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인 교회인지 아닌지 분별하라.
필자가 기존의 교회를 비난하는 투의 칼럼을 읽어보시는 분들은 의구심을 가지고 삐딱한 시선으로 필자를 바라보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의 교회를 공격하고 비난하는 곳은 죄다 이단이라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필자의 글은 죄다 성경의 근거를 가지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필자에게 함께 하신 성령의 증거와 열매를 제시하며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필자가 말하는 게 성경적인지 또는 성령의 증거가 있는 지를 날카롭게 분별해야 할 것이다. 이단으로 지목되는 교회는 대부분 교주를 신성시하여 예수님과 동등한 존재로 부각시키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자신들의 교리를 성경말씀으로 인정하게 한다. 그리고 성경에 없는 기이한 현상과 이적을 통해 성령이 함께 하시는 증거라고 믿게 만든다. 또한 재산을 다 팔아 헌금으로 내고 가정을 떠나 자신들의 공동체 생활을 강요하며, 그동안 자신이 다녔던 교회의 교인들과 가족, 친인척, 친구 등을 교묘하게 속여서 꼬드겨서 자신들의 공동체에 들어오게 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기존의 교회의 잘못된 교리를 비판하기는 하지만, 위에서 말하는 그 어떤 것도 장요하거나 요청하지 않는다. 그러나 필자의 칼럼을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불안감과 두려움, 그리고 의구심이 들어올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의 주장을 끝까지 읽어달라고 사정하지 않는다. 필자의 사역의 초점은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훈련을 통해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치유하는 성령의 능력으로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성령의 사람을 배출하는 데 있다. 그래서 영성학교를 시작하여 2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으므로, 필자가 사역에 성령이 함께 하시는 증거나 변화, 능력과 열매가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시고 검증하시기 바란다. 그렇다면 오늘은 왜 필자가 기존의 교회를 비난하는 글을 쓰게 되었는지 그간의 사정을 말씀드리고 싶다.
먼저 기존의 우리네 교회가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인지 분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교회건물에 십자가를 세우고 교단명칭의 교회문패를 붙이고 있다고 죄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인가? 솔직히 말해서 목사안수를 주는 교단들은 수도 없이 우리나라에 널려있다. 문교부에서 학위인정을 받는 신학교나 신학대학원을 운영하는 소위 큰 교단들도 있지만, 교회에 신학교를 운영하는 군소교단들도 수도 없이 많다. 그렇다고 필자가 군소교단을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말하고자하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필자도 교단을 만들고 신학교를 세워서 목사안수를 주어 교세를 넓힐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문패만 붙였다고, 죄다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성령이 함께 하시는 교회라고 볼 수 없다. 그 교회가 성경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며 운영하는 지, 그리고 성령이 함께 하시는 증거와 열매가 있는지 분별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있고, 누구나 자신이 교단을 만들고 신학교를 세워서 목사안수를 줄 수 있다. 문교부의 승인이 없어도, 자신들이 교단에서 인정하는 목회자를 배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존 교회문패를 붙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진짜 성경적인 교회인지는 별개일 것이다. 그렇다면 큰 교단으로 불리는 소위 정통 보수교단에 소속된 교회는 죄다 성경적인 교회인가? 이 역시 군소교단에 소속된 교회를 분별하는 잣대로 재야 할 것이다. 그 잣대는 성경적인지 성령의 증거가 있는지 이다. 그러나 우리네 교회에서는 교회라는 문패를 붙이고 있으면 죄다 하나님의 교회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S이단을 비롯해서 여러 이단들도 기존 교단소속의 교회문패를 달고 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교회라는 말은 헬라어 ‘에클레시아’를 번역한 말이다. 이 말의 원래의 뜻은 종교적인 의미가 없는 ‘공동체’, ‘무리’의 의미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나오는 모든 ‘에클레시아’라는 단어가 교회로 번역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에클레시아’는 민회(행19:39)나 모임(행19:41)으로 번역이 되었다. 이렇게 원어성경에는 에클레시아라는 말에 종교적인 의미가 없이 사용되었는데, 우리네 한글성경에서 ‘교회’라고 말하는 단어가 죄다 하나님의 교회라고 생각되는 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게다가 모든 목회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자신들이 사역하는 교회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교회라고 말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성령이 함께 하시는 교회인지 분별하는 것은 모든 크리스천들의 숙제일 것이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사56:7)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눅19:46)
또한 하나님의 교회를 지칭하는 하나님의 집은 예배의식을 거행하는 곳이 아니라,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정화사건을 통해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고 계시다. 이처럼 성경적인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다. 물론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는 기도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오홋, 그런가? 그렇다면 우리네 교회에서 예배의식과 기도 중에서 어떤 신앙행위를 더 중요시하게 여기고 있는가? 당연히 예배의식이 아닌가? 기도회에 나오지 않더라도 책망하는 목사들이 없지만, 주일예배의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호들갑을 떨며 심방하러 간다고 난리를 치고 있다. 그들의 마음에는 기도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예배의식에 나와서 헌금을 드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께서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 하신 말씀들을 올려드리면서 성경적인 교회를 분별하는 데 도움을 드리고 싶다. 필자에게 성령이 주신 말씀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분별하는 것도 여러분의 몫일 것이다.
- 종교적인 교인이 아니라, 일꾼을 배출하는 교회를 만들라.
- 나의 마당만 밟는 양들이 허다하다.
- 너희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교회 일이다.
- 장소에 관계없이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
- 교회 우두머리들이 성전 꼭대기에 있다.
- 교회가 기도하는 것을 잊었다.
- 오늘날의 교회는 기도는 하지 않고 무리수만 낳는다.
- 음식에 설탕이 없으면 맛이 없듯이, 맛을 잃은 성도들이 많다.
- 교회에 빛 좋은 개살구들이 많다.
- 雜事(잡사, 어리석은 집사를 빗대어 하는 말, 필자 주)가 기도는 안하고 주일만 지 킨다.
- 빛 좋은 개살구들이 많은 교회를 부러워말고 기도와 말씀으로 잘 양육된 교회를 부 러워 하라.
- 명색이 교회지도자들이 기도를 않고 있다.
- 성전을 기업하는 곳으로 만들지 말고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라.
- 교회 문만 들락 달락 하는 사람들이 많다.
- 교회 안에 기쁨이 사라진 사람들이 많다.
- 교회 일꾼들이 기도는 하지 않고 딴 짓만 한다.
- 직분이 무슨 문제냐? 말씀과 기도로 훈련받는 자가 내 사랑을 입는다.
- 교회는 기도의 집이다.
- 지금의 교회는 기름(성령, 필자 주)이 떨어져서 기쁨이 사라지고 있다.
- 교회 안에 기도하는 일꾼들이 기도할 생각은 안 하고 웃고 떠들고 있다.
- 교회 이름이 땅에 떨어진 이 시대에, 익지 않은 과일이 땅에 떨어진 것처럼 악취 가 나고,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고, 귀신들을 쫒는 일에 관심이 없고, 귀신의 초청 에만 몰두한다.
- 양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목자들이 어떻게 기도하냐?
- 세상에 주의 종은 많지만 하나님께서 예비한 종은 많지 않다.
- 많은 종들이 살찐 양들만 찾아다닌다.
- 세상에는 타락한 종들이 많다.
- 기름 부어 세운 종은 많지 않다. 스스로 종 된 자들은 그들의 일을 할 뿐이다.
- 많은 종들이 나의 뜻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 오늘날의 교회는 상업적이다.
- 세속적이 교회, 타락한 종은 많으나 기도하는 종은 많지 않다. 삶에 빠져서 나를 찾는 것을 잊어버리고 산다. 맹목적인 기도모임을 하고 있다.
- 많은 종들을 내가 보냈지만 내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 많은 양떼를 두지 말고 건강한 양떼를 소유하라.
- 너희 세상의 교회들은 고장 난 수도꼭지(성령이 없는 것. 필자 주)이다.
- 세상에는 세속적인 교회가 너무 많다.
- 스스로 종 된 자를 조심하라.
- 미혹의 영이 교회지도자들의 머리위에 있다.
- 지금의 교회는 닭의 울음소리(깨우는 소리, 필자 주)를 내지 않는다.
- 교회 일꾼들이 기도는 하지 않고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 종들이 기도는 하지 않고 자기 이름만 낸다.
- 교회지도자들이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귀신들이 득실거린다.
- 성도의 수를 늘리는 교회가 아니라 믿음의 질을 높이는 교회가 되라.
- 종들이 기도는 하지 않고 귀신의 영만 쫓고 있다.
- 작정헌금은 대부분 지도자의 명령이다.(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목회자의 명령이라는 뜻, 필자 주)
- 교회는 지도자의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교회는 기도하는 행위보다 기도 자체를 가르쳐야 한다.
- 오늘날의 교회가 귀신들을 많이 불러들인다.
- 양적인 성장보다 질적인 성장에 중점을 두라.
- 길에 버려진 양들이 너무 많다.
- 오늘날 교회가 지혜와 지식을 구하지 않고 지혜와 지식이 없어 망하는도다. 먹고 마시고 떠들다가 망하는 교회가 많다. 지혜가 없는 교회이다.
- 교회 안에 귀신들이 많다는 것도 염두에 두라.
- 이름만 교회지 속이 지옥인 데가 많다.
- 종들이 기도는 안하고 귀신들의 말만 듣고 있다.
- 교단은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서이고, 교회는 창에 찔린 예수를 알리지 않고 업적을 알리는 데 혈안이고, 양들은 귀신들의 공격에 독 안에 든 쥐이고, 쓸 만한 양들은 귀신의 조화와 활동에 무지하고, 어디로부터 왔는지 모르고 기쁨도 소망도 없는 일 에 몰두하고 아버지의 뜻에 무지하다. 기초훈련이 안된 자들은 귀신들의 존재도 모 른다. 종들을 부리는 영은 고급영이다.
- 종들이 기도하지 않고 입으로 주여주여 한다.
- 종이 주인의 말을 듣는 것이 당연하나 어찌된 일인지, 내 일은 마다하고 자신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만 골라서 하고, 내 양들은 길거리에서 무차별하게 학대당하는 것도 모르고 자기들만 먹고 잔치하고 있다.
- 교회는 기도의 일꾼들이 기도하지 아니하면 미혹의 영들이 무리지어 들어온다.
- 선장이 잠자면 어떻게 되겠느냐?
- 선장이 잠자는 배는 다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는 교회가 내 교회이다.
- 교회에 나를 나타내지 않은 교회는 죽은 교회이다.
- 교회 교육은 기도와 말씀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 교회는 자기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으로 사는 원칙을 가르치는 곳으로, 마지막 때는 이 원칙이 사라지고 무너지며, 자기 마음대로 살며, 기초신앙이 무너지고 세 속적이고 세상적인 잣대로 세상을 사는 물질만능의, 그야말로 인본적인 사상이 교 회 안에 들어오며, 이미 기초신앙이 무너진 교회들이 많다.
-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인분을 쓰고 있는 교회이다.
- 교회는 기도의 장소이지 만나는 장소가 아니다.
- 영적 각성이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이다.
- 교회는 사탄의 공격에서 보호받도록 양들이 악한 영들의 전략전술을 잘 알려주어야 한다.
- 교단이 나를 섬기지 못한다.
- 한국에 있는 많은 종들이 미혹의 영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어깨너머로 배운 지식 (신학교 교육, 필자 주)으로는 나를 만날 수 없다.
- 종들이 기도는 안하고 소 귀에 경 읽는 소리만 하고 있다.
- 나는 귀족 중심의 교회를 싫어하고, 어려운 자들과 손잡는 자들이 나와 함께 한다 는 것을 알고, 어려운 자들의 형편에 서 있는 자들이 되라.
- 교회의 종들은 자신이 양육하는 방식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지를 살펴야 한다. 양육방식에 따라 하나님의 종도 되고 사탄의 종도 될 수 있다.
- 예배의 참맛을 아는 자들이 많지 않다.
- 자기의 갈 길을 아는 자들이 많지 않다.
- 교회는 자신의 이름이 높아지면 나를 떠난다.
- 무수히 나를 떠난 종들이 많다.
- 가정이 중심이 된 교회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 교회는 하나님의 지식을 상식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말해지는 것이다. 인본주의적 설교가 상식적인 설교이다.
- 기존에 했던 것을 반복하는 고리타분한 설교나 율법적인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깨달음으로 새롭게 설교해야 한다.
- 자기도 도를 깨닫지 못한 자들이 남을 가르치고 있다.
- 교회는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믿음의 양과 질을 중요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 교회 안에도 귀신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곳이 많다.
- 귀신을 두려워하는 자들로 만드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 사귀는 기도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허무한 종교이다.
출처 : 다음카페 크리스천 영성학교, 글쓴이 쉰목사
Congratulations @paulshin! You have completed some achievement on Steemit and have been rewarded with new badge(s) :
Click on any badge to view your own Board of Honor on SteemitBoard.
For more information about SteemitBoard, click here
If you no longer want to receive notifications, reply to this comment with the word
S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