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기도의 습관을 들였다.

in #christianity7 years ago

사람들은 기도하는 일이 어렵다고 한다. 졸린 눈을 부비고 일어나 칼바람을 맞으며 매일 새벽기도회의 참석을 결심하는 것은 자신의 한계와 인내심을 시험하는 일로 생각하고 있는 이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렇게 기도를 습관들이는 게 어려운 이유는 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좋은 성적으로 명문대학에 진학할 것이라는 기대는 당연한 일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혜택이 현실에서 확연히 볼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학생들이 행복한 미래를 위해 고단한 몸을 공부에 투자하고 있다. 돈을 버는 일도 힘든 건 마찬가지이다. 마트의 계산대 앞에 서서 긴 하루해를 고객들과 씨름해야 하는 계산원, 습기와 냄새로 뒤덮인 주방에서 모자와 장화도 못 벗고 하루를 버텨야 하는 식당의 찬모, 위험한 현장에서 무거운 건축물을 쉴 새 없이 나르는 노동자는 그들이 치루는 고된 노동의 대가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 해가 지면 그들의 손에는 약속된 지폐가 쥐어질 것이다. 그 돈으로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사들고 예쁜 아내와 귀여운 자녀들이 기다리는 행복한 가정으로 귀가할 수 있다. 이들은 전부 눈으로 보이는 세상의 일이다. 이처럼 세상의 일은 경험으로 확인하고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영적인 일은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몸으로 느낄 수 없다. 단지 영적인 눈을 가져야만 깨달을 수 있다. 그래서 기도하는 일이 어려운 것이다. 힘들게 기도한 대가를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영적인 일에 대한 대가는 영적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영적인 눈이란 다름 아닌 영의 세계에 대한 깨달음이다. 세상은 육체의 감각기관으로 알 수 있지만 영의 세계는 오직 영적인 깨달음으로 체험할 수 있다. 결국 영적 시야를 가지려면 경건의 훈련을 통해 영적 능력을 계발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하다. 영혼의 존재와 영원한 세계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인내와 고통이 수반되는 영적 훈련을 감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믿음의 필요성을 역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미 돈독한 신앙인일 게 분명하다. 다만 믿음도 있고 영성의 필요성도 절감하지만 이를 얻는 방법에 대한 확신과 계발을 위한 훈련이 부족할 뿐이다.

경건의 습관을 들이는 일은 언제나 기도가 즐겁기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의 필요성은 누구나 절감하지만 성실하게 기도생활을 하는 이들은 드물다. 적지 않은 크리스천들은 형식적이거나 아님 특별한 문제가 생겨야 겨우 시작하곤 한다. 때로는 기쁨과 열정에 가득차서 기도하고 싶은 때도 있지만 아주 드문 일이다. 게다가 꾸준한 기도생활을 방해하는 훼방꾼들은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요즈음 현대인들은 야행성 동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자정이 지나서도 잠잘 생각이 없다. 야심한 시간을 넘겨 잠이 드는 이들이라면 새벽에 기도하러 깨는 일은 고문에 가깝다. 또한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일들이 수시로 괴롭힌다. 걱정과 근심, 염려와 불안이 들어찬 상태에서 기도하는 일은 고통에 가깝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도를 하고 싶어도 기도시간이 나지 않는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돈을 버는 일에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한다. 원치 않더라도 아침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 눕는 시간을 반복해야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계비의 기준을 떠나 세상은 우리에게 그렇게 살라고 강요하고 있다. 먹고 살려면 정신없이 뛰어야 하는 세상에서 기도시간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기도가 하고 싶어 견딜 수 없어 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래서 습관이 필요한 것이다.

양치질을 하지 않고 잠자는 이는 없다. 어쩌다 양치질을 하지 못하는 잠자는 일이 있다면 입안에 온갖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 께름칙한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죽을 때까지 몸에서 떼어내지 못하는 습관도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성화 속에 겨우 습관으로 붙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공부나 운동도 양치질을 하는 습관처럼 습관을 들였다면 탁월한 학습능력으로 폼 나는 인생을 살거나 건강하게 살아갈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는 경건의 습관을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들이는 부모를 찾기 힘들다. 부모로부터 기도하는 습관을 종용받은 일은 있겠지만 공부하는 것처럼 철저하게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지 못한 것이다. 아쉽지만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경건의 습관을 들이면 된다.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위의 말씀은 천국을 차지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함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천국이란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를 말한다. 부활한 몸으로 영원히 살게 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성경적으로 말하는 천국이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이고, 성령이 우리를 통치하게 된다면 우리 몸이 성전이 되며(고후6:16) 우리의 마음이 천국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눅17:21) 그런 천국은 평안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부림치며 벌이는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 전리품으로 얻는 곳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일성수에 십일조만 성실하게 드리면 당연히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위 말씀의 ‘침노’라는 단어의 헬라어 ‘비아제타이(βιάζεται)’는 ‘무력으로 빼앗다’라는 뜻이다. 이 말처럼 천국은 혼신의 힘을 다해 투쟁을 전제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믿음의 용사인 사도바울조차 자신은 곤고한 사람이라는 고백을 하며 사망의 몸에서 건져줄 자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롬7:24) 이는 내 안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도습관을 들이는 일이 바로 천국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전쟁터이다. 세상은 육체를 만족시키는 쪽으로 끌어가려하지만 성령은 영혼이 잘되는 쪽으로 이끈다. 그 중간에서 싸워야 하는 게 우리의 운명이며 영적 습관을 들인 자만이 천국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경건의 습관을 들였다.

내가 경건의 습관을 들이는 데는 적지 않은 노력과 시간이 들었다. 그게 어려웠던 원인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을 지도책으로 삼고 성령의 인도를 나침판으로 삼아 멀고 험한 길을 떠났었다. 지금은 그 고독한 여행에서 돌아와 다른 이들을 위한 가이드가 되었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지금도 아침, 저녁의 정해진 시간에 경건의 시간을 갖는 일은 여전히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십여년이 넘도록 성실하게 시행해왔기에 앞으로도 꾸준하게 지킬 것을 믿고 있다. 경건의 습관이 언제나 어려운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령이 내주하여 기쁨과 평안을 느낄 때까지가 가장 힘들다. 그 때는 오직 자신의 의지만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성령이 내주하여 내적인 기쁨을 알게 되면 달콤한 맛을 알게 되므로 그 때부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경건의 습관을 들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왜 해야 하는 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분명한 목적의식이 없다면 오래 버틸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경건의 습관을 들이는 일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일이다. 극복할 수 없는 난관은 없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전쟁에 져서 패잔병으로 쓸쓸하게 일상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런 사람들은 구체적인 전략도, 적에 대한 정보도 없이 마구잡이로 싸웠기 때문에 어쩌면 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철저한 준비만 한다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루어야 하는 목적이 확실해졌다면,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몸에 배는 일에 삶의 최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성인이라면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직장생활을 위한 시간이나 기혼자라면 최소한의 가정생활을 위한 시간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잠이나 휴식, 식사 등의 생존을 위한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필수가 아닌 선택항목에 최우선 순위로 올라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평생 그렇게 살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습관을 들이는 훈련기간에는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의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경건의 습관을 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취침시간은 6시간이 기본이다. 아침 7시에 일어난다면 새벽 1시에는 잠자리에 들어야한다. 물론 6시간을 자지 못하는 날도 종종 있지만 적어도 6시간을 자려고 애쓰고 있다. 충분한 수면은 기도할 때 졸리는 것을 방지해준다. 머리가 맑게 깨어 있지 않다면 기도는 시간낭비이다. 나는 직장인이 아니라 자영업자이므로 출근시간을 임의로 정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출근시간에 맞추어 나가려면 몇시에 일어나야 하는 지 계산할 수 있다. 기도하는 시간과 성경 읽는 시간을 각각 1시간씩 내려면 이보다 일찍 일어나야할 것이다. 아니면, 아침에 시간을 내지 못한다면 적어도 저녁에 시간을 내야 한다. 기도 2시간, 성경 읽기 1시간 도합 3시간은 내야 한다. 경건의 습관을 위해 이 시간을 내려면 퇴근 후에 TV보기나 인터넷 서핑, 친구와의 모임 등을 줄이거나 없애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없다면 습관도 없다. 항상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결연한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녹록치 않은 사역을 하는 목회자에다 생업을 가지고 있기에 누구보다 바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철저하게 생활을 절제하며 살기에 언제나 여유가 있다. 아침에 2시간 반, 잠자리에 들기 전에 1시간 그리고 낮에도 틈을 내어 1~2시간은 기도와 성경읽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렇게 경건의 시간을 내자면 다른 시간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습관을 들이면 그리 어렵지도 않다. 나는 휴가나 친척집을 방문해서도 이 시간만은 철저하게 지키려한다. 아니, 습관이 되었기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무언가 허전하다. 나는 무엇보다 아침의 경건시간을 엄격하게 지킨다. 아침 7시가 넘으면 휴대폰 알림소리에 잠이 깬다. 그러면 곧장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간다. 교회가 아니라 집에서 기도를 하기 때문에 잠이 완전히 깨도록 양치질과 함께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는 것이다. 아침 기도는 하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무척이나 중요하다. 샤워를 마치면 잠이 완전히 깼지만 머리는 텅 비어 있다. 그리고 나면 서재의 내 기도자리에 앉아 기도를 시작한다. 처음 30분은 성령의 임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이 시간의 기도가 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성령이 내주하실 때까지 온몸에 힘을 다해 기도한다. 소리를 내어 기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조용히 기도하는 것도 아니다. 마음속으로 크게 소리를 지르고 있다. 온 몸에 힘을 주고 기도하면 목에서 숨을 내쉬는 거친 ‘쉿~’ 소리가 끊임없이 입에서 흘러나온다. 이처럼 몸에 힘을 주어 간절하게 기도를 해야 한다. 이런 기도습관을 10년 넘게 내오고 있지만 지금도 처음 30분 정도를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아야 성령이 충만한 느낌이 전해온다. 이 시간만큼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는 기도를 반복한다. 그리고 성령이 충만한 상태라고 느껴지면 주기도문과 바울의 기도문을 묵상하고 사역을 위한 기도와 중보기도로 넘어간다.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도 내가 의지적으로 기도하기보다 성령의 인도하시는 기도에 맡기는 게 필요하다. 처음에는 격렬하게 몸을 흔들고 기도하나 성령 충만한 상태가 되면 기도에 몰입이 되어 정신이 빨려 들어가면서 고요한 기도로 채워지게 된다. 그렇게 기도를 마치면 성령 충만한 상태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서재에 앉아 원어성경을 1시간 정도 읽는다. 원어성경을 읽는 이유는, 오래 읽어 와서 내용은 물론 말투조차 익숙해서 고정관념에 젖기 쉬운 한글성경보다, 내용을 예측할 수 없어 한자 한자에 집중에서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한글성경이라도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면서 정독해서 읽는 습관을 들이면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아침의 경건의 시간은 약 2시간 ~ 2시간 30분 동안 이어진다. 그리고 낮에도 틈만 나면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약 1시간 정도 기도하는 것을 습관으로 들이고 있다. 아침 기도에서 성령 충만한 상태로 시작하면 낮이나 밤 기도는 는 그리 어렵지 않게 기도에 몰입하며 성령이 인도하시는 기도를 할 수 있다.

이렇게 일상의 삶에서 기도하는 습관을 들인 후로는 언제, 어디에서나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공원 벤치에서 쉬거나 병원에서 대기하는 시간 등 틈이 나면 수영용 귀마개로 소음을 차단하고 곧장 기도에 들어간다. 기차여행을 한다면 수면용 안대를 사용하여 빛과 소음을 차단하여 고요한 환경을 만들어 기도에 몰입하곤 한다. 이렇게 일상의 삶에서 항상 기도할 수 있는 습관을 들일 수 있게 이유는, 교회나 기도원 등의 특정장소에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에 상관없이 기도할 수 있는 능력과 더불어 방언이나 통성기도가 아니라 침묵기도로 습관을 들여서이다. 또한 아침 기도시간에 성령 충만한 상태로 채우게 된 것도 중요한 이유이다. 아침부터 성령 충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면 하루 종일 성령 충만하기 때문이다. 어째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조건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1시간 이상, 잠자리에 들기 전에 1시간의 기도습관을 들여야 하며, 성경읽기는 아침시간이 아니더라도 하루에 1시간 정도 빼놓지 않고 읽어야 한다. 이처럼 하루에 3시간 이상의 경건시간을 습관으로 들여야 성령이 인도하시는 삶을 살 수 있다. 언제가 시간이 부족해 아침 시간에만 기도했더니 성령충만의 강도가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래서 적어도 하루 2시간 이상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틈나는 대로 자동차 안이나 사무실에서 기도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직장인들은 낮 시간에 넉넉한 시간을 내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아침과 저녁의 기도시간은 낼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경건의 시간을 내는 것조차 바쁜 현대인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 시간은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그래서 경건의 시간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를 위해서는 직장의 성공이나 세상의 즐거움 등을 포기해야할지도 모른다.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 예전에 쓴 칼럼을 다시 올려 드립니다.

크리스천영성학교,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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