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1부 3
옷을 입고 나서 오블론스키는 향수를 뿌렸고, 셔츠 소매를 매만진 후 늘 하던 대로 호주머니 여기저기에 담배, 지갑, 성냥, 장식물과 함께 줄이 둘 달린 시계를 집어넣었다. 그는 자신이 깨끗하고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건강하고, 비록 불행하기는 하지만 신체적으로는 활기차다고 느끼면서 손수건을 턴 후에 양다리를 살짝 흔들며 식당으로 갔다. 그곳에는 커피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편지와 관청에서 온 서류들이 있었다.
그는 편지들을 읽었다. 그중 하나가 무척 거슬렸다. 아내의 영지에 있는 숲을 사려는 상인이 보낸 편지였다. 이 숲은 꼭 팔아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니까 아내와 화해하기 전까지는 말도 꺼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가장 걸리는 점은 ㅇ내와의 화해에 이 돈 문제가 얽혀든다는 사실이었다. 이 문제에 끌려가리라는 생각, 즉 이 숲을 팔기 위해 아내와 화해하려 애쓸 거라는 생각이 들어 감정이 상했다.
편지들을 읽고 나서 오블론스키는 관청에서 온 서류들을 끌어당겨 그중 두 개를 재빨리 훑어봤다. 그는 거기에 연필로 굵게 몇 가지 표시를 한 후 밀어놓고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신 후에는 아직 축축한 조간신문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오블론스키는 자유주의 신문을 구독했다. 그 신문은 급진적이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자유주의 성향을 띄었다. 그는 학문이나 예술, 정치 그 무엇에도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해 대다수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보는 신문이 견지하는 시각을 굳게 지지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의견을 바꿀 때에만 시각을 바꾸었다. 아니, 그가 시각을 바꾼다기보다는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시각이 바뀐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하리라.
오블론스키는 어떤 성향이나 시각을 고르지 않았다. 반대로 그것들이 그에게 다가왔다. 마치 그가 모자나 프록코트의 디자인을 고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취향을 따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개화된 사회에서 사는 그에게, 나이 들면서 자연스레 성숙해지는 사고 활동에 필요한 의견을 구비하는 것은 모자를 갖는 것처럼 필요한 일이었다. 그가 속한 사회에 자유주의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신봉하는 보수 성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보수보다 자유주의를 선호하는 이유는 자유주의가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들은 말하기를, 러시아의 모든 것이 잘못됐다고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오블론스키는 많은 빚을 지고 있었고 돈은 단연코 부족했다. 자유주의자들은 말하기를, 결혼은 고루한 제도라면서 이걸 고쳐야 한다고들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가정생활은 오블론스키에게 만족스럽지 않았고, 그래서 자신의 성정에 반하는데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하고 속이는 것이었다. 자유주의자들은 말하기를, 아니 그보다는 암시하기를, 종교란 그저 미개한 사람들에게 씌워진 굴레일 뿐이라는데, 아닌게 아니라 아무리 짧은 예배라도 설교를 듣다 보면 오블론스키는 다리에 통증을 느끼고 마는 것이었다. 더구나 사제들이 하늘나라에 대해 늘어놓는 무섭고 과장된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와 함께 유쾌한 농담을 즐기는 오블론스키는 가끔 순진한 사람에게 족보를 자랑스러워한다면 류릭에게서 멈추지 말고 종의 기원인 유인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해 상대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을 즐겼다. 이처럼 자유주의 성향은 오블론스키에게 습관처럼 몸에 배었고 그는 자신이 보는 신문을 사랑했다. 마치 담배가 머릿속에 아련한 몽롱함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식후 흡연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사설을 읽었는데, 거기에는 급진주의가 보수주의 요소를 죄다 지어삼킬 것 같으니 정부가 혁명 움직임을 분쇄해야 한다고 떠들어대 봐야 우리 시대에 아무 쓸모도 없다는 주장이 실려 있었다. 사설은 반대로 ‘우리가 보기에는 있지도 않은 혁명 움직임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위험은 발전을 지체시키는 완고한 벤담과 밀이 언급되고 정부를 비꼬는 말들이었다. 타고나기를 이해력이 빠른 그는 비꼬는 말을 전부 이해했다. 즉 누가 누구에게 무엇에 대해 한 말인지를 알아챘다. 늘 그럿듯이 그는 이렇게 추측하면서 만족감을 느꼈다. 그러나 오늘으 마트료나 필리모노브나가 지 안이 엉망이라면서 한 충고 때문에 이 만족감이 광채를 잃었다. 그는 보이스트 백작이 소문대로 비습덴을 지나갔다는 소식이며, 흰머리가 자취를 감출 거라는 이야기, 경마차 판매 소식, 그리고 어떤 젊은이가 일을 구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러나 이런 소식은 예전과 달리 조용하지만 아이러니한 만족감을 주지 않았다.
그는 신문을 읽고 두 잔째 커피를 마시고 버터 바른 칼라치를 먹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조끼에 묻은 빵 조각을 털어내고 넓은 가슴을 펴고는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뭔가 특별한 일이 있어 즐거운 게 아니었다. 흐뭇하게 미소 지은 이유는 소화가 잘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흐뭇한 미소에 이어 금세 모든 일이 다시 떠올랐고 그는 생각에 잠겼다.
어린아이들의 목소리가(오블론스키는 작은 아들 그리샤와 큰딸 타냐의 목소리를 알아챘다.) 문 밖에서 들렸다. 뭔가를 들고 가다가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지붕 위에 승객들을 놓지 말라고 내가 말했지!” 여자가 영어로 소리쳤다. “빨리 주워 담아!”
“모든 게 엉망이군.” 오블론스키는 생각했다. “이제 아이들끼리만 뛰어다니다니.” 그가 문으로 다가가 아이들을 불렀다. 아이들은 기차 노릇을 하던 상자를 버리고 아버지에게 왔다.
아버지가 남달리 귀여워하는 여자아이가 냉큼 달려와 그를 안고는 웃으면서, 늘 그렇듯이, 목에 매달려 아비지의 수염에서 풍겨 나오는 익숙한 향수 냄새를 맡았다 허리를 굽힌 탓에 발그레해졌지만 부드럽게 빛나는 그의 얼굴에 입을 맞춘 후에야 여자아이는 팔을 풀고 뒤로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이를 잡았다.
“엄마는 어떠니?” 딸의 매끄럽고 보드라운 목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물었다. 그리고 인사를 하는 아들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래, 안녕?”
그는 자신이 아들보다 딸을 더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늘 공평하게 대하려 했지만 아들은 이를 느끼고 아버지의 차가운 미소에 굳이 미소로 답하지 않았다.
“엄마요? 일어나셨어요.” 딸이 대답했다.
오블론스키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또 한숨도 안 잤다는 말이군.’ 그는 생각했다.
“그래, 엄마는 기분이 좀 좋아 보이던?”
딸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싸움을 벌였고, 그래서 어머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으며, 아버지 역시 이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버지 때문에 아이 얼굴이 빨개졌다. 아버지 역시 바로 사실을 깨닫고 얼굴이 빨개졌다.
“모르겠어요.” 딸이 대답했다. “엄마는 우리보고 공부하라고 하지 않고 미스 굴이랑 할머니에게 놀러 가라고 하셨어요.”
“그럼 가보렴, 우리 예쁜 딸. 아, 잠깐 기다려라.” 딸을 붙들고 부드러운 손을 어루만지며 그가 말했다.
그는 어제 벽난로 선반에 놔뒀던 과자 상자를 가져다가 딸이 좋아하는 초콜릿과 퐁당 과자를 골라 딸에게 주었다.
“그리샤 줄까요?” 딸은 초콜릿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그럼.” 그는 다시금 딸의 어깨를 쓰다듬고 머리와 목에 입을 맞춘 후 아이를 놓아주었다.
“마차가 준비됐습니다.” 마트베이가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청원인도 오셨습니다.”
“온 지 오래됐나?” 오블론스키가 물었다.
“삼십 분쯤 됐습니다.”
“대체 몇 번을 말했나. 바로 알리라니까!”
“그래도 나리가 커피 드실 시간은 드려야지요.” 마트베이는 아무도 성을 낼 수 없을 다정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 어서 들여보내게.” 오블론스키는 화가 나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청원인은 이등대위의 아내 칼리니나로, 불가능한 데다 말도 안 되는 일을 부탁했다. 그러나 오블론스키는 늘 하던 대로 그녀를 자리에 앉히고, 말을 끊지 않으면서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인 후에 누구에게 찾아가 어떻게 부탁하라고 자세히 조언해 주었다. 게다가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에게 보낼 편지를 굵직굵직하고 큼직한, 또 아름다우면서도 알아보기 쉬운 필체로 멋지게 써서 건네주었다. 이등대위 아내를 보내고 나서, 오블론스키는 모자를 집어 들고 뭔가 잊은 게 없나 하며 멈춰 섰다. 잊은 것은 전혀 없었다. 단 하나, 잊고 싶어 하는 것만을 제외하면. 그건 바로 아내였다.
‘아, 그렇지!’ 그는 고개를 떨구고 아름다운 얼굴에 슬픈 표정을 지었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는 혼잣말을 했다. 그러자 내면의 목소리가 말하는 것이었다. 갈 필요가 없다고, 이 일에는 오로지 기만이 있을 뿐이라고, 그들의 관계를 개선하거나 복구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왜냐하면 그녀가 다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여자가 되거나, 아니면 그가 사랑할 수 없는 노인이 될 수는 없기 때문에. 기만과 거짓 외에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성정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떤 때는 필요한 거야. 이렇게 계속 갈 수는 없어.” 용기를 내려고 애쓰며 그가 말했다. 그는 가슴을 펴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두 모금을 빤 후 담배를 진주조개 재떨이에 던지고, 잰걸음으로 어두운 응접실을 지나 다른 문을 열었다. 아내의 침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