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테레사에 대하여
1997년 9월 5일 마더 테레사에 대하여
그녀는 1910년에 태어났다. 어디에서 태어났다고 말하기 무엇한 것이 그녀가 태어났을 때 그녀의 고향은 아직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핏줄로는 알바니아계가 분명한데, 그녀가 태어난 스코페는 과거 알렉산더 대왕의 마케도니아 제국에 속했다. 하지만 그녀는 확실한 인도인으로 죽었다. 인도에 귀화했고 1997년 오늘 소천한 이후 인도 공화국 국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20세기의 성녀로 추앙받는 테레사 수녀. 마더 테레사가 그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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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에 자신을 신성의 영역에 바칠 것을 결심했고 열 여덟 딸기같이 어린 순정(응?)의 나이에 수녀원에 들어간다. 어려서부터 인도에서의 사역을 동경했던 그녀는 인도에서 그 기나긴 여생을 보내게 된다.
1950년 유명한 ‘사랑의 선교회’ (자선의 선교회가 맞는 번역 같은데, 아무튼) 을 설립한 이후 그녀는 전 세계적으로 이름이 있는 꼴카타의 빈민가에서 가난한 이,고아, 나환자들, 장애인들을 돌보며 한평생을 보낸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터”를 세워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이들의 마지막 안식처를 제공했고 나환자들의 고름을 짜내고 버려진 아이들을 품에 안았다. “오늘날의 가장 큰 병은 결핵이나 나병이 아니라 사랑받지 못하며 필요한 사람이 되지도 못하며 보살핌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병은 약으로, 고독과 무기력과 절망은 사랑으로 고쳐야 합니다.”
오늘날 꼴카타에서 그녀는 일종의 신으로 모셔지고 있다고 한다. 워낙 신이 많은 나라이기도 하지만 웬만한 백인들은 코를 싸쥐고 근접하지도 못하는 곳에 뛰어들었던 테레사 수녀를 빈민들은 잊지 못하는 것이다. 그녀의 사역 초기 기독교인들이 선교 목적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오해 속에 힌두교 학생들이 몰려 왔을 때, 시설 내부를 들여다봤던 학생 지도자는 이런 말로 동료들을 해산시킨다. “여러분 중에 누이나 어머니에게 이곳에 와서 똑같은 일을 시킬 자신이 있는 분들은 이곳을 부숴도 좋소.”
그러나 그녀에게도 아쉬운 점은 있었다. 그녀에게 가난은 하느님의 ‘놀라운 선물’이었다. "가난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며, 우리가 하느님께 향하는 데 장애물을 적게 가진다는 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가난은 타파해야 할 무엇이 아니라 하느님께 가는 길을 더 가깝게 해 주는 삶의 형태였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 그녀의 입에서 “왜 가난한가?”의 고민이 나오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한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면, 우린 그가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됐는지 조사하거나 그런 상황을 개혁할 사회적 행동을 하기에 앞서, 그가 지금 평화롭고 존엄하게 죽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라는 그녀의 말은 단호하고 협상의 여지가 없다. 아이티의 독재자 뒤발리에의 헌금을 기꺼이 받았고 그를 축복했듯, 테레사 수녀에게는 구조적, 정치적 모순이란 눈앞의 가난한 이들의 뒷전에 선 존재였다. 그녀를 비판하는 책을 쓴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그의 저서 <자비를 팔다>에서 말하듯 “니카라과에서 정부군에 살해된 이들의 수는 꼴카타의 모든 선교사들이 우연으로라도 구한 목숨보다 더 많았”는데 말이다. 그래도 거의 모든 평생을 비참의 극치를 달리는 빈자들 틈에서 먹고 자면서 그들을 돌본 테레사 수녀에게 붙여진 ‘마더’의 호칭에 굳이 시비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녀는 정녕 거룩한 일을 하고 천국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14주기 기일 하루 전, 2011년 9월3일 한국에서도 한 ‘어머니’가 파란 많은 인생을 마치고 하늘 가는 밝은 길을 걸었다. 어린 티도 벗어나기 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갈 위협에 처했던 것을 시작으로 한국 현대사의 격랑 위의 한 물방울로 살아가다가 온몸을 스스로 불태운 아들에게서 자신의 뜻을 이어 달라는 부탁을 받아야 했던 한 어머니.
아들이 죽기 전까지 가난이란 일종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으나 아들이 죽은 후 그녀에게 가난이란 부숴지지 않을지언정 맨주먹으로라도 내리쳐야 할 질곡이 되었다. 마더 테레사가 가난한 이들을 사랑했다면 한국의 어머니는 그에 더하여 가난을 드리우는 세력과 맞섰다. 마더 테레사가 죽어가는 이들의 위안으로 평생을 살았다면 한국의 어머니는 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목발이 되었고 때로는 그들의 선봉에서 몽둥이를 휘둘러 주셨다. 그 빛은 서로 다르나 많은 이들의 어둔 마음을 밝혔던 두 여든 노인의 생애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