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울면 왜 마음이 약해질까

in #kr2 years ago

중국인 남편과 홍콩에 살다가 한국에 갔다가 코로나 때문에 이년 정도 남편과 떨어져있다가 홍콩으로 들어온지 거즌 일년이 되어간다.

시부모님이랑 산지 거즌 일년이 되간다 라고 바꿔써야겠다. 명목은 육아를 도와주기 위해 계시는건데 이렇게 오래 안 가시는 이유는 아들과 손주들과 오손도손 살고 싶어서이실거다.

이삼개월에 한번 정도 싸우게 된다. 남편이나 시어머니 상대로 말과 표정이 심하게 나가게 된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시어머니의 육아 잔소리를 한마디 들었을 뿐인데 한귀로 듣고 흘리지 못했다.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로 시어머니께 크게 소리 쳤다. 내가 엄마고 어머니는 그냥 할머니일 뿐이라고. 자꾸 이러시면 나도 여기서 못 있는다고.

분노의 불길이 지나가고 싸늘한 집안 분위기를 감당해내고 있는데, 그렇게 강함으로 무장하셨던 시어머니가 내 앞에서 거의 통곡 수준으로 우시는(!) 것이었다..

화를 내실 줄 알았지 우실 줄은 정말 예상 못 했기에...근데 이상하게도 드디어 강함을 해제하고 자신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셨을 때, 내 마음 속에 응어리졌던 시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한순간에 녹아버린 것 같았다. 난 바로 시어머니를 안아드렸고 그 순간 진심으로 시어머니한테 죄송하다고 용서를 구했다.

내 진심이 느껴졌는지 얼음처럼 차가워지셨던 시어머니도 마음을 푸셨고, 우린 다시 보통의 고부관계로 돌아왔다.

시어머니가 갑자기 내 앞에서 우신 것도 예상 밖이었고, 또 시어머니가 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해서 내가 그 싫고 불편한 시어머니를 진심으로 안아드리고 죄송하다고 용서를 구한 것도 내 자신에게 의외였다.

약하다는 것. 사실은 그도 나처럼 약했다는 것.

그게 나에게 어떤 의미이길래 난 바로 마음이 녹았을까.

그저 내가 그 순간 강자가 됐다고 생각해서 우월감에 기뻤던 것일까?

그가 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나는 왜 닫힌 마음을 열게 된 것일까?

참 이상하다. 우린 다들 강해보이려고 자신을 포장하는데. 그럼 다른 사람들이 날 함부로 대하지 않을 거 같아서. 더 날 대우해줄 것 같아서.

그래서 시어머니도 그런 믿음으로 그렇게 오랜 세월을 꼿꼿하게 강한 척 하셨을텐데. 난 왜 강함으로 무장하셨을 때 그토록 끝까지 반항했을까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세상은 가끔 의도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예상치 못한 결과를 주기도 하는 것 같다.

약점이 강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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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결국은 며느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남자는 결코 알수 없는 여자의 일생에 대한 그 어떤 짠함 같은 것이 있습니다.
자주 자주 안아주세요.
어머님이 울지 않으셔도 말입니다. ^^

오랜만에 글 올리고 요호님 댓글을 오랜만에 보니 왠지 고향에 돌아와서 환영 받는 느낌이에요~~~^^

짠한거 정말 있어요... 시어머니를 봐도 그렇고 저희 엄마를 봐도 그렇고... 외로워 보이시기도 하고... 잔소리를 하시는 모습에서도 짠함이 느껴지기도 하긴 해요.... 그래도 싫은건 싫은 거지만 이젠 싫은 느낌만 있는건 아닌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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