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청춘의 기억에 대하여

in #zzan6 years ago

어떤 청춘의 기억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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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가을 전교조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질 때, 학교에서 <참교육 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전교조 관련 집회는 무조건 원천 봉쇄하라는 추상같은 명령이 내려왔던 때라 우리 학교를 담당하는 성북경찰서에는 비상이 걸렸고, 정문 앞에는 교육 관료들이 진을 쳤지요.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교문에 달려 나가 전경과 싸우고 장학사들을 몰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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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장학사 온다.’고 수업 젖히고 청소하느라 박박 기었던 기억 때문인지 장학사들에게는 좀 막 대했던 기억이 납니다. 야유 보내고 드물게는 욕설도 흘리면서 학교에서 꺼지라고 대드는 학생들을 참다 참다 못했던지 한 장학사가 한 학생에게 소리쳤습니다. "자네는 아버지도 없나?" 그러자 제꺽 대답이 돌아왔지요. "당신 같은 아버지 뒀다면 당장 울 엄마하고 이혼시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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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노래패 안기부(안전기재부)로 앰프를 나르고 있었는데 제가 속한 동아리가 전교조 문화행사에 공연을 하기로 돼 있었고, 거기에 가기 위해 노래를 맞추고 장비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동아리연합회 사회부장이 구르듯 튀어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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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짭새들이 학교 친다. 빨리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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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겁지겁 교문으로 내닫는데 기독교학생회장이 앞을 막았습니다 "노래얼은 도서관 행사장으로 가요. 교문은 우리가 맡을 테니. 중고등학생들도 왔는데 공연할 건 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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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도서관으로 향하는 동안 동아리연합회 소속 종교분과, 즉 기생(기독학생회), 불생(불교학생회), 카생(카톨릭학생회)를 주축으로 한 친구들이 교문을 사이에 두고 악착같이 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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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과부적, 도서관에서 가까운 법대 후문에까지 전경이 배치되고, 학교는 완전히 포위됐습니다. 이젠 고등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협상을 해야 했고, 겨우겨우 지금 당장 집회를 끝낸다면 고교생들의 안전귀가를 보장한다는 약속을 받아냈지요.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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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 앞에 두 줄로 서서 동생들의 가는 길을 배웅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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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외침에 따라 정문에는 길다란 두 줄이 늘어서게 되었고 그 사이로 중·고등학생(가끔 당시에는 국민학생이라 불리던 초등학생도 있었습니다)들이 부끄런 미소와 손짓을 흘리며 빠르게 걸어나갔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어렴풋이 알았다고 할까요. 그때 중고등학생들 정말 애틋했습니다. 장학사들이 지키고 있는 지하도를 피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차도에 뛰어들어 학교 담을 타 넘던 치마 입은 학생들, 가끔씩 그들의 손을 잡고 우리들 사이를 지나던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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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대열에서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동지가>였지요.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에도 부딪쳐 오는 거센 억압에도 우리는 반드시 모이었다 마주보았다. 살을 에는 밤 고통받는 밤 차디찬 새벽서리 맞으며 우린 맞섰다......” 교문 앞에서 수백 명이 마주보며 만든 길. 앞 사람과 눈을 마주치면서, 지나가는 중딩들에게 ‘잘 가’ 인사를 간간이 넣으면서 불렀던 <동지가>는 굉장한 울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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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노래가 끝나기도 전, 길 건너 OB광장 골목에서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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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어기고 백골단 수십 명이 골목에서 튀어나와 안심하고 지하도를 건너오던 선생님과 아이들을 낚아챈 겁니다. 백골단 한 명이 앳돼 보이는 여학생의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것이 제 눈에도 들어왔습니다. 양키들은 'white fury'라는 표현을 쓰지요. 하얀 분노... 그때 내 눈 앞도 하얘졌던 것 같습니다. 살기라는 게 있다면 태어나서 그날 처음 느껴 봤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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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병을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 처지였지만 그날은 화염병을 손에 잡고 달렸습니다. 불길이 낼름거리는데 겁도 나지 않더군요. 던지지도 않았습니다. 최대한 가까이 가서 ‘부어’ 버리고 싶을 만큼 화가 났습니다. 성미 급한 화염병들이 머리 위로 날아오는데 뒤에서 화염병 던지지 마라는 소리가 다급하게 들렸습니다. 걸음 빠른 사람들 몇 명이 달려나가 백골단 사이에 몸을 던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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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하나는 제가 아는 녀석이었습니다. 한 학번 후배고 덩치는 <공포의 외인구단>의 오혜성 친구 백두산처럼 육중했으나 의외로 겁이 많았던 녀석이었죠. 몇 번 거리에서 봤는데 덩지값 못하고 얼굴 창백해진 모습에 낄낄댔던 기억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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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동지가>를 부르던 대열에 끼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평소 덩지 큰 코알라 같던 그는 상처 입은 사자로 변신해 있었습니다. 몸을 날리다시피 주먹을 휘두르면서 그는 울고 있었습니다.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이 개새끼들아......” 노래 <동지가>를 수십 년 뒤 다시 들어도 저는 그날 밤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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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웬 구닥다리 얘기냐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안 그래도 욕 들어먹는 586 (저는 아직 40대이니 예외로 하고) 감성팔이 지겨울 수도 있겠습니다. 무용담 자랑할 일도 안한 주제에 무용담 늘어놓을 깜냥은 없습니다. 그저 우리 아버지 세대가 6.25 때 고생담을 평생 버리지 못하고,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를 목메어 흥얼거리는 것과 똑같이, 한 세대의 청춘 (그 일부일지라도) 에 부과됐던 역사의 화인(火印)같은 추억을 비오는 겨울밤 떠올려 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추억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 같은 노래를 흥얼거릴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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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디찬 새벽서리 맞으며 맞설 동지는 이미 간데없고, 살을 에는 밤, 고통 받는 밤은 여전하나 그 뜻은 반드시 이기리라는 장담은 감히 할 수 없게 됐다 해도, 이제 그 세대가 늙어가고 또 ‘먼저 죽는’ 하나 둘 나온다 해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왔던 전인권과 김창완의 노래들처럼 당시 일부 청춘들의 마음을 채운 노래들은 이제는 좀체 감아주지 않는 태엽 인형일지언정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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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태엽을 감아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오랫 동안 사업을 일궜고 웬만큼 여유 있는 삶을 보낼 수 있는 이가 자그마치 올림픽 체조 경기장을 빌려서 자신의 청춘을 지배했던 노래들을 무대에 올리고 자신과 비슷한 정서를 지닌, 그때 그 노래들을 목청껏 부르고 듣고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나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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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통화돼서 연유를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렇게 한 번 하면 내가 그 동력으로 몇 년은 젊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망할 수도 있죠. 그런데 걱정보다는 한 번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요. 망하면 어때.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아직 젊은 거 아니겠어요. 아니 젊어지는 거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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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들으면서 저는 <동지가>의 밤을 새삼 떠올렸습니다. 진실로 ‘격노’했고 내가 다치더라도 누군가를 지키고 싶었던, 그리고 저 외에 많은 사람들을 비슷하게 만들었던. 그리고 그 노래들의 꼬리와 꼬리를 묶어 늘어세우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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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춘> 공연이 2월 1일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펼쳐진다고 합니다. 친구들이랑 가 보려고 합니다. 이문세나 들국화 콘서트가 다시 열리고 거기에 들떠서 가는 기분으로 말입니다. 그 큰 무대를 만드는 사람은 그 동력으로 몇 년을 젊어질지 모르나 그 무대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한 몇 달은 청춘의 느낌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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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뜻깊은 공연이 열리는군요.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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