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패한 직장인이다 | 0 프롤로그

in #kr6 years ago (edited)

나는 18년차 직장인이다. 그리고 실패한 직장인이다. 이직을 무려 11번이나 했으며 잦은 이직과 낮은 학력으로 인해, 년차에 비해 나이에 비해 동일 직종 동일 경력 동일 직급에 비해 연봉이 낮다. 하지만 실력은 동일 직종 동일 경력 동일 직급이 비해 매우 뛰어나다고 자신한다. 그런데 연봉은 적으니 실패한 직장인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이력서 관리를 잘 못했고, 회사를 잘 선택하지 못했으며, 상사(또는 사장)와의 충돌로 인해 직장생활에 실패했다. 2년 전쯤 내 실패한 직장생활 체험을 글로 적어 공유하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새내기들과 취준생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를 오래 주저했다가 최근 한 책을 읽고는 다시 자신감을 얻어 쓰기로 했다. 부디 내 글이 신입사원들과 취준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

나는 글을 쓸 때 항상 'ㅇㅇ했습니다.'식의 경어체를 사용하거나 'ㅇㅇ이야.'식의 반말을 쓴다. 'ㅇㅇ이다'식의 평어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유는 친근감이 떨어져서다. 블로그에 쓰는 글은 내 블로그 이웃이고, 페북에 쓰는 글은 내 페친이고, 스팀잇에 쓰는 글은 내 팔로워들이기에 경어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항상 경어체만 사용했지만, 이 시리즈만은 평어체로 쓰기로 했다. 그 이유는, 내 삶의 독백 형식이 될 것 같아서다. 어쩌면 독백이 아니라 자서전 같은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첫직장 시절부터 현재 회사에 들어오기까지의 여러 경험들, 회사에서 다툰 경험들, 잘 해서 으쓱했던 모든 기록들을 쓸 테니까. 내 삶을 내가 쓰는 글이기에 내게 유리한 대로 쓸 수도 있겠다 싶다. 최대한 공정하게 바라보며 쓰겠지만 나도 사람이기에 완전히 공정한 입장에서 쓰긴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나 과오를 객관적으로 보며 쓰도록 노력할 것임을 독자님들께 약속한다.

직장생활. 난 직장생활을 매우 일찍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라도 20살 3월에 시작했으니 빠르기도 엄청 빨랐다. 그 전엔 자동차 정비소에서 2개월 일했다. 알바로는 식당에서 서빙 1년 정도, 신문배달 1년 정도 해본 경험도 있다. 이 경험들을 빼자니 서운할 것도 같아서 일단 맛보기로 내 알바시절과 정비소 2개월 시절도 적기로 했다. 자, 이제 시작해볼까.

난 대학을 가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공고출신이다. 중학교땐 공부를 못하진 않았다. 상위 20%정도는 했는데 영어를 포기한 성적이다. 난 외우는 머리가 똥이라서 영어단어를 도저히 외우질 못했다. 그래서 영어시험은 그냥 다 찍었는데 보통 14~20점 정도 나왔으니, 영어 폭망하고도 상위 20%는 했다. 영어를 빼면 반에서 상위 10% 안에 드는 우등생이었다. 담임도 자기 평생 이런 성적표는 처음 본다고 참 희한한 놈이라고 안타깝다고 했으니 난 아인슈타인같은 머리인 것도 같다는 생각이다. 수학과 과학 외에는 점수가 똥망이었던 아인슈타인처럼 나는 영어를 뺀 나머지 과목들은 대부분 만점을 받을 정도로 공부는 좀 했다. 영어 때문에 공고를 간 건 아니었다. 부모님 없이, 특별한 직업이 없는 할머니 밑에 자랐고 워낙 가난했기에 대학은 애초에 내가 생각할 대상이 아니었다. 난 그냥 초딩때부터 공고가 정해진 수순이었다. 공고를 졸업한 다음 기술을 배워 돈을 벌고 적당히 결혼한 다음 적당히 사는 게 정해진 삶이었다. 그래도 성적은 괜찮았기에 명문고인 한양공고 자동차과에 입학했다. 지금은 공고가 인기가 없어 내 모교의 인기가 별로지만 그당시 자동차과로는 국내 최고 학교였다.

신문배달은 고1때 나도 용돈이라는 것좀 갖고 싶어서 했다. 난 그당시 영구임대주택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아파트 신문배달은 어렵지 않았다. 그냥 꼭대기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다음 계단으로 내려오면 됐다. 뭐, 여름과 겨울은 힘들었지만. 고2땐 식당 서빙 알바라는 걸 알게 됐고 그당시 시급 1100원을 받고 하루 4시간 알바를 했다.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였다. 그렇게 번 돈으로 옷도 사입고 필요한 곳에 사용했다. 고3은 사실상 1학기 뿐이다. 여름이 되면 모두 취업을 나가고 졸업식에만 오면 됐다. 난 자동차 정비소로 취업을 나갔는데 두 달 만에 그만뒀다. (학교로 복귀하진 않았지만 나중에 사장이 계속 일했다고 도장을 찍어주긴 했다.) 그만 두고 다시 식당에서 서빙을 했는데 난 식당 일이 너무 재밌고 즐거웠다. 그래서 졸업하자마자 아예 한식집 주방에 취직을 했다.

500석 규모의 한식당. 여기가 나의 첫 직장인 한식집이다. 2대째 이어오는 한식집이었으며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한식집이었다. 주방엔 20년 넘게 일한 사람들도 여럿일 정도로 오래된 식당이었다. 종로 한가운데 있던 이 한식당의 규모는 대략 500석 정도 되는 3층 건물이었고 1층은 일반 식사, 2층은 고기, 3층은 예약석으로 된 한식집이었다. 주방도 어마어마하게 컸는데 주방 직원이 조리사가 대략 15명 정도, 반찬 만드는 찬모가 대략 15명 정도, 설거지 등 보조가 4명 정도로 주방만 34명 정도였다. 서빙도 정직원과 알바까지 하면 대략 25명 정도 됐다. 지하엔 맥줏집도 있었으니 직원만 대략 70명 정도 되는 매우 큰 한식집이었다. 난 주방보조로 입사를 했고 설거지만 했다. 주방 형들은 설거지 3년은 해야 주방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3년? 헐... 군대 갔다 오면 주방에 들어가겠군. 난 주방에서 최연소였고 같이 설거지 하는 형들과 노래를 부르며 땀을 닦으며 설거지로 하루를 보냈다. 출근은 아침10시 퇴근은 저녁10시였고, 중간에 쉬는 시간 1.5시간~2시간이 있었다. 아침밥은 일찍 출근한 사람들이 모여서 된장찌개를 해먹었고, 점심밥은 오후1시, 저녁밥은 오후5시30분에 먹었다. 저녁9시 30분부터 마감을 하고 청소하고 퇴근하는 삶이 이어졌다.

설거지는 의외로 편했다. 생각이 필요없기 때문이었다. 그냥 올라오는 그릇들을 닦고 행구고 다시 내려보내면 됐다. 하지만 불판 닦는 일은 너무 힘들었다. 잘 닦이지도 않았고 고기가 탄 불판은 철사로 된 솔로 온 힘을 다해 박박 문대야 했다. 그런 일은 보통 힘이 쎈 사람이 했고 170에 겨우 48키로였던 난 힘든 일에선 늘 제외였다. (참, 내가 자동차 정비소를 두 달만에 그만든 이유가 너무 약골이었기 때문이었는데 뭐 하나 제대로 들 수가 없을 정도로 약해서 너무 힘들었다.) 어른들은 날 예뻐했다. 겨우 20살에 삐쩍 말랐고 머리는 단발머리에 씨뻘겋게 염색했고 입술이 워낙 빨간데다 피부는 너무 하얘서 날 여자로 아는 사람도 엄청 많았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같이 설거지 하는 형들과 대화하는 일 말고는 어느 누구하고도 말할 일이 없었기에 서빙하는 사람들은 날 전부 여자로 알았다고 한다. 빨간 단발머리 이유였겠지. 설마 내가 예쁘게 생겨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중에 내가 남자인 게 알려지고는 서빙하는 누나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대학생 누나들도 겨우 스무살 짜리가 주방에서 일한다며 잘 챙겨줬고, 정직원 누나들도 항상 날 챙겨줄 정도로 귀여움을 독차지하기도 했다. 아~~~ ㅋㅋㅋ 22년 전. ㅋㅋㅋ

그땐 워낙 무식해서 최저임금이라는 것도 몰랐기에 내가 적정 월급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60인가 70정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홀서빙은 초봉이 100이었다. 그걸 불만 삼은 형들이 단체로 임금인상을 요구했고, 사장이 거절하자 단체로 퇴사를 해버렸다. 그렇게 예상치도 못하게 난 설거지 3개월만에 식당 역사상 최단기간 설거지 기간을 기록하며 조리사로 승진을 했다. 겨우 20살 짜리 꼬마가 칼을 잡게 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나의 인생 첫번째 황금기가 시작됐다. 난 식당 일이 너무 적성에 잘 맞고 재밌어서 겨우 1년도 안 되어 냉면장을 했고 칼질 실력은 부주방장 다음으로 잘하는 등 어이없고 어처구니 없는 기록들을 세우며 초고속 승진을 했다. 겨우 21살에 나보다 나이 많은 형들을 거느리고 주방을 좌지우지 하기까지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린 나이에 당돌했던 것 같다.

다음 회엔 내가 어떻게 1년도 안 되어 냉면장을 하고 칼질 실력은 15명 중에 3번째가 될 정도까지 됐는지에 대해 써보도록 하겠다. 하~~~ 22년전. 기억들... 생각만으로도 짜릿하다. 그당시 내 꿈은 그냥 일류 요리사였는데... ㅎㅎㅎㅎㅎ


Book review 43. 딱히 꿈이 있는건 아니고 | 실패한 직장인이 성공한 직장인의 퇴사일기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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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즐거운 스티밋하세요!

칼질몇번에 촤라락!!!
요리왕 나하님 ㅋㅋ
다음편도 기대가 됩니다^^

요리왕은 못했지만 나름 칼질왕 정도는 했습니다. ^^

자서전이지만, 재미있네요 ㅎ
다음글도 기대할께요 ㅎ
냉면장님 이야기좀 들려주세요

냉면 이야기도 언능 쓸게요. ㅎㅎㅎㅎㅎ

재밌게 쓰시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ㅎㅎ 저는 한회사에 뿌리 박는 테크트리인데 그래서인지 이직에 대한 두려움이 있네요.

앗... 칭찬 고맙습니다. 딱히 잼나게 쓰는 능력은 없지만... 노력할게요. ^^

11번의 이직이라니..
실패한 직장인이 아니지요..
그 잦은 변화와 낯선 환경을 이겨내셨으니 승리자이십니다.

낮선 환경에 적응하는 일엔 이제 도가 텄습니다. ㅡ.ㅡ^
ㅎㅎㅎㅎㅎ

자신을 뒤돌아 보는 글 좋습니다.
저도 냉연집 알바 경험이 있어요. 오장동함흥냉면
93년 인가? 그당시 주방은 규율이 심해서 설거지가 칼을 잡는건 고사하고, 주방장 서는 자리에도 올라 가면 안되었던 터였죠... 친구랑 했는데 함게 설거지 잡일 진짜 열심히 잼 나게 했는데... 그걸 본 주방장이 그 이후로 주방의 모든걸 해보게 했었죠 저희가 규율을 지워 버린 거죠...
나중에 대학 간다고 그만 둘려니 진급 시켜준다고 있으라 했는데.....
요렇게 다른 인생을 살고 있네요^^
다음 편도 기다릴께요

우와... 저랑 공감대가 있네요.
저는 아예 주방에서 일을 했어요. 요리사가 되고 싶기도 했고. ^^

팔로우 하고 갈께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네요

앗,,, 고맙습니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

아주 진지하게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ㅎㅎ

진지하게... 부끄럽습니다. ^^

크......도대체 어디에 실패자가 계십니까??? !! 능력자만 보입니다!+_+

음... 이직을 하도 많이 해선지, 가방끈이 짧아선지 동일직종 동일직급 동일나이에 비해 연봉이 천 정도 낮아요. ㅠㅠ

저도 이직을 많이 해서 ㅠ 걱정이긴하나....전 it에 있다보니 잦은 이직이 더 나은 환경일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긴해용 ㅠ

역시 기회란 꾸준한 사람에게 찾아오나 봅니다.

기회는 앞머리만 있고 뒷머리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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