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결단력이다.

in #steemchurch8 years ago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교회의 예배의식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믿음이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물론 필자도 당신의 믿음을 폄훼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러나 그 믿음이 과연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믿음일 수도 있고, 아님 천국에 들어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믿음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믿음의 척도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이 교회에 다니고 있다. 그러나 열심히 고등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했지만 대학에 들어간 학생과 들어가지 못한 학생의 앞길은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 이렇듯 나름대로 교회에 다녔지만 천국에 들어간 사람과 지옥에 떨어진 사람으로 갈라질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믿음의 모본을 보여준 성경의 위인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척도를 알아보자. 성경에서 최고 믿음의 거장으로 손꼽는 사람은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과 그 아버지는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생업인 우상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당연히 그 역시 우상을 믿었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짐을 싸서 자신이 지시하는 땅으로 이사를 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지시하는 땅이 어디인지도 가르쳐 주지도 않고 말이다. (사실 아브라함은 죽을 때까지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이 어딘지 모르고 살다 죽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는 지금처럼 국가의 치안이 잘 확립된 시대가 아니라 씨족끼리 뭉쳐 치안과 생업을 해결하던 사회였다. 그러므로 씨족의 울타리를 벗어난다면 죽은 목숨이나 진배없었다. 재산을 빼앗기고 목숨을 잃어버리는 사건이 시간문제였던 시대였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짐승에 아내와 조카 롯까지 태우고 가재도구를 싣고 말없이 떠났다. 성경에는 자세한 설명이 없지만 이는 목숨을 건 위험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그는 한 마디의 토도 달지 않았다. 심지어 어디 가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떠나라고 명령한 사람이 가는 장소를 말해주지 않고 가라는 것도 이상하지만, 더 이상한 것은 떠나는 사람조차 어디 가냐고 물어보지도 않은, 참 희한한 풍경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무식하고 우직한 믿음은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죽여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가혹한 명령에 대한 태도에서도 볼 수 있다. 무려 삼일길을 걸어 모리아산으로 가는 여정에 짐승에 아들 이삭을 태워 가는데, 하나님에 대한 불평이나 원망이 전혀 없다. 시쳇말로 해서,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하고 악한 아버지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결단력을 동반하는 믿음을 보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치켜세워 주셨다. 아마 그처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아브라함만 그런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최고 성군으로 치는 다윗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는 이새의 막내아들로, 형들이 불레셋과의 전투에 참여하였기에 먹을 것을 갖다 주라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투지역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거기서 골리앗의 우렁찬 함성을 듣게 되었다. 골리앗은 신장이 2미터가 넘는 거인족 출신이었다. 요즘 그가 살았다면, 그가 지녔던 창과 칼, 입었던 갑옷과 투구를 소개하며 ‘세상에 이런 일이’ TV프로그램에 나오지 않았을까? 그런 거인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나와 싸우자는 고함소리에 이스라엘 병사들은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스무 살이 채 안 되는 애숭이 다윗이 자신이 싸우러 나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 소리를 들은 형들이 그에게 갖은 비난과 힐난을 해도 들은 척도 안했으며, 사울이 자신의 투구와 무기를 들려주어도 너무 크다고 하면서 평소에 양을 칠 때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물매 돌만을 가지고 말이다. 요즘말로 말하자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표현이, 딱 그 광경에 맞는 말일 것이다. 그 뒤의 사건을 다 아실 것이라 생략하겠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무식하기 짝이 없었는지 몰라도,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결단력으로 치자면 누가 다윗과 겨루겠는가?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위대한 성군이 되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한 사람을 더 소개하겠다. 그는 바울사도로서 원래의 이름은 사울이었다. 그는 명문 가문출신으로 학력도 높았고 유대교 신봉자로 야훼하나님에 대한 특심을 가졌던 인물이다. 그래서 유대교에서 이단자로 규정한 기독교신자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서서 그들을 잡아 대제사장에게 끌고 가는 일을 도맡았다. 그런데 다메섹으로 가는 여정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말에서 꺼꾸러졌다. 신학자들은 이 사건을 ‘바울의 회심사건’이라 부른다. 그 뒤의 바울을 180° 변했다. 기독교인을 잔인하게 박해했던 우두머리에서 최고의 기독교 복음전도자로 변했다. 처음에는 초대교회에서 그의 진심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유대교인들도 그가 정말 변심했는지 믿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그의 결심은 세월이 지나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의 환상과 환청을 듣고 난 뒤, 그가 보여준 결단력은 실로 위대했다고 밖에 다른 표현으로 대신할 말이 없다. 그들이 결심을 하기까지에는 치열한 고민이 있었겠지만, 일단 결심하고 난 뒤에는 다이아몬드에 비길 데 없는 단단함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2:26)

많은 크리스천들이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동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는 결단력이 없다는 증거이다. 신앙의 위인들은 일단 결심을 하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불도저처럼 밀고 나갔다. 그래서 수많은 고난과 역경에 처하기도 했고 불이익을 당하고 손해를 보고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도 처했다. 초대교회 시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박해를 받아 목숨을 잃은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을 보상으로 받기 위해 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신은 어떠한가? 천국을 보상으로 받기 위해 보여주는 믿음의 척도가 무엇인가? 주일날 아침, 양복을 쭉 빼입고 성경책을 들고 교회의 예배의식에 참여하고 있다고? 그뿐 아니라고? 십일조도 내고 교회봉사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그러한 신앙행위로는 천국은 언감생심이며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전부를 원하고 있다. 예수님이 말한 제자의 조건을 곱씹어보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의 소유를 버리며, 목숨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합당치 않다고 하지 않으셨다.

물론 이렇게 사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아마 한 명도 예수님의 원하시는 기준치에 들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며 믿음의 행위도 자신의 의지와 능력이 아니라 성령이 주셔야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성령과 깊고 친밀한 교제의 기도를 해야 하며 매일 성경을 읽는 습관을 들여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인 기도와 말씀의 영적인 습관을 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 무슨 믿음이 주어지겠는가? 아니라고? 무진 애를 쓰고 노력했다고? 그건 당신의 생각일 뿐이다. 앞에 소개한 믿음의 거장들을 한번 생각해보라. 하나님의 명령에 재산은 물론 목숨조차 아끼지 않았다. 물론 당신에게 성경의 위인들이 보여준 믿음을 바라는 게 아니다. 단지 기도하고 말씀을 들이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으니,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수 있겠느냐고 하는 밀이다. 필자도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을 움직이는 믿음의 결단을 보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천국이 어렵다고 포기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천국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 기도할 엄두를 내지 않는 것이다. 그런 사람도 돈 버는 일에는 환장하고 덤벼들며 노는 일에도 열일 제쳐놓고 달려든다. 그러고 바빠서 기도하지 못하고 시간이 없어 성경을 읽지 못한다고 변명한다.

천국은 좁은 문이라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들어간다. 당신이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지, 이 말은 결코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대형교회에서 단체버스로 가는 곳이 아니며, 일주일에 한번 교회예배에 참석했다고 주어지는 곳은 결코 아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성령과 깊이 교제하는 기도의 강을 건넌 사람만이 자격이 주어진다. 예수님이 그러셨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을 볼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당신이 성령으로 다시 태어났는가? 그래서 성령의 사람이 되어 성령의 증거와 영적 능력을 삶의 현장에서 보여주고 있는가?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죽기 살기로 하나님을 만나려고 애를 써야 한다. 그런 결연한 각오와 굳센 결단력이 없이는 천국은 꿈도 꾸지 말라.

[출처] 믿음은 결단력이다.|작성자 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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