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1부 2

in Book it Suda5 years ago

오블론스키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진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기만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행동을 뉘우친다고 단언하지도 못했다. 서른넷의 나이에 잘생기고 쉽게 사랑에 빠지는 그가, 자기보다 겨우 한 살 어릴 뿐인데 벌써 살아 있는 아이 다섯과 죽은 아이 둘의 어머니인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 와서 뉘우치지는 않았다. 단지 그 사실을 아내에게 좀 더 잘 숨기지 못했음을 뉘우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의 엄중함을 깨닫고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그 소식이 아내에게 충격을 안길 줄 알았더라면 아마 자기 잘못을 아내에게 좀 더 잘 숨겼을 것이었다. 물론 그는 이 문제를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막연하게나마 아내가 이미 오래 전부터 자신의 부정을 눈치챘으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기력이 쇠하고 나이 들어 이제 더 이상 아름답지도 않고 전혀 특출 나지 않은, 평범하고 그저 좋은 어머니일 뿐인 아내가 당연히 자신에게 관대해야 한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정반대였던 것이다.
‘아, 망할 것! 아, 아, 아! 망할 것!’ 오블론스키는 같은 말을 되풀이할 뿐 아무 해결책도 생각해 내지 못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얼마나 좋았던가, 우리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녀는 만족했고 아이들에게 잘했고, 나는 그녀의 일을 전혀 훼방 놓지 않았지.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나 집안일이나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했어. 그래, ’그녀‘가 우리 집 가정교사로 들어온 게 좋지 않았어! 좋지 않았다고! 내 집에서 일하는 가정교사 뒤를 쫓아다니다니, 진부하고 저속한 일이야. 하지만 보통 가정교사가 아니었단 말이지! (그는 마드무아젤 롤랑의 장난기 가득한 검은 눈과 미소를 생생히 떠올렸다.) 그렇지만 그녀가 우리 집에 있을 때는 난 아무 짓도 안 했단 말이야. 가장 나쁜 건, 그녀가 이미……. 이 모든 것이 일부러 이렇게 된 것 같아! 아, 아, 아! 아, 아! 이제 어찌해야 하지?’
답은 없었다. 대단히 어렵고 풀기 힘든 질문에 인생이 던지는 일반적인 답을 제외하고는. 그 답은 이것이다. 하루하루 그날 할 일을 한다, 즉 잊는 것이다. 잠을 통해 잊기는 이미 불가능했다, 적어도 밤이 될 때까지는 귀여운 유리병 여인들이 불러주던 음악으로 되돌아가기란 불가능했다. 그러니 삶의 꿈으로 잊을 수밖에.
“나중에 알게 되겠지.” 오블론스키는 혼잣말을 하고는 일어나, 푸른색 실크로 안감을 댄 회색 파자마를 걸치고 허리끈을 묶었다. 그런 다음 자신의 넓은 가슴통에 공기를 가득 들이마시고는, 뚱뚱한 몸을 아주 가볍게 움직여주는 다리를 틀어 늘 하던 대로 경쾌한 발걸음으로 창문으로 다가가 커튼을 올리고 힘차게 종을 흔들었다. 이 소시를 듣고 바로 들어온 사람은 오랜 벗인 시종 마트베이였다. 그는 옷과 구두, 그리고 전보를 가지고 들어왔다. 마트베이 뒤를 따라 이발사가 면도 용품을 들고 들어왔다.
“관청에서 온 서류가 있나?” 전보를 들고 거울 앞에 앉으며 오블론스키가 물었다.
“책상 위에 있습니다.” 마트베이가 대답하며 연민 어린 시선으로 뭔가를 묻듯이 주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조금 기다리다가 교활한 미소를 띠며 덧붙였다. “삯마차 주인이 사람을 보냈습니다.”
오블론스키는 아무 대답 없이 거울을 통해 마트베이를 쳐다보았다. 거울 속에서 그들은 시선을 나누며 서로를 이해했다. 오블론스키의 시선은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자네, 그 얘긴 왜 하나? 정말 모르는 건가?”
마트베이는 손을 재킷 주머니에 넣고는 한 발을 내밀고 서서 아무 말 없이, 그러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주인을 쳐다봤다.
“일요일에 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괜히 나리를 못살게 굴지 말고 공연히 헛수고하지 말라고 했습죠.” 그는 미리 준비해 둔 게 분명한 말을 했다.
마트베이가 농담을 해서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오블론스키는 깨달았다. 그는 전보를 뜯어 언제나처럼 잘못 쓰인 단어들을 짐작으로 정정해 가면서 쭉 읽었다. 그러고 나더니 얼굴이 활짝 펴졌다.
“마트베이, 내 누이 안나가 내일 온다는군.” 광택이 나는 이발사의 퉁퉁한 손을 잠깐 멈추게 하고 그가 말했다. 이발사는 길고 고불거리는 구레나룻 사이로 장밋빛 길을 내던 참이었다.
“다행입니다.” 마트베이가 말했다. 이 대답은 그가 주인과 마찬가지로 이 방문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즉 오블론스키의 사랑하는 여동생인 안나는 부부의 화해를 도와줄 터였다.
“혼자 오십니까? 아니면 부군과?” 마트베이가 물었다.
이발사가 윗입술을 다듬고 있었기에 오블론스키는 말을 할 수 없어서 한 손가락을 치켜들였다. 마트베이는 거울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오신다고요. 위층을 준비시킬까요?”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에게 어느 방을 준비해야 할지 여쭤보게.”
“마님에게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마트베이가 물었다.
“그래, 물어보게. 자, 여기 전보를 가져가. 그리고 뭐라고 하는지 내게 전하게.”
‘마님이 어떻게 나오는지 떠보고 싶어 하시는군.’ 마트베이는 이렇게 이해했지만 그저 다음과 같이 대답했을 뿐이다. “알겠습니다.”
마트베이가 손에는 전보를 들고, 끽끽 소리를 내는 구두를 천천히 끌며 방으로 돌아왔을 때 오블론스키는 이미 세수와 빗질을 마치고 옷을 입으려 하고 있었다. 이발사는 이미 나가고 없었다.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께서는 떠난다고 하십니다. 하고 싶은 대로, 그러니까 나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시랍니다.” 그는 눈으로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손을 주머니에 꽃고 머리는 옆으로 기울인 채 주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오블론스키는 잠시 침묵했다. 잠시 후 그의 잘생긴 얼굴에 선량하면서도 약간 서글픈 미소가 떠올랐다.
“아, 마트베이?” 그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나리. 일은 알아서 풀릴 겁니다.” 마트베이가 말했다.
“알아서 풀린다고?”
“그렇습죠.”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나? 거기 누구지?” 문 뒤에서 여자 옷이 바스락대는 소리를 듣고 오블론스키가 물었다.
“저예요. 나리.” 단호하지만 듣기 좋은 여자 목소리였다. 그리고 문 뒤에서 붙임성 없고 얽은 얼굴이 나타났다. 유모인 마트료나 필리모노브라였다.
“그래, 무슨 일인가, 마트료샤?” 그녀를 향해 문 쪽으로 가며 오블론스키가 물었다.
비록 오블론스키가 전적으로 잘못했고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집에서는 거의 모두, 그러니까 돌리의 가장 친한 벗인 유모조차도 그의 편이었다.
“그래, 무슨 일인가?” 그가 침울하게 물었다.
“나리, 다시 한번 찾아가 용서를 비세요. 아마 하느님이 도와주실 거예요. 마님은 무척 상심하고 계세요. 바라보는 제 가슴이 찢어진답니다. 그리고 집이 온통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어요. 나리, 아이들을 불쌍히 생각하셔야죠. 용서를 비세요. 나리. 어쩌겠어요! 수고를 해야…….”
“하지만 아내가 나를 받아주지 않을 거야…….”
“나리는 나리가 할 일을 하세요. 하느님은 자비로우시답니다. 하느님께 비세요, 나리, 하느님께 기도하세요.”
“알겠네. 이제 가보게.” 오블론스키는 불현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자, 이제 옷을 입어야겠네.” 그는 마트베이를 향해 돌아서서 단호하게 파자마를 벗어 던졌다. 마트베이는 무거운 짐이라도 되는 양 셔츠를 들고서는 뭔가 눈에 띄지 않는 걸 떼어내려 불어대고 있었다. 마트베이는 만족스러워하며 주인의 소중한 몸에 셔츠를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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