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마누라를 사랑한다 그랬어요?

in #kr5 years ago

제임스 S. 게일(한글명 : 긔일, 1863.2.19 ~1937.1.31)은 1888년 조선에 들어와 1897년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국, 미국, 캐나다 등에서 『Korean Sketches(1898)』를 출간하였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Korean Sketches』를 번역한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중 일부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극동 지역에서 일을 할 때 맞닥뜨리게 되는 심각한 문제는 바로 동양식 사고방식이었다. 사람들로부터 애정을 얻고 존경 받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웠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의 본바탕을 이루는 기묘한 사고방식으로 인해 완전히 혼란스럽기도 했다.
사고 체계란 어떤 일을 하든 그 근본이 되는 것 아닌가. 이 세상이 실제로 그렇지만, 이들의 생각은 삶의 많은 부분에서 서양인들과 완전히 반대로 뒤집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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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만든 한영사전. 1차 1897년, 2차 1911년, 3차 1931년에 출판하였고, 1960년대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
조선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세계가 둥근 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서양 사람들은 반드시 파리와 같은 힘이 있어야 한다고. 지구 반대쪽의 천장에 매달려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이럴 때마다 나는 아니라고, 거꾸로 된 것은 당신들이라고 강변해왔다. 이렇게 정반대로 태어난 우리 서양인들이 머리로 설 능력이라도 지녔다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었겠지만, 그런것도 아니니 그냥 이대로 살아갈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동방형제들의 사고방식도 제대로 연구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측면에서, 지금껏 당연하다고 여겨왔지만 동방에서는 완전히 뒤집어져 있는 삶의 공리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물론 조선을 존중하지만, 이곳에서는 사랑보다는 실생활의 쓰임새가 먼저였다. 동양 사람들 사고방식으로는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란 개념 자체가 완전히 이질적인 것인데, 사실 조선에서는 사랑을 뜻하는 딱 맞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이란 단어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여러 단어를 동원해서 그 뜻을 유추해야만 했는데, 조선 사람들에게는 정중하다, 존경하다, 아끼다, 뭐 이런 말들은 있지만 딱 사랑을 뜻하는 단어는 없기 때문이다.
남편은 사랑하지 않는 아내와 결혼하는데, 이것은 동양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첫 번째 부인이 죽고 나면 두 번째 부인은 사랑하는 사람으로 얻었는데, 이것은 또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사실상 죄악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남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상당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이들에게 아내는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아들로, 한 집안의 대를 이어주는 데 필요한 수동적인 존재일 뿐이었다.

아내는 이렇게 진창 속에 깊이 박힌 채 조상으로부터 후손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로, 자신에게 지워진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
한번은 아내와 함께 길을 걷다가 고대 뱃사람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가 바위에 앉아 절망하여 펑펑 우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남자는 잠깐 눈을 들더니 다시 고개를 숙이고 엉엉 울기만 했다. 대체 무슨 일이냐는 우리의 계속된 물음에야 그는 아내가 죽었다며 “아이고! 아이고!” 하고 곡을 했다.
드디어 우리가 이곳에서 진짜 사랑을 찾아낸 것이었다. 우리는 사랑의 실체를 제대로 찾아낸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이렇게 물었다.

1900년대 초 '제임스 게일' 가족 사진
“하지만 아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을 텐데, 왜 아내를 사랑하나요?”
“사랑? 누가 마누라를 사랑한다 그랬어요? 마누라가 내 옷도 지어주고 밥도 해줬는데, 이제 마누라 없이 어찌 살란 말이요? 아이고! 아이고!”

#3.
서양에서 중요한 가치가 부여되는 개인의 독립성 또한 조선 사람들에게 는 전혀 가치를 지니지 못했다. 우리 미국의 영광스런 표어 ‘여럿이 모여 이루어내는 하나’는 이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완전히 정신 나간 생각일 뿐이었다.
왜 인간이 서로 경쟁하며 치열하게 생존해나가야 하는가? 이들은 그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조선 사람들에게 삶이란 다른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개인의 독립성이라는 것은 불신이며 의심이고 인간의 기본 도리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했다.
조선에서 교육이란 발에 붕대를
감는 것처럼 정신에 석고 깁스를
둘러치는 것이었다.
“어디 가세요?”는 길거리에서 늘 듣는 질문이었는데, 여기에 보통 “무슨 일 있어요?”가 따라왔다. 글을 읽느라고 모든 사람이 모여 있을 땐 또 이렇게 묻는다. “글공부는 어느 분한테 배우셨나요?”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던지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무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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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등장하는 영화들
마치 아이들이 꼭 모여서 노는 것처럼, 이들은 혼자 있으면 두 배로 편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불편한 것을 감내해가며 반드시 함께 어우러졌다. 그것 때문에 일이 두 배로 어렵게 되기도 하지만, 이것은 그들이 혼자 있음을 두려워해서 그런 것이라기 보다는 그냥 이들 사고방식 자체가 서양인들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서로 대척점에 있다. 서양에서는 한 사람 앞에 펼쳐질 삶을 대비하고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지만 조선 사람들에겐 이러한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현재에 눈 감고 과거만 바라보고 살도록, 한 사람의 정신을 개조하거나 압사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우리는 발전을 생각하지만, 그들은 통제를 생각한다. 서양의 학생은 다양한 학업 성취와 새로 알게 된 갖가지 것에 기쁨을 느끼지만, 조선 사람들은 무엇을 배워 안다는 것보다 단지 한자를 읽고 쓰는 것에서만 성취를 느꼈다.

양반들(1880년)
단지 한자를 익히기 위해 20년을 독거하면서 공부하는데, 이렇게 오랜 기간을 공부하고도 많은 수의 학생은 한자 공부조차 실패하고 말았다. 서양에서 교육이란 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재능의 연마임에 반해, 조선에서 교육이란 발에 붕대를 감는 것처럼 정신에 석고 깁스를 둘러치는 것이었다.
이 깁스가 한 번 굳고 나면 성장이나 발전은 완전히 멈추게 되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른 누구보다도 유학자들이 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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