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네이버를 말한다! - 2.네이버 NAVER 회사명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in #kr7 years ago (edited)

NAVER_old_logo.png

NAVER 네이버
대한민국 검색엔진의 대명사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포털 서비스의 명칭
현재는 법인명 이기도 한, 한국 인터넷의 상징

그 명칭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KR10001 사번 1번(네이버 초기 가나다 순으로 사번을 정리했었다)에 빛나는 당시 삼성 SDS 대리 강석호(현재 네이버 이사)님이 제시했던 의견이다.

NAVIGATE(항해하다) + ~ER(사람지칭) 결합이다.
네이버는 인터넷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이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양한 정보를 얻고 활용하는 자유로운 세상의 실현
이것이 네이버 창립 초기 이상향과 잘 맞닿아 있었고,

그리하여 기술 기반으로 단순히 정보만를 찾아주던 서비스 [웹글라이더] 명칭은 인터넷 정보의 바다를 자유롭게 항해하는 이용자들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실행하는 회사 [네이버 NAVER]가 되었다.

앞 글에서 소개했듯이 강석호님의 초기 대표적 업무는 front end 개발자였다. 하지만 십여명의 인력으로 검색엔진 기능을 포함한 다양한 서비스 모두를 대응하기 쉽지 않았고 구성원 모두가 적극적으로 본인이 맡아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던 시기였다.

실제로 1999-2000년에 걸친 네이버 초기 1-2년은..
모든 구성원들이 멀티플레이어 였다고 할 수 있겠다.

네이버 사번 1번이자, 창업멤버 중 한 명이었던 강석호님의 경우, 디자인/서버관리/서버조립/색인데이터관리/저장시스템개발/보안/웹서버관리/퍼포먼스튜닝/DA광고서버개발,관리 등 본인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다.

그리고 나는 인터넷 서퍼 업무의 기본인 네이버 디렉토리 분류 생성, 관리, 사이트 등록 이외에도 쿨사이트(당시에는 컨텐츠가 풍부하고 UI 구성이 좋은 사이트들을 쿨사이트라고 불렀다) 지정과 언론사 기사 제공 및 홍보를 위한 추천 사이트 리뷰, IT 잡지 원고 작성, 경품/이벤트 정보 채널운영(관련 게시판 관리), 네이버 씨네마 채널운영(오프라인 영화 행사 진행도 했었다) 등의 다양한 일을 했었다. 당시 네이버 씨네마 서비스를 관리하며 오프라인 영화 시사회 & 영화 벙개를 통해서 지금의 와이프를 만났고, 와이프는 그 인연으로 2000년 1월 네이버에 입사해서 공식 사내커플 2호가 되었고, 54번의 사번을 부여받고 네이버 검색광고 업무 10년을 거쳐 현재 네이버 지도 서비스 업무를 8년째 해오고 있는 네이버 경력 18년차의 이상근님이다.

돌이켜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즐겁게 일했던 시절이었고 아직 아무도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않았고, 네이버도 국내 다양한 검색엔진 10여개 중의 하나(실제로 당시 네이버의 인지도는 검색엔진 업계에서도 7-8위 수준으로 도무지 역전의 기회가 보이지 않았었다)였을 뿐이었지만, 구성원 대부분이 즐겁고 신나게 일하며 내공을 쌓아가고 업계의 많은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맺어가던 시기였다. 물론 당시 잠시 네이버에 몸 담았다가 떠나간 사람도 생겨나기 시작했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네이버 회사의 가치와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들도 있었다. 실제로 당시 네이버의 서비스 방향성과 실행의 결과들 중에는 참담한 실패로 기록된 것들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네이버의 야심찬 오프라인 Big company들과의 온라인(인터넷) 비즈니스 교두보 확보를 위해 협력한 ‘마이비즈’가 그랬다.

마이비즈 서비스는 네이버가 중심이 되어 대한항공-삼보컴퓨터-삼성화재-하나은행-현대증권-LG전자-LG캐피탈 등 7개 업체와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고 통합 마케팅 및 세일즈 프로모션을 진행한다는 것이었지만, 이용자들에게 실질적은 이익이나 혜택이 많지 않았고, 네이버를 포함한 8개 회사들이 업계별로 압도적인 No.1도 아니었으며, 이 협력사업이 가장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결국 서비스 런칭 이후 네이버는 십 수 억원의 제휴 및 운영 비용을 얻는 정도로 중단 되었다. 물론 당시에는 큰 돈이었고, 중요한 영업이익이 되어주었지만 장기적으로 네이버를 먹여 살리는 캐시카우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당시 이러한 경험들은 네이버를 기술 솔루션 회사로 포지셔닝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실제 이해진님(당시 네이버컴 대표이사)은 1999-2000년 네이버 초기시절 비전을 [기술기반 검색엔진 솔루션 회사]로 명명하였다. 이에 따라서 수백, 수천만건의 웹 데이터 크롤링, 색인, 저장과 검색기술을 바탕으로 대기업 사내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해주는 역할을 주력 사업으로 설정했다. 실제로 2-3개 대기업과 비슷한 계약을 맺거나 협의가 진행되었으나, 2000년 이후 초고소 통신망의 신속한 도입에 따라 인터넷 웹 데이터는 대기업 사내 데이터 수준을 수십-수백배 이상 뛰어넘게 되었고, 네이버는 자연스럽게 B to B 서비스가 아닌 B to C 서비스를 주력으로 하는 인터넷 서비스 회사로 포지셔닝 하게 되었다. 이해진님은 이를 계기로 [나는 격변하는 인터넷/IT 시장의 6개월 뒤를 예측할 수 없고, 예측하지도 않겠다. 현재 주어진 상황과 역할에서 기민하고 효과적인 실행을 바탕으로 혁신을 이루어 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라고 직원들에게 이야기를 했고, 이후 대외적인 인터뷰 및 행사에서도 미래예측에 대한 말은 몹시 아끼게 되었다.

당시 인터넷 비즈니스의 미래는 예측 불가능 했고..
사업의 변화나 삶의 인연은 알 수가 없었다.

19990126.png

*위 이미지는 1999년 1월 26일 네이버 모습이다!
*초기 네이버 기본색상은 초록이 아닌 노랑이었다.
*V가 강조되어 마치 태권V를 연상시키는 UI였다.
*사이트 예전모습 궁금하면 Wayback Machine 참고

*사이버커뮤니티'마이비즈' 비즈니스 새모델 관심집중 검색엔진 네이버컴 이해진사장
1999.11.01 / 경향신문 / 17면 / 경제 / 기사(뉴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110100329117003&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9-11-01&officeId=00032&pageNo=17&printNo=16893&publishType=00010

*이해진님 프로필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jky&pkid=1&os=97417&query=%EC%9D%B4%ED%95%B4%EC%A7%84

*강석호님 프로필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jky&pkid=1&os=184998&query=%EA%B8%B0%EC%97%85%EC%9D%B8%EA%B0%95%EC%84%9D%ED%98%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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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역사책 읽는거 같습니다ㅎㅎ 연재 계속 해주세요!

네네. 열심히 챙겨보겠습니다!

네이버 초기 이야기 재밌네요 ^^

넵! 앞으로도 잘 올려보겠습니다.

스팀잇에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네네. 스팀잇도 열심히 쓰고 활용해 보겠습니다. 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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