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100] Universal Traveler
Stage One.
며칠 발품을 팔았다. 이 시장은 미스터리 그 자체였다. 생산자와 판매자 사이에 합의 같은 것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모양인지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100% 파시미나인가, 울 혼방인가. 사람이 만든 것인가, 기계가 만든 것인가. 사람이 만들었다면 만든 이의 숙련도와 기술에 따라 또 가격이 열 배, 스무 배 차이가 났다. 공장에서 소매상보다 더 비싼 가격을 부르기도 하고, 견적을 받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기다려야 하기도 했다. 초모 덕분에 감촉의 차이를 알고, 보는 눈을 기를 수 있었다.
그래도 결국 거래처를 만나는 과정은 운명적 흐름 속에 있었다. 만족도 80점짜리 거래처를 겨우 찾았던 날, 길에서 우연히 만난 초모의 지인 도르제가(라다크를 찾는 인도 셀럽들을 가이드하는 포토그래퍼라고 했다) 우리의 눈에서 이글거리는 야망을 읽고 새로운 사람을 소개해준 것이다. 인도 유명 인사들도 파시미나를 사기 위해 즐겨 찾는 곳이라길래 이미 기대치가 높았다. 여러 조건을 비교해 본 결과 과연 만족도는 100점에 가까웠다. 라다크에는 일하러 간 것이지만, 멀리 떠나 놀고 싶은 마음과 매일 씨름하고 있었던 터라 하루라도 시간을 벌었다는 사실이 날 기쁘게 했다. 그날은 알치에 다녀온 다음 날이었다. 먹히는 기도의 맛이란 이런 것이다. 계약금을 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초모와 나는 소리를 꽥 지르며 몇 차례나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 시장에 대해 하나둘 알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 언제나 노력한 만큼이라는 것이, 그리고 동시에 우리의 운이 연동되어 작용한다는 것이, 너무 짜릿했다. 초모가 마날리에서 공수했다는 복숭아 와인으로 축배를 들었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해결될 것 같았다.
Stage two.
핸드캐리 통관 시 수입 신고하는 방법부터 알아보아야 했다. 외삼촌에게 소개받은 관세사에게 자세한 내용을 문의할 예정이었지만, 관련 내용을 공부하느라 웹페이지를 몇백 개는 열어 본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무언가를 물어보는 걸 싫어해서(두려워하는 것에 가까울지도) 보통 8 정도까지는 아는 상태로 만들어놓고 나머지를 물어보는 편이다.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통관할 때 원산지가 표시된 라벨이 상품에 부착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해당 기관에서 발급한 원산지 증명서가 있으면 한-인도 CEPA 협정에 의해 관세율 0%를 적용받을 수 있다는 것. 이 두 가지가 새롭게 알아낸 사실이었고, 현지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Stage three.
한국에서 라벨 작업을 할 생각이었는데 일이 복잡하게 되었다. 거래처 사장님이 'Leh, Ladakh'이라고 쓰인 라벨을 갖고 있어서 그것으로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국가명 표기가 원칙이며 'Made in India'라고 쓰인 라벨을 달아야 한다기에 라벨 제작부터 다시 시작했다. 사장님에게 부탁해서 라벨을 만들고, 봉제 작업을 해줄 재봉사를 수소문했다. 고급 소재인 만큼 조심해서 다루어야 하는 데다가 작은 크기의 라벨을 파시미나 한 장 한 장 부착해야 하니 잘 모르는 내가 생각해도 무척 귀찮고 까다로운 작업임이 분명했다. 나중에 제거하기 쉽도록 손바느질로 살짝 부착해야 했기에 더 그랬다. 몇 차례 연속으로 퇴짜를 맞고 나니 짜증이 살짝 올라왔다. 이건 원래 수출자의 업무가 아닌가. 옆집 가서 물어봐요, 앞집 가서 물어봐요, 여기저기로 패스되다가 마침내 우리의 작업을 해줄 귀인을 만났다. 낡은 핑크색 털모자를 뒤집어 쓴 깡 마른 사내가 재봉틀 페달을 밟으며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내일 찾으러 와요, 마담. 믿음직스러워라.
Stage four.
다음은 원산지 증명서. 원산지 증명서는 인도 대외무역총국 DGFT(Directorate General of Foreign Trade)에서 발급하는데 온라인으로 신청하고 발급받을 수 있다. 수출자가 수출입자 등록 번호인 IEC(Importer Exporter Code)를 갖고 있어야 하고, USB에 담긴 디지털 서명 인증서 DSC(Digital Signature Certificate)가 필요하다. 세상에. 이미 복잡하다. 이걸 어떻게 거래처 사장님에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파시미나 머플러에 적용되는 관세율은 8%다. 이건 분명 큰 금액이다. 과정이 아무리 복잡해도 포기할 수 없다. 사후에 소급 적용하여 납부한 관세를 환급받을 수 있다고 하기에 초모에게 일을 미뤄두고픈 마음이 살짝 생기려고 했지만, 최대한 내가 라다크에 있는 동안 모든 일을 마무리하는 편이 나중을 위해서도 좋았다.
일단 구글과 유튜브를 통해 개념과 절차를 숙지하고, 초모에게 먼저 설명해줬다. 똑똑한 초모는 단번에 이해했다. 이제 거래처 사장님에게 초모가 설명할 차례다. 우리 거래처 사장님은 좋은 사람이긴 한데 해외 진출의 야망 같은 건 없어 보였다. 그의 비즈니스는 내가 봐도 이미 충분히 잘 굴러가고 있었으니 IEC니 DSC니 그에게는 성가시고 피곤한 일인 것이 당연했다. 초모와 나는 사장님의 마음에 야망의 불꽃을 심기 위해, 왜 그의 레나 사업이 확장되어야 하는지, 왜 IEC와 DSC가 필요한지 한참을 설파했다. 원산지 증명서는 분명 수입자인 내게 필요한 것이지만, 그 모든 것이 준비된 수출자라는 사실은 레나 산업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에게도 분명 경쟁력일 테니까. 그의 딸이 한국 콘텐츠의 빅팬이라는 사실을 입수한 나는 당신의 제품으로 한국에서 대박을 터뜨려서 당신과 당신 딸을 한국으로 초대하겠다고 추가 너스레를 떨었다. 이 너스레는 제법 설득력이 있었고, 사장님은 한국 진출의 꿈을 품기 시작했다. 그의 입가에 번진 야망의 미소. 그는 기꺼이 모든 과정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그 결정과 무관하게 어차피 일은 우리가 다 해야 하고 필요할 때마다 그를 들들 볶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무언가 기억난 듯이 잠시 메일함을 뒤적이더니 DGFT로부터 받은 메일을 내게 보여줬다.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DGFT에서 이런 메일을 받은 적이 있어요."
메일 내용을 보니 IEC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DGFT에서 무언가 이루어진 흔적이라는 사실만으로 이미 약간 희망을 품기 시작한 초모와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다시 만쥬쉬리와 아치 초키 돌마를 찾았다.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힌디어로 한참 대화를 나누더니 초모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힌디어, 라다크어, 영어가 뒤섞인 화려한 언변이 한참 이어지고, 확신에 찬 그녀의 목에 걸리는 합격 목걸이.
"사장님 IEC 있대. 갱신할 필요도 없이 유효한 상태래. 게다가 사장님이 라다크에서 IEC 있는 유일한 사업자래. 우리 기도가 또 먹혔어. 애초에 제대로 찾아온 거야. 소오름."
사장님은 자신이 IEC를 갖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라다크의 유일한 IEC 보유자라니? 이 부분은 사실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됐다. 이러니 내가 운명 타령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쥬쉬리와 아치 초키 돌마에게 잠시 감사 기도.
Stage five.
DSC로 가자! 사장님은 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까르길에서 그의 일을 돕는 사람인데, DSC가 필요하다고 하니 까르길에서 DSC를 만들어 레로 보내겠다고 했다. 레에서 만드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사장님에게 말했지만, 그렇게 되면 본인이 직접 여기저기 움직여야 했기에 꺼려지는 모양이었다. 불안했던 초모는 까르길맨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DSC의 용도에 대해 다시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까르길에서 레까지는 거의 한나절이 걸렸다. 소남 노르부 병원 앞 약국에 맡겨 놓았으니 찾아가라는 지령이 전해졌다. 다음 날 저녁에야 DSC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첩보 작전 수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Stage six.
자, 이제 마지막이다. 원산지 증명서 신청 페이지에 사뿐히 랜딩했다. 하도 많이 들어가서 URL과 IEC는 이미 외운 상태. 경건하게 DSC를 꼽고, IEC를 입력하고, 자 다음. 디지털 서명을 위한 파일이 다운로드 되었다. 확장자명이 심상치 않다. 파일을 여는데 자꾸 에러 메시지가 뜬다. 다시 구글링. 해당 파일은 자바 어쩌구로 열어야 하니 자바 어쩌구를 설치하란다. 자바라… 싸늘하다. 침착하게 하라는 건 다 해본다. 파일 열기 다시 시도. 뭔가 되는 듯하다가 이번에는 다른 형태의 에러 메시지가 떴다. 뭐지. 왜 안 되지. 코앞인데. 다 왔는데. 사장님은 자신의 노트북을 우리에게 내어주고 알아서 해보라는 듯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외로운 사투가 시작되었다. 자바와 업어치기 매치기를 벌이고 있는 와중 지금 이 순간 치토스 바비큐맛과 사과주스 아피를 미치도록 먹고 싶다는 나의 혼잣말을 접수한 초모는 반드시 구해올 테니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수색에 나섰지만, 온 동네를 다 뒤지고도 치토스도 아피도 찾지 못한 채 쓸쓸히 귀환했다. 계속되는 시도와 실패로 우리는 지쳐가고 있었다. 사장님이 퇴근도 못 하고 밤늦게까지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날 밤엔 일단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내일 다시 올게요. ‘내일 다시 올게요’라는 말이 그대로 저주의 메아리가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이후 대여섯 차례 더 외쳤던가.
Stage seven.
다음날에는 피시방을 찾아갔다. 같은 에러 메시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시방 사장님에게 물어봤지만,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 대신 그의 역할은 다음 힌트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이 건물 지하에 있는 컴퓨터 수리점에 한 번 가서 물어봐요." 역시 그냥 만나지는 사람은 없다. 피시방에 30분은 넘게 머물렀는데 그는 돈도 받지 않았다. 피시방 사장님이 알려준 컴퓨터 수리점은 컴퓨터 외에 모바일도 다루는 곳이었다. 유심을 개통하러 온 손님들로 바글바글했다. 자리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우리 차례가 되어 "저기요... 혹시..."로 조심스럽게 말을 뗐다. 사실 이건 좀 웃기는 상황이 아닌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한다는 마음으로 구구절절 사정을 설명했다. 그는 확실히 뭔가 좀 더 알지만, 몇 시간을 쏟고도 결국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의 시간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싶었으나 그는 역시 돈을 받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수리점 사무실에서 머리를 모으고 끙끙대던 우리의 몇 시간이 그에게 그리고 나에게 어떤 보상으로 돌아올지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 힌트가 전해졌다. 작전명 '스카라의 자베드'. 수리점 사장님은 자베드라면 틀림없이 방법을 알 거라고 했다. 스카라의 자베드라. 이름부터 해결사의 향기가 물씬 난다.
Stage eight.
마침내 내게는 단 하루가 남았다. 빠루 게스트하우스 양첸네 식구들은 아파 죽겠다던 애가 어딜 밤낮으로 쏘다니는지 궁금해했다. 저녁 파티다 뭐다 매일 초대를 받았는데 너무 바빠서 번번이 거절해야 했다.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는데 양첸네 가족에게는 늘 미안하다. 마지막 날에는 페이 마을에 사는 초모 친척의 잔칫집에 가야 했다. 잔치에 다녀와서 저녁에 스카라의 자베드를 찾아가기로 했다. 추수가 끝난 가을의 라다크는 곳곳이 연일 잔치다. 결혼도 이때 몰아서 한다. 가을에 결혼한 신혼부부들이 혹한기 겨울에는 섹스 말고 할 일이 없어서 라다크에 8월, 9월에 태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진실인지 우스개인지 모를 말을 초모가 덧붙였다. 우리가 갔던 잔치는 결혼식은 아니었고, 아기가 태어난 후 20일이 지나면 하는 잔치인데 애가 다 커서 곧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서야 뒤늦게 20일 잔치를 챙겨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애가 다 커서 이미 학교에 갈 나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초모의 과장일 것이다. 몇 날 며칠 DSC와 싸우며 번번이 패배의 쓴맛을 보고 있던 터라 잔칫집의 술상은 나를 금세 취하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창을 따라주던 호스트는 이 창을 마시면 오늘 자리에서 못 일어날 거라고 경고했는데, 저녁에 '스카라의 자베드' 작전을 수행해야 했던 초모와 나는 몹시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자리에서 일어나 레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마침내 스카라의 자베드를 찾아갔다. 사실 나는 초모를 믿고 있었기 때문에 스카라의 자베드와 오늘 당장 담판을 짓지 못한다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낮부터 술도 마셨겠다 마지막인 오늘만큼은 그냥 다 잊고 놀고 싶기도 했다. 초모는 달랐다. 내가 없는 상황에서 혹시 모를 변수에 대응해야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일 테니 문제의 원인이라도 지금 알아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야 해결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자베드의 사무실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해결사의 사무실다웠다. 그의 테이블 위에는 DSC가 담긴 USB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초모의 브리핑이 이어졌다. 자베드의 손에 건네진 DSC가 그의 손바닥 위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내내 그의 표정을 살폈다. 이 사람은 답을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DSC를 노트북에 연결하고 몇 가지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이 DSC는 DGFT용이 아닌 것 같은데요."
"네? 뭐라고요?"
"일단 한 번 해볼게요."
청천벽력. 그가 원산지 증명서 신청 페이지에 접속했고, 같은 에러 메시지가 떴다.
"DSC에도 여러 등급과 종류가 있어요. 이거 말고 DGFT용 DSC가 필요해요."
아... 까르길맨... 당신이 엑스맨이었어... 더 강력하게 '까르길'이 아닌 '레'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했는데, 일단 급한 마음에 별말 없이 수긍한 대가를 이렇게 치르게 될 줄은 그땐 알지 못했지. 어쨌든 원인을 알았으니 됐다. 우린 무척 후련했다. DSC부터 다시 만들면 된다. 이번에는 까르길맨이 아닌 스카라의 자베드에게 일을 맡기면 된다. 결국 라스트 스테이지는 초모의 임무로 남겨졌다.
모든 시도, 모든 실패, 모든 성공, 모든 만남, 모든 헤어짐, 이 모든 과정, 이 모든 여행으로 내가, 우리가 얼마나 강해지고 있는지 이제는 실시간으로 느낀다. 알게 된다. 못 할 일은 없다. 후회는 그 모든 것을 하지 않은 자의 몫이다.
아아 그러니까 나는 유니버설 트래블러. 영원히. 영원히.
I know so many
Places in the world
I follow the sun
In my silver planeUniversal traveler
Universal traveler
Universal traveler
Universal travelerIf you have a look
Outside on the sea
Everything is white
It's so wonderfulUniversal traveler
Universal traveler
Universal traveler
Universal travelerSo far
So far
So far awayI met so many
People in my life
I've got many friends
Who can care for meUniversal traveler
Universal traveler
Universal traveler
Universal travelerTrust fills everywhere ?
And tomorrow
Is a brand new day
Let's go somewhere elseUniversal traveler
Universal traveler
Universal traveler
Universal travelerSo far
So far
So far away
So far
So far
So far away
So far
So far
So far away
So far
So far
So far away
우왕…. 요새 이야기는 매력적이어도 그 하나하나 쓰이지 않은 순간의 한 인간은 얼마나 소모되고 에너지를 쓰고 지치는가에 대해 생각하던 중인데요. 여기 쓰이지 않은 수많은 순간까지 춘자 너무 멋져요 이거슨 거상 모험기!! 분명 원대한 사업을 이루어내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