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달인

in #christianity6 years ago

필자는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내의 출근준비가 마치는 것을 기다리면서 소파에 앉아있을 때는 TV 리모컨을 꺼내들기도 한다. 좋아하는 방송은 다큐멘터리나 스포츠 등이지만 ‘인간극장’이나 ‘세상에 이런 일이’ 등의 프로그램도도 재미있게 본다. 최근에는 ‘생활의 달인’코너를 보면서 각종 생업에 오랫동안 종사한 이들 중에서 탁월한 실력을 소유한 이들을 보고 감탄하고 있다. 이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양파를 까거나 망에 담는 이들도 있고, 삼계탕을 요리하는 주방장, 꽈배기를 만드는 이들도 있지만, 하나같이 실력은 놀랍기 그지없다. 오랫동안 숙련된 기술에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을 하는 것이 공통된 모습이다. 그 프로그램은 보면서, 필자에게 달인이라는 호칭을 붙여준다면 어떤 분야를 원할까하고 생각해보았다. 오래지 않아 필자가 가장 원하는 분야는 기도의 달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만약 ‘생활의 달인’코너에 나오는 달인처럼, 눈으로 보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반응하는 경지에 달하는 수준에 오르는 기도를 한다면 어느 정도의 경지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렇지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성경에는 기도의 달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이 적지 않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한 바울, 항상 기도할 것을 주문한 예수님,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해달라고 한 사무엘 등 찾아보면 적지 않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들 스스로가 평소에 쉬지 않고 기도를 하는 경지에 올라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필자도 사역을 시작하고 나서 쉬지 말고 기도하는 수준의 경지가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 했다. 그렇지만 우리 주변에는 기도의 습관이 되어 있지 않아 식사기도를 하는 것조차 멋쩍어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새벽기도라도 나간다면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며 심야기도나 기도원에서 금식기도라도 한다면 대단한 수준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이나 바울이 말하는 수준의 경지에 도달하기에는 한참 멀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수준은 정해진 기도시간이나 기도회에 참석해서 기도하는 정도가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해서 자신도 모르게 기도하는 수준에 올라서야 한다. 말하자면 생활의 달인처럼 무의식적으로 몸이 반응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기도의 달인의 경지에 올라서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크리스천이라면 예외 없이 기도의 달인에 올라서야 하는 것이다.

일상의 삶에서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경지에 도달해야하는 이유는 성령의 내주하는 삶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육체의 욕심을 만족시키는 것은 특별히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나 육체의 쾌락이나 탐욕을 원하는 삶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고 부자가 되기 위해 인생을 바친다. 육체의 욕심이나 쾌락을 만족시키는 것에 돈만 한 것이 없다. 돈만 있다면 맛난 것, 좋은 옷, 고급 차 등 육체가 원하는 삶을 부족하지 않게 누리게 해준다. 그렇지만 육체가 아니라 영이 소망하는 삶을 살려면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육체를 지닌 사람은 자연스레 육적인 사람이 되지만 영적인 사람이 되려면 끊임없이 영적인 습관을 추구해야 한다. 말하자면 성령이 내주하시고 충만하신 상태를 항상 유지하는 상태가 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성령이 내주하시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닫게 해주고 가르쳐주시고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틈만 나면 성령님을 찾고 부르며 그분의 내주를 즐기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아가야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을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상태라고 말씀하셨다. 이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평안하고 기쁘게 사는 것은 기본이고 놀라운 영적 능력으로 신령한 지식과 지혜, 귀신을 쫒아내며 질병을 낫게 하는 등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상태가 오래되면 성령의 열매인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신앙의 경륜이 오래되었고 교회의 직책이 무거운 사람조차 이러한 능력을 소유한 이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유는 교회는 오래 다녔는지는 모르지만 성령과 동행하는 삶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 성령 충만하고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말하는 이를 보는 것은 쉬운 일이지지만, 성령이 내주하시는 증거인 놀라운 영적 능력을 나타내 보이라 하면 꼬리를 내리고 과거의 사건만 반복해서 말하는 이가 적지 않다.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이 아니라 현재의 하나님이시듯이, 과거에 성령 충만했던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현재에도 그러한 상태를 항상 유지해야 한다. 이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영적인 습관을 들이지 못한 탓이다. 한 때 성령 충만 한데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성령이 내주하시는 삶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과거에 열심히 기도했던 경험이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기도시간이나 기도원에서의 기도가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영적인 습관을 들이지 않는다면 성령으로 거듭나는 삶은 언감생심이다. 필자는 아침과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각각 한두 시간 기도하는 것을 습관으로 들이고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가. 낮에도 틈만 나면 기도를 시도한다. 자동차 안이든, 집이든, 공원의 벤치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눈을 뜨고 기도할 때도 많다. 그래서 하루 종일 기도로 채우려고 노력을 한다. 물론 아직까지 기도의 달인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할 수 없지만, 적어도 기도의 달인이 되려고 애쓰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쉼 없는 기도에 도달하려면 성령이 내주하시는 기쁨과 평안을 누려야 가능하다. 성령이 내주하시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의 이끌림에 따라 기도에 몰입하게 된다. 물론 이 때의 기도는 응답의 바라는 기도목록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찾고 부르며 그분의 내주를 갈망하고 찬양하고 감사하는 기도가 대부분이다. 기도가 신앙인의 의무가 아니라 기쁨과 평안의 누리는 시간으로 채워짐을 경험할 때 비로소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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