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3월 17일 정인숙의 죽음

in #kr8 years ago

1970년 3월 17일 아빠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1970년 3월17일 밤 11시경 서울 마포구 절두산 근처의 어두운 밤길에서 총성이 울렸다. 차에 타고 있던 여자 한 명은 머리와 가슴에 총을 맞아 절명했고 남자 하나는 넓적다리에 총상을 입고 있었다. 죽은 여자의 이름은 정인숙. 한일회담이 열린 것으로도 유명한 요정 선운각의 호스테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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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설에 따르면 청와대 모임을 위해 전국에서 선발된 2백명의 여성 가운데, 외모, 교양 등 여러 기준으로 5명이 추려진 바 그 중에서도 1등을 차지한 재원 (이 말을 쓰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는데)이라고 했다. 그리고 총 맞은 남자는 그의 오빠였다.

정인숙의 집을 수색한 경찰은 그녀의 소지품 안에서 쏟아져 나온 명함과 그 주변 인물들의 무게에 짓눌렸다. 박정희 대통령, 정일권 국무총리, ‘남산돈까스’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무소불위의 중앙정보부장 김형욱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대한민국을 쥐락펴락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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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의 첨단을 달린다. 40여년 뒤 장자연이라는 이름의 한 연기자의 한 맺힌 자살 사건을 다루던 모습과 거의 비슷한 양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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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뒤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정인숙의 운전 기사 노릇을 하며 따라다니던 그 오빠가 누이의 방탕한 삶을 훈계하는데 정인숙이 그를 무시하고 폭언을 하자 이에 화가 난 오빠가 말다툼 중에 쏘아 죽였다는 것이다.

정인숙의 몸을 꿰뚫은 것이 문란한 누이의 삶을 계도하려던 오빠의 분노 어린 총탄이라는 것인데, 물론 이 말을 곧이듣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40년 뒤 한 여배우의 죽음 저편에 도사린 검은 그림자들이 그러고 있듯이, 힘 있는 것들이 경찰의 손과 언론의 입을 묶고 있다고 봤다.

언제나 ‘엄정 수사’를 공언하지만 매양 ‘엄한 수사’로 꼬리를 내리는 것 또한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뭣보다 정인숙의 사고 현장은 잽싸게 치워졌고 결정적인 증거라 할 권총도 온데간데 없었다. 정인숙의 오빠는 무기징역을 받았지만 정말로 그가 범인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3천5백만 인구 가운데 열 손가락을 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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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스물 여섯의 정인숙에게는 아들이 있었다. 흉흉한 여론은 이 아이가 박씨냐 정씨냐를 두고 대립(?)했다. 정씨는 국무총리 정일권이었고 박씨는 청와대의 주인 그 박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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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서실장 김정렴은 정인숙의 아이가 박정희 대통령의 아이일 수도 있다는 여론을 박정희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가 코가 빠지도록 혼이 났다고 한다. 왜 혼이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또 일설에 따르면 정일권 총리는 무릎을 꿇고 박정희에게 용서를 빌었다고 하는데 조금은 궁금해진다. 그것이 일국의 총리로서 스캔들에 휘말린 것에 대한 용서였는지, 아니면 감히 오야붕의 여자를 건드린 꼬붕의 엎드림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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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흥미진진한 소문들의 급류 속에 젊은 날의 나훈아가 부른 노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애꿎게 휩쓸리고 만다. 그 노래가 이렇게 개사되어 대학가를 강타하고 선술집의 화제로 떠오른 것이다.

"아빠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청와대 미스터 정이라고 말하겠어요~~~~나를 죽이지 않았다면 영원히 우리만이 알았을 것을 죽고 나니 억울한 마음 한이 없소......" 노래 가사는 ‘청와대’와 ‘미스터 정’을 모두 언급하면서 특정을 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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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든 어머니는 죽었다. 외삼촌이 죽였다고는 하는데 사람들은 그 아버지가 죽였을 거라고 했다. 그 아이가 장성해서 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 중의 하나인 정일권 전 총리에게 친자확인 소송을 건 것이 1991년. 그러나 그는 호부호형을 허락받지 못하고 소를 취하한 후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1994년 정일권 전 총리도 세상을 뜸으로써 아이의 아버지 용의자(?)는 세상에서 사라진다.

아버지 용의자(?) 중의 하나였던 박정희는 “배꼽 아래 인격 없다.”는 말을 즐겨 했다고 한다. 인간도 본능을 가진 동물이라는 점에서 수긍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사실은 완벽하게 틀렸다. 배꼽 아래에도 인격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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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화려한 달변과 풍부한 교양, 수려한 외모로 뭇 여인들을 유혹하고 한 명의 남자와 여자로서 어울렸다면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그나 그 수하들은 권력과 완력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배꼽 아래를 즐겁게 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었다.

"저 탤런트 아가씨 이쁘네" 대통령의 한 마디에 정보기관원이 그 아가씨를 찾아가서 "코드 원 (대통령)이 보자십니다."라고 청하고 말 안 들어먹으면 "너 인생 고장 나고 싶어?" 겁박하기도 해서 술자리에 끌어다 놓고, 그것도 각하께서 선택하시라고 두 명 이상을 데려다 놓고 술을 먹다가 '머리가 기울어지는' 쪽으로 로맨스(?) 상대를 정했던 것이 박정희의 말년이었듯이 권력 가진 수컷들이 그 권력의 그늘에서 자신들의 욕망을 발산하는데에 거리낌이 없었던 것은 우리의 서글픈 현대사의 막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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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 요정의 호스테스로서 높디 높은 누군가의 아들을 낳았다가 누구에게 죽는지도 모르고 죽은 한 젊은 여인과 원치 않는 자리에 불려 나가야 했고 그들을 ‘접대’하다가 지쳐서 목숨을 끊어버린 여배우는 그 깊이모를 막장의 이면을 비추는 희미한 백열등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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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을 감옥에 있다 출소한 정인숙의 오빠는 “국무총리실에서 나왔다는 괴한들이 동생을 죽였다.”고 증언했지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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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 아래 인격 없다니. 인권 따윈 대놓고 없었던 시절임을 또 한 번 상기합니다. 정황상 정 씨 오빠는 범인이 아닌 듯한데 19년 복역이라니. 그때를 그리워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제겐 끔찍하게 느껴집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끔찍한.... 때이기는 했지요.... 여러 변화가 있던 때이기도 하지만.

역사속에 이런 인물이 한 둘이 아니었겠지만 씁쓸하네요.

대체 19년 감옥살이한 그 오빠는 무슨 심경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그 아들 정성일도 몇년 전에 강력 사건 휘말렸던 기억이 나는데... 그 인생은 또 무엇이며.

이 사건 기억나요. 중학교 때 오래된 신동아에서 본것이 최초였고, 그 뒤로 몇번의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 기사를 읽은것 같아요. 그분의 여성편력은 이미 만천하에 공개되었는데 오빠의 억울함이라도 풀어드릴 방법은 없는 걸까요?

이미 세월이 흐를만큼 흐른 뒤라서요.....

감사합니다..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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