 디오클레티아누스 대박해 때 목숨을 잃은 성 막시밀리아누스의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아. 칼로 일어선 로마 제국 앞에서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고 결연할 수 있었던 사람들, 하느님 앞에 귀족도 노예도 없다고 속삭이며 사자들의 이빨 앞에서도 웃으며 천당에 가려고 미소를 지으며 죽어간 사람들이 이기지 않았으면 누가 이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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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교회는 로마 제국에 공인을 받은 후 재빠르게 변신하고 또 다른 오만한 압제자로 변해 갔어. 다음다음 코스로 들른 크로아티아의 해안 도시 자다르의 대성당은 로마 시대 유적지의 석재를 그대로 교회에 갖다 발라 버렸어. 마치 이교도의 유적은 필요없다는 듯 말이야. 높이 솟은 종탑 아래 그리고 아드리아 해 뜨거운 태양 아래 ‘팽개쳐진’ 로마의 석재들에서 또 하나의 ‘로마’가 돼 버린 기독교의 흔적을 본 듯 기분이 좋진 않더라.

자다르.jpg

자 이제 크로아티아 여행의 하이라이트 성벽도시 두브로브니크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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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에 결혼하는 선배가 크로아티아로 신행을 떠난다고 하는데... 요새 들어서 크로아티아 여행 가시는 분들이 부쩍 늘어나서 저도 가보고 싶어지네요 :)

네 크로아티아 여행 알차고 좋습니다. 역사 경치.... 먹을 것도 괜찮고 (맥주 등)

와~~~ 크로아티아,,, 한 번 가보고 싶네요. ^^

아 가볼만합니다... 추천드려요

여행하긴 했지만 이렇게 자세히까진 몰랐는데 역시 여행은 아는만큼 보이나봅니다.. 잘 배우고가요 ㅎㅎㅎ

감사합니다...어느 나라든 역사를 조금만 알고 가면 더 알아볼 수 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씨는 그리 박해하시고 말년을 유유자적 사셨다니. 어쩐지 시큼한 역사 맛이 나네요. 잘 읽었습니다. 크로아티아에 저도 딸 아이랑 가면 할 얘기가 생겼군요.

네 꼭 따님과 함께 크로아티아를 즐기실 기회가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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