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커피 #3. 언어의 온도

in #kr-book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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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에 친정에서 발견한 책으로 깔끔한 문체와 배열을 보며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도 있구나 싶었다. 시간이 부족해 다 못 읽고 돌아와서 아쉬워하다가, 얼마 전 한국의 웹사이트에서 이것저것 사는 김에 이 책도 함께 주문했다.

어려운 내용 없이 일상에서 보고 느낀 점들이 주제와 함께 2~3페이지에 걸쳐 서술되어 있기에 책도 술술 읽히는 편이다. 책을 읽다 보면 곱씹거나 생각할 부분도 생기는데, 이런 점 때문에 나는 드라마나 영화 감상보다는 글 읽는 것을 선호한다. 드라마나 영화는 원치 않는 장면에서 늘어지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지는 시점에 빨리 넘어가기도 하는 등 내 생각의 흐름과 박자가 맞지 않을 때가 많다. 반면에 책을 읽을 때는 관심 없는 부분은 대충 훑고 지나가고,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페이지에는 줄을 긋거나 표식을 남길 수 있으며, 생각이 필요한 순간에는 책을 덮을 수도 있다.

같은 책이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 느낀 바가 다르겠지만, 나에게 와닿았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탑이 너무 빽빽하거나 오밀조밀하면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폭삭 내려앉아. 어디 탑만 그렇겠나. 뭐든 틈이 있어야 튼튼한 법이지….”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시간을 들여 그 부분이 조금 더 나아질 수는 있다. 학생 그리고 직장인일 때의 나는 성적과 프로젝트 성과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내 분야에서 완벽해지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기에, 더욱더 고민만 많았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기에 공부나 일에 집중할수록 건강을 챙기거나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결국 얻은 것만큼 잃은 것도 많았다. 오히려 나의 모자란 부분을 일찌감치 인정하고 틈을 허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들 앞에서 “난 전문가입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할 수 있어야, 그리고 그에 따른 실력과 책임감을 겸비해야 비로소 프로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아마추어는 어떤 일이나 과정에서 재미와 즐거움 같은 요소가 사라지면 더는 하지 않는다. 아마추어의 입장에선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추어의 행복한 삶을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책임감을 버리겠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재미와 즐거움을 버리지 않기로 했다. 나는 왜 무작정 프로가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을까?


지난날은 절대 멈추지 못할 것 같은 삶이었기에 지금도 이런 내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바쁘게 살았던 지난날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고, 배운 것도 많았으며 조금이나마 금전적인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심적으로 힘들었던 때가 많았다.

“우린 늘 무엇을 말하느냐에 정신이 팔린 채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힘들 때마다 속내를 털어놓았던 친구가 몇 있다. 한두 번은 괜찮았을 테지만, 풀리지도 않는 내 개인적인 문제를 계속 듣고 들었어야 할 그들에게 미안했고 내뱉은 말에 후회도 많았기에 더욱 우울해졌다. 말함으로써 푸는 방법만 알았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던 시기에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는데 뜻하지 않게 위로를 받았다. 그것이 책 읽는 것을 좋아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다. 정리도 되지 않은 우울함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대신 책을 읽는 동안 내 마음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깔끔한 이 책을 접하고 나니 어쩐지 저자는 나와 무척 다른 사람인 것 같이 느껴졌다. 저자의 책상은 너저분한 내 공간과는 달리,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정리정돈 되어있을 것만 같다. 실제로 아는 사람이었다면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었을 법도 한데, 이렇게 책으로 마주하니 나의 공백에 대해 따스한 위로를 건네는 고마운 사람이 되었다.

“종종 공백이란게 필요하다. …
공백을 갖는다는 건 스스로 멈출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제 힘으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홀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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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면 막 여유가 생기고 뭐든 넉넉하게 볼 수 있을 거 같네요..

책을 봐서 여유가 생기는건지, 여유가 있어서 책을 읽는건진 애매해도요. 그래도 깔끔한 문장들이라 좋았어요.

글이 주는 위안을, 읽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저도 이 책을 사서 읽어보고 싶네요.
저에게도 많은 도움을 줄것 같아요.
많은 부분을 공감 했습니다..

짧고 짧은 이야기의 연속이라 틈틈이 읽으시기 좋을거예요. 추천드려요!

책을 읽어서 무언가를 배운다는게 나와 다른사람의 삶, 생각을 배울수 있기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잘보고 갑니다 @realsunny님!
편안한밤 되시고 다음주도 최고의 한주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행복한 한 주 되세요!

저도 책이 제가 원하는 속도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더라구요 :)

:) 역시 저만 그런게 아녔군요!!!!!

써니님 저도 이 책을 무척 담백하게 잘 읽었답니다. :) 이 글 덕분에 살짝은 잊혔던 글의 세밀한 문장들이 새롭게 와 닿아요. 인용해주신 글귀들이 날이 선 채로 새겨지는 걸 보면, 지금 저에게 딱 필요한 말이란 뜻이겠죠? ㅎㅎㅎㅎ 공유 감사합니다!!

고민이 많으신 시기실텐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다니 다행이예요. 잘 마무리 하시고 아름다운 남섬으로 가시길 바랄께요.

감사해요, 써니님!
오늘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밝은 생각들로 가득 채우고 있어요. :)
응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셔요 ㅎㅎㅎㅎ

이거 일전에 누가 소개해주시고, 아마 광고도 본 듯 하네요..
공백을 갖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지금의 공백을 통해 느끼고 있어요.

:) 그래도 어찌 보면 돌아갈 곳이 있는 공백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언어의 온도.... 제목부터 시적으로 느껴집니다.

네! 내용도 차분하고 좋았어요.

사놓기만 하고 못 읽었어요
써니님의 포스팅을 보니 당장 꺼내서 몇몇 챕터라도 읽어봐야 겠단 생각입니다!!!^-^

짧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있으니 꺼내보세요. 그나저나 도담랄라님과 말을 높이니 급 어색해요 ㅋㅋ

ㅎㅎ 첫만남이 c...거기라서...
써니형아 말 편하게 해도 돼
흐흐♡

응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호칭은 도담랄라형이라고 할께.

좋아 써니형! ㅎㅎ

와이프도 이 책 읽었던데 ^^ 침대 위에 있는거 한 번 집어봐야겠습니당 ㅎㅎ

“탑이 너무 빽빽하거나 오밀조밀하면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폭삭 내려앉아. 어디 탑만 그렇겠나. 뭐든 틈이 있어야 튼튼한 법이지….”

그리고 이 말을 같이 일하는 그룹장에게 해주고 싶네요.. 어디 틈 하나 없이 감히 모든 것을 다 커버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지 늘.. 으! 스트뤠스~ ㅋㅋ

모든 것을 다 커버하면 정말 좋겠지만, 그런 일은 불가능하더라고요. 으으 하지만 무슨 일이 발생할까 두려우실 그룹장님도 이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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