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이 내려오는 기도의 태도

in #christianity8 years ago

엊그제 칼럼에서 남양주의 요양병원에 있는 말기암 환자를 만났다는 얘기를 쓴 것을 읽어보신 분들은 기억나실 것이다. 그분을 만나서 문제가 해결되고 병 고침을 받는 기도방식에 대해 충분히 얘기를 하고 기도를 해주고 돌아오면서, 어떻게 기도를 하고 있는지 날마다 필자에게 문자로 알려달라는 부탁을 하고 떠나왔다. 그래서 그 다음날 문자가 왔는데 실망스러웠다. 필자가 부탁한 대로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게 아니라, 그전에 해왔던 방식의 기도를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 필자가 요구하는 기도방식을 다시 한 번 설명해주면서, 왜 그렇게 기도했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동안 해온 기도방식을 바꾼다는 게 쉽지 않아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간 유지해온 기도방식이 지금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면, 왜 죽음이 임박한 지경까지 빠지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하면서,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선택을 하라고 단호하게 요청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죽음이 임박한 황급한 상황인데도, 필자의 가르침에 순순히 따르지 못하는 그분의 처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수십 년간 해온 기도의 관행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동안 수십 년간 해온 기도방식으로 병 고침을 받고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아마 그랬다면 필자에게 기도를 요청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간의 기도방식이 능력이 없었다고 아무런 기도를 따라 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필자의 기도방식은 오로지 성경에 있는 대로 적용을 해서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한번 굳어진 습관이나 관행을 바꾼다는 게 쉽지 않은 노릇이다. 이런 문제가 그 말기암 환자뿐 아니라 이 칼럼을 읽는 다른 분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성경적인 기도방식이나 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언급하고자 한다.

사실 우리네 교회에서는 기도를 열심히 하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하고는 있지만, 어떻게 기도하라는 것을 자세히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기도시간이 되면 자신의 기도목록을 큰소리로 외치는 경연장으로 변하기 일쑤이다. 교회에서 정한 기도회에도 교회나 개인의 기도목록을 나열해가면 간구하는 기도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기도가 응답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해야 한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기도는 하나님을 찾고 부르는 기도이다. 그래서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야 한다. 성경에는 찾고 찾으라. 전심으로 찾으라, 간절히 나를 부르라,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나를 찾으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성령이 자신에게 와주실 때까지 쉬지 않고 찾으라고 하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사람들은 찾는 과정을 생략하고 자신들이 얻어내고 싶은 기도목록만을 주구장창 외치는 것으로 기도시간을 대신한다. 그래서 당신은 기도응답을 받았고, 문제가 해결되었고, 고질병이 치유되었는가? 아니라면 이제부터는 그런 기도방식은 제발 그만 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성경적인 기도방식을 따라 하시라. 여기까지 이해하신 분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기존의 기도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에 전념하고 성령이 내주하는 간구에 집중하겠다고 결심하신 분들도 많으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부르는 기도를 하시더라도 혹독하게 하지 않으면 시간낭비이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 어긋났더라 ...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고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창32:24,25,28)

위의 구절은 야곱이 얍복강 강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한 대목이다. 씨름이라고 변역한 히브리어는 ‘아바크’인데, 이 말의 뜻은 ‘겨루다’, ‘싸우다’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야곱이 어떤 태도로 기도 했는지 아는 게 어렵지 않다. 야곱은 형 에서가 군사들을 이끌고 자신을 죽이러 온다는 말을 듣고 가족들을 먼저 강을 건너게 한 후, 홀로 강가에 남아 하나님을 죽도록 찾으며 살려달라고 애걸복걸 하며 전투적으로 기도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하나님을 부르고 찾으며 혹독하게 문제해결을 간청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이기지 못하자, 화가 나서 그의 허벅지 뼈를 쳐서 부러뜨렸겠는가? 아마 하나님과 싸워 이긴 사람은 야곱이 유일하지 않았을까?ㅎ 성령께서 필자에게 말씀하신 기도의 태도는, 야곱이 기도한 것처럼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라고 하셨다. 세상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놓고 기도하거나, 성령이 내주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와 같이 절박한 태도로 기도하여 한다. 그렇게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22:44)

위의 기도의 모습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모습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예수님의 기도모습은 그림으로 그려져 액자에 넣어져서 교회나 가정 곳곳에 걸려있다. 그러나 그림만 감상할 뿐 아무도 예수님의 기도의 태도를 따라하려고 하지 않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다. 예수님이 어떤 태도로 기도하고 계신가?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본질은 하나님과 같으신 분이시다.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기도할 때 온몸을 불사르며 죽기 살기로 혹독하게 기도하지 않았는가? 얼마나 힘쓰며 애쓰고 기도했던지, 모세혈관이 터져 땀에 핏방울이 섞여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하나님의 자녀가 간절하게 기도하고 절박하게 하나님을 부르면 천사를 보내주셔서 돕게 하신다. 예수님이 기도할 때도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로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눅22:43)고 성경에 기록하지 않았는가? 성령께서는 필자에게 천사가 늘 네 사역과 기도를 돕고 있으며, 사탄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24시간 지키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얻는 기도를 해야 비로소 문제가 해결되고 고질병이 나으며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저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며 조용히 기도하고 있다. 필자가 이를 수시로 지적해도, 오랫동안 관행으로 굳어진 터라 이를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당신이 기도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목회자에게 보이기 위해서인가, 자기만족으로 하는 것인가? 성령이 찾아오시기를 바라거나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얻어내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렇다면 자신의 방식이나 교회의 관행이 아니라 성경의 방식대로 기도하여야 한다. 성경에서 요구하는 기도방식은 혹독하게, 죽기 살기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몸부림 쳐가며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간낭비이다. 수로보니게 여인이나,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갔던 가난한 과부나, 친구들이 찾아와서 이웃에게 빵을 얻으러 갔던 사람의 태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의 거절에도 물러서지 않고 더욱 거세게 요청하였고,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갔던 과부도 끈질기게 찾아가서 재판관을 셧아웃 시켜버렸으며, 빵을 얻으러 갔던 사람도 친구의 도리 때문에 주는 게 아니라 하도 강청했기 때문에 준다는 대답을 들었다. 이처럼 하나님께 얻어내려면 먼저 강인한 믿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게 바로 불굴의 태도이며 결코 물러서지 않는 투지로 기도하는 모습이다. 당신도 그런 태도를 보인다면 성경의 위인들이 얻었던 탁월한 기도의 능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해온 느슨한 기도방식을 고치고 싶지 않다면 기도응답이나 문제해결이 없더라도 불평하지 말기 바란다. 당신이 선택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응답이 없는 것이 다가 아니다. 천국도 당신의 몫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두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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