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신학이 아니라 신앙을 가르치는 곳이다.
충주영성학교에서 그리 멀리 않는 지역에서 기도 코칭을 받으러 오는 형제가 있다. 그 형제의 이력은 남다르지 않다. 국내에서 한군데, 그리고 외국에서 3군데의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중간에 포기하고 그만두었다. 학업을 중도에 포기한 사연은 제각각 달랐다. 그중 한 군데 신학교에서 공부를 포기한 사연을 들려주었다. 1학년에 입학하여 책을 구입했는데, 그 책의 시작은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신학은 믿음이 아니라 교단을 세우기 위한 교리를 위한 학문이다.’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는 충격을 받아 수업을 듣는 것을 포기하고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형제가 읽은 책에 기록한 내용이 사실일까 아닐까? 사실이다. 교단을 만들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신학교를 세우는 일이다. 그래서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배출시키고 목사안수를 주어 교회를 세우게 한다. 그러므로 신학교는 교단의 교리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목회자를 양성하는 곳인 셈이다. 필자가 신학교를 다닐 때 읽었던 교재 중에서 그 형제가 보았다는 구절을 본적이 없다. 그러나 그 교제에 적혀 있는 대로, 신학은 믿음을 길러주는 교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신학교를 졸업한 목회자들이라고 견고한 믿음의 소유자일거라는 생각은 허상이며, 목사라고 교인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길러주는 전문가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필자의 주장에 동조하는 목회자는 한명도 없을 것이다. 코웃음을 치고 냉소에 부쳐버리거나, 화가 나서 도끼를 들고 필자를 찾아올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필자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 재는 잣대는, 그들이 시무하는 교회의 교인들이 바로 그 증거이다. 교인들의 믿음의 수준은 그들을 훈련시키고 양육시킨 목회자들의 능력을 고스란히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인들의 믿음의 증거는 어떻게 재는가? 목회자들은 교회에서 열리는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십일조를 성실하게 드리며 교회 봉사를 열정적으로 하면 신앙에 합격점을 주고, 새벽예배에 참석하면 가산점을 주어 최고의 믿음이라고 치켜세워준다. 그러나 이 같은 기준이 과연 성경적이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의 기준을 살펴보자.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17:6)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예수님의 말하는 믿음의 잣대는 분명하다. 기적을 부르는 기도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수많은 목사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믿음에 관한한 사범의 수준에 올라 교인들의 신앙을 길러주는 위치에 있지만, 정작 자신들도 예수님이 말하는 믿음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이 같은 잣대를 교인들에게 들이댈 리는 만무하다. 그래서 위의 말씀은 AD2세기경에 이미 시효를 종료했다는 어느 신학자의 학설 뒤에 숨어버리고 꼬리는 내렸다. 그도 아니라면, 이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거나 자신만만한 성경말씀만을 고장 난 레코드 돌리듯이 외치고 있다. 이 같은 태도는 자신들의 믿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현상이지만, 이들의 가르침을 받는 교인들이 이런 사정을 알 턱이 없다. 그래서 목사들이 말하는 대로, 자신들이 이미 예수를 입으로 시인하고 교회에 나온 행위가, 이미 천국에 들어가는 증거라고 못박아버리고 더 이상의 논쟁을 허용치 않고 있다. 그렇다면 신학자의 학설이 예수님의 말씀위에 있다는 것이고, 목사들의 주장이 예수님의 말씀을 능가한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처럼 패역하고 신성 모독하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지만, 아무도 이의 심각성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으니 희한한 일이다.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믿음이 없어도 천국만 들어갈 수 있다면 성공한 신앙인임에 틀림없다. 하나님의 천국에 들어가는 잣대로 믿음의 수준을 재고 계시다. 그래서 작금의 우리네 교인의 믿음이 천국의 자격을 보장해주는가? 그들은 목사들이 말하는 성경의 근거를 철썩 같이 믿고 있다.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 말하는 성경의 근거는 대략 4가지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성령이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고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8)
먼저 로마서의 말씀은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기 전에, 마음으로 믿어 의인으로 인정함을 받아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그러나 가슴으로 믿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인의 모습을 삶에서 보여주어야 한다. 단지 입으로 내뱉는다고 의인의 증거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금의 우리네 교회의 교인 중에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의인의 증거가 나타나는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일4:15)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입으로 영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하며, 하나님이 그의 안에 계시다는 증거를 보여주어야 한다. 하나님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자녀는 무엇을 구하든지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요15:7) 그렇다면 교인들이 구하는 기도가 죄다 응답이 되는지 살펴보면 성령이 안에 계신지 금세 알 것이다. 또한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는 능력으로, 성령이 자신 안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주라고 시인하는 것은 지식으로 알고 입으로 내뱉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내려와 행위로 나타나야 한다. 이 행위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목숨도 기꺼이 버리는 제자의 모습이다.그러나 교회 마당만 밟는 희생적인 신앙행위로는 턱도 없다. 교회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주일이 아니라 평일에, 교회의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살아있는 제물이 되어 예배의 삶을 직접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아오도록 기회를 주신다. 그러나 기회를 잡는 것은 오직 자신의 몫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할 것을 대신 해주시는 분이 아니다.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다르게, 목회자가 신학교를 졸업하여 교회지도자가 되었다고 견고한 믿음을 양육시키는 전문가가 된 것은 아니다. 신앙 양육의 전문가가 되려면 신학교를 졸업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와 말씀의 영적 습관을 들여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을 보유하여야 비로소 제자를 키우는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네 교회에서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으면 신앙의 전문가로 착각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네 교회가 영적 침체의 길로 빠지고 있는 이유이다. 신학자의 학설이 예수님의 말씀 위에 있기 때문이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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