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으로 말고 가슴으로 믿어라.
선거철이 되면 선거유세를 다니는 후보자들이 시장 어귀나 동네 곳곳을 다니며 사람을 보면 90°를 굽혀서 비굴하게(?) 인사하고, 급히 다가와 손을 꽉 쥐고 한 표를 부탁한다며 살같이 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선거철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관심하게 대할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정치가들은 지역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아니라 오직 그들이 찍어줄 표에만 관심을 둔다. 그래서 선거유세에 나선 이들을 사람들이 닭 개보듯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세장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자, 봉고차를 개조한 유세장을 싣고 다니면서 “사랑하는 시민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연설문을 읽어대고 있다. 사랑한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내려앉지 않고 그 즉시 공중에 흩어져버린다. 아무도 이 말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유세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도 있다. 교회의 벽과 현관에 가장 많이 붙어 있는 표어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당신을 굳게 사랑하신다고 믿고 있는가? 당연한 말을 또 끄집어내어서 속이 불편해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죄를 대신해서 그분의 외아들을 끔찍한 십자가의 형틀에서 죽게 했다. 하나님의 외아들을 당신 때문에 대신 죽게 할 정도로 당신을 사랑하신다고 말이다. 그런데 당신은 그런 하나님을 생각하면 속이 울컥하고 마음이 뭉클해지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있는가?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한없는 은혜와 절절한 사랑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아쉽게도, 우리는 그 얘기를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교적인 사건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 목사님!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을 인정하고 있고, 알고 있고, 믿고 있어요. 이젠 되었어욧?” 하며 눈을 흘리고 싶지 않으신가?ㅎㅎ 이제는 고만 듣고 싶어 한다는 걸 필자가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필자도 오랫동안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희생을 고맙게 여기라고, 입만 열면 다그치는 교회의 강요(?)에 넌더리가 났었으니까 말이다.
이러한 모습은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믿고는 싶은데 믿어지지 않는다. 이해는 가는 데, 딱 거기까지이다. 그래서 머릿속에 집어넣고 다니는 걸로 만족한다. 교회에 오래 다녀 성경도 많이 읽고 설교도 많이 들으면 머리가 커진다. 웬만한 목회자 저리 가라이다. 그래서 누군가 성경 얘기만 하면 참견을 하고 싶고,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드러내고 싶다. 그런데 어떤 이가 자신의 해박한(?) 성경지식에 반발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면 그 즉시 원수로 여기기도 한다. 설교 때마다 설교학 교수가 되어 판단하고 점수를 주고 있으니 은혜는 언감생심이다. 필자의 카페에는 가끔씩 필자의 글에 훈계하거나 반발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곤 한다. 카페의 운영지침으로, 그렇게 하면 카페의 설립목적에 맞지 않고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하니 그렇게 하지 말아 주십사 해도 들은 척도 안 한다. 자신의 고매한 지식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싶어 안달이다. 이 역시 성경을 머리로만 아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교회에 오래 다녀 지식은 쌓이는 데, 왜 이리 믿음이 자라지 않는 것일까?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위의 구절은 대다수의 크리스천들이 일주일에 한번 교회예배에 출석하기에 천국의 자격을 철썩 같이 믿는 근거로 대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 말을 찬찬히 살펴보자. 구원을 얻는 근거는 입으로 시인하기 전에 마음으로 믿어야 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마음으로 믿고 있는가? 그렇다고? 마음으로 믿는 것은 머리로 믿는 것과 다르다. 마음으로 믿는 것은 그냥 믿어지는 것을 말한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가 가슴에 감동으로 짜릿하게 전해져 오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바라보면 마음이 뭉클해지며 기도할 때 십자가를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당신이 그러한가? 그렇다면 마음으로 믿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마음으로 믿는 게 아니라 머리로만 믿는 것이다. 마음으로 믿는 사람과 머리로 믿는 사람의 증거는 이 뿐만이 아니다.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믿음이 행동으로 즉시 나타난다. 예수님의 뜻을 쫒아 쉬지 않고 기도하며 말씀을 사모하여 틈만 나면 기도하고 성경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머리로 믿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번 한 시간짜리 교회예배에 참석하면 천국에 가는 의무사항을 준수하고 있다고 여긴다. 또한 가슴으로 믿는 사람은 교회에서의 예배의식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쓴다. 그러나 머리로 믿는 사람은 세상에 나가면 믿지 않는 사람과 전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 아는가? 믿음은 희생적인 신앙행위와 형식적인 종교의식을 반복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믿음은 하나님이 위로부터 주시는 선물이지 땅에서 학습되고 습득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생각이 아니라 인본적인 예배의식과 관행적인 신앙행위를 학습하거나 행위를 반복해서 얻으려고 하고 있다. 그렇게 얻어지고 있다고? 그렇다면 믿은 증거를 보여주시길 바란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으로 귀신을 쫒아내고 병든 자를 치유한다고 하셨으며,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만 있어도 기적을 베푸는 기도의 능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오랜 신앙의 연륜에도 당신이 기적을 보여주는 믿음의 표적이 없는 이유는 하늘로부터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자녀는 견고한 믿음을 가진 자이다. 그래서 이를 믿고 구하는 자들은 예외 없이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께 믿음을 구하는 영적 습관을 들여야 한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견고한 믿음을 얻으려면 인내심을 가지고 혹독하게 요청하여야 한다. 야곱이 얍복강 강에서 보여준 결연한 태도를 보라. 수로보니게 여인은 멸시와 천대를 당하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불의한 재판관에게 찾아갔던 가난한 과부도 한번 물면 끝내 놓지 않았던 강인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비유 끝에, 인자가 세상에 다시 올 때 믿음이 있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시며 혀를 끌끌 차셨다.
당신이 성경에 기록된 기적의 사건들이 믿어지지 않고, 십자가에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에 감동이 오지 않으며, 천국과 지옥이 확신이 들지 않으며, 사탄과 귀신의 존재가 믿어지지 않는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다면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자격도 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당신의 현재 믿음의 위치가 바로 그렇다. 그 해결책은 다른 게 없다. 머리로 믿는 것, 희생적인 신앙행위와 종교적인 예배의식을 반복하는 것을 그만 두고 가슴으로 믿어야 한다. 가슴으로 믿으려면 성령이 자신 안에 내주하여 견고한 믿음을 주셔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령이 내주하는 영적 습관이 필수적인 과정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에는 공짜가 없다.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을 얻으려면 입으로 내뱉는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라, 성령이 내주하시는 영적 습관을 들여서 믿음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성경에 약속한 모든 것들을 얻어 누릴 수 있다. 기적을 부르는 기도의 능력도 가능하고 평안하고 형통한 삶도 누릴 수 있다. 천국의 자격은 당연하고 찬란한 면류관과 엄청난 상급도 준비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지금의 형식적인 신앙행위에 주저앉아 하나님을 찾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 공허하고 냉랭한 영혼을 지니고 살다가 지옥행 열차를 타게 되더라도 하나님을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기 바란다. 이미 경고하고 여러 번 기회를 주었지만 당신이 기회를 차버린 대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