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방랑]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로 변하는 6월의 쿠스코(CUSCO)

in #travel6 years ago (edited)

남미를 대표하는 3대 축제가 있다. 브라질 리오 카니발(Rio Carnival), 볼리비아 오루로 카니발(Oruro Carnival), 페루 인티 라이미(Inti Raymi).   페루의 인티 라이미는 가톨릭을 배경으로 한 축제, 카니발과 달리 잉카 전통에서 출발한 축제로 6월 중순부터 열흘간에 걸쳐 열린다. 

인티 라이미는 ‘태양’을 뜻하는 ‘인티(Inti)’와 ‘축제’를 뜻하는 ‘라이미(Raymi)의 합성어로서 우리말로 하자면 태양절. 축제가 열리는 장소는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CUSCO)로 세계의 ’배꼽‘이란 뜻을 가진 쿠스코는 고대 공중도시로 유명한 마추픽추로 가기 위한 거점 도시다. 일년 내내 쿠스코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지만, 잉카 문화의 진수를 맛보기 위해선 6월이 쿠스코 방문하기에 최적기다. 

 

인티 라이미는 페루의 대표적인 작물 옥수수로 만든 술을 황금 병에 담아 태양신에게 바치는 행사에서 시작되었다. 잉카시대 사람들은 한 해 농사의 성공과 실패를 절대 권력자인 잉카, 즉 왕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풍년이 들면 왕이 정치를 잘한 결과이고, 농사를 망치면 왕이 정치를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인티 라이미는 절대 권력자인 왕이 주관하는데, 왕은 7일 동안 단식하여 몸을 청결하게 만든 후에야 축제에 참가했다고.

그러나 잉카 제국이 스페인 침략자들에 의해 무너지고 스페인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터 인티 라이미의 명맥은 끊어졌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한 뒤로도 부활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4년 예술가들이 인티 라이미 제사의식을 쿠스코에서 재현한 것을 계기로 다시 축제가 열리기 시작했고, 20여년이 흐르는 사이 세계 각지의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남미 3대 축제 중의 하나로 성장한 것이다.

 

태양절 의식은 쿠스코의 언덕, 잉카 유적지 삭사이와만에서 재현된다. 잉카인은 콘도르(Condor)와 퓨마(Puma)를 숭배했는데 하늘에서 보면 공중도시 마추픽추는 콘도르의 형상을, 세계의 배꼽 쿠스코는 위에서 보면 퓨마의 형상을 하고 있다.  제사의식이 열리는 삭사이와만은 퓨마의 머리(Head) 부분에 해당한다. 현재 쿠스코의 중심 광장인 아르마스를 둘러싼 거대한 가톨릭 성당은 모두 스페인이 잉카문화를 파괴하기 위해 삭사이와만을 부수고 가져온 돌들로 지었다고 한다. 파괴된 채로 남아있는 삭사이와만 유적지는 잉카인들이 얼마나 돌을 잘 다뤘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다.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돌이 빈틈없이 맞춰진 모습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신비.

현재 태양절 의식을 집행하는 왕(Inca)은 쿠스코 주민 가운데 선발해서 치른다. 전통의상을 갖춰 입은 여자들이 들고 있는 곡식을 불에 태워 태양신에게 바치고 본격적인 제사의식이 시작된다. 페루의 대표적인 동물인 라마(Rama)를 제단 위에 올린 후 왕이 라마의 배를 가르고 심장을 끄집어내 하늘 높이 치켜 올린다. 심장이 꿈틀거려야 길조다. 모든 제물이 태워져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면서 태양절은 막을 내린다.

인티 라이미 축제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이벤트는 아르마스 광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퍼레이드다. 역동적이고 격렬한 춤으로 표현되는 전통의상 행렬. 초등학생들의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매일 매일 중고등학교, 대학교 학생 순으로 차례차례 바통을 이어받아 퍼레이드가 계속된다. 축제의 끝이자 실질적인 제사의식을 치르기 전날이 퍼레이드의 마지막 날, 이날은 각 직종별 각 마을별로 퍼레이드를 벌인다. 매년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팀이 불어나 2015년부턴 100개 팀이 넘게 참가하면서 이른 아침에 시작된 퍼레이드가 자정이 넘어도 끝나지 않을 정도에 이르렀다.

관광객들은 주로 제사의식이 치러지는 축제 마지막 날과 전날 퍼레이드에 맞춰 쿠스코를 방문하지만 퍼레이드의 하이라이트는 가장 먼저 시작되어 2~3일에 걸쳐 이어지는 초등학생들의 퍼레이드다. 땡볕 아래서 퍼레이드가 이어지다 보니 성인으로 갈수록 금세 지쳐서 춤의 활력은 떨어진다. 그에 반해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폴짝폴짝 넘치는 에너지를 사방으로 튀겨낸다. 아이들이 다양한 전통의상을 입은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아르마스 광장 동서남북 각각의 무대에 이르면 각 팀마다 준비해 온 음악을 연주하며 춤을 추는데, 자기 차례가 된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잉카 전통 춤으로 표현하고, 그 춤사위는 혼을 빼놓는 음악에 실려 구경꾼들에게 전달된다. 

아이들이 중력을 벗어던지고 허공 위로 뛰어오를 때마다 관람객들의 표정도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간 듯 빛을 발한다. 


인티 라이미 축제 기간 내내 쿠스코는 들썩거리지만 퍼레이드 마지막 날은 그동안 보이지 않던 술병이 대낮부터 굴러다닌다. 아침부터 나와서 몇 시간째 자기 팀이 출전할 차례를 기다리다 보면 허기도 지고, 목도 마른다. 게다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음악까지 분위기를 돋우니 자연스레 어른들은 술이 당긴다. 하나, 둘 가게에서 사온 술을 들이키기 시작하고, 배를 채울 안주가 돌고, 이쯤 되면 퍼레이드를 하러 왔는지 친구들과 어울려 낮술을 마시러 왔는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다. 그래도 자기 차례가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복장을 정돈하고 가면을 쓰고 기운차게 행렬에 나선다. 물론 술기운 덕분이다.    

퍼레이드를 끝낸 팀들은 광장에서 빠져나와 차량 통행을 막은 도로변에 앉아 2차를 한다. 옥수수로 빚은 전통주 치차부터 맥주, 피스코, 보드카, 럼주 등 온갖 술이 잔을 채우고, 도로변을 따라 닭고기, 소고기, 생선튀김을 파는 길거리 음식점이 성황을 이룬다. 외국인 관광객은 이날만큼은 굳이 제 돈 주고 술과 음식을 사 먹을 필요가 없다. 부에나스 노체스!(좋은 저녁)라고 인사만 건네면 현지인들은 다함께 축제를 즐기자며 술과 음식을 권한다. 퍼레이드를 마친 사람들과 어울려 가면과 복장을 빌려 입고 떠들고 놀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 밝아 온다.  

이국에서 축제를 접할 때마다 우리나라엔 이런 축제가 없다는 게 늘 아쉬웠다. 유럽과 중남미 뿐 아니라 인도에선물감을 얼굴에 바르고 던져대며 노는 홀리(Holi)가 있고, 태국, 라오스에선 서로서로 물을 뿌려대며 한바탕 신나게 노는 새해맞이 물축제(Pi Mai)가 있다. 퍼레이드가 동원되는 곳에선 하루 종일 음악과 술과 춤이 끊이지 않는다. 집집마다 스피커를 마당이나 집 밖으로 설치하고 쿵작쿵작, 아이들은 물풍선을 던져대고 행복한 비명이 거리를 가득 채운다. 다 함께 어울려 '살아있다는 건 얼마나 신명나는 일인가!'를 흠뻑 느끼며 해방감을 만끽하는 축제.    

1년 내내 전 세계 어디에선가는 축제가 열리고, 축제를 통해 인간은 해방되고, 날아오른다.    6월, 페루 쿠스코에선 인티 라이미가 열린다. 


Written and Photo by @roadpherom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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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건 얼마나 신명나는 일인가!'
정말 축제와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네요. :)

어떤 현자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삶이 곧 축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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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코 축제때 꼭 가고 싶은 곳이네요. 우리나라도 보령머더축제 있잖아요 ㅎㅎ

여름에 한번 가봐야겠군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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