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랑'에 대한 비판 생각해보기 (1) (18.08.04)

in #kr6 years ago

원작을 본 지 너무 오래 되어서 두 작품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와 비교는 훗 날 원작을 다시 감상한 후로 미루고 이번 포스팅에서는 한국 실사 버전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판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인랑 비판에 대한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나무 위키 내용에 대해 제 의견입니다.



3.1. 원작과 엇나간 방향성

"원작의 묵직하고 철학적인 메시지, 빨간 망토 소녀에서 시작된 묵시록적 서사와 강렬한 엔딩 등의 원작의 좋은 요소들을 모조리 삭제해버리고 강동원과 한효주의 이해할 수 없는 로맨스의 비중이 크다는 것이 가장 큰 비판점."

원작에서 엔딩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두 남녀 주인공의 감정에 대한 묘사가 중요합니다.
한국 버전에서 임중경(강동원)이 이윤희(한효주)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가지는 부분이 바로 이 로맨스 파트의 존재 이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임중경의 최종적인 심경 변화는 그의 트라우마부터 시작된 '과연 잘못된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입니다. 원작과 달리 끊임없이 과거의 고통에 시달리는 임중경에게 이윤희를 죽게 내버려두는 것은 그러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는 것이며 그가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가 이윤희를 정말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가 조직을 배신하고 그녀를 구할 결심을 했을까요? 저는 오히려 두 사람의 로맨스 파트가 없었다면 그걸 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거라 봅니다.
여태껏 늑대로 살아온 남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서까지 구해야 할 사람이라면 그 정도 감정은 필요한 것이죠.



"영상미와 화면 연출의 경우 원작 애니메이션의 흐리고 무거운 분위기가 아닌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가볍고 지나치게 화려한 보정을 많이 넣은 영상이라 불호하다는 원작 팬들의 의견과 원작과 다른 독자적인 영화의 색깔이라는 영화 팬들의 의견이 서로 충돌하는 편이다. 다만, 원작 팬의 기준이 영화의 평가에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므로 관람객의 주관에 따라 판단할 부분이다."

원작의 경우 단순히 어둡다기 보다는 무채색이 특징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것은 작품의 주제인 '전체'라는 조직에 흡수되어 존재하지 않는 '개인'을 묘사하기 위한 것으로 연출적 스타일이라고 봐야 합니다.
반면 한국 버전은 블록버스터 기준으로는 상당히 어두운 작품이라고 봐야 합니다. 애초에 색을 조절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과 달리 실사 영화는 조명과 시간을 통해 그 톤을 전달해야 하는데 한국 버전의 경우 주요 사건들이 대부분 밤이나 좁고 어두운 수로에서 발생함으로써 이러한 어두운 부분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영화에 대한 나무 위키 비판을 비롯해서 네티즌들의 주장이 얼마나 작위적이냐면 위 내용에도 원작 팬의 평가가 절대적이지는 않다고 하면서 모든 비판 내용이 원작과 비교해서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면서도 그게 '논리적'이라고 다들 떠드는 거죠.


"이윤희가 임중경을 유인할 때 가지고 온 책인 수잔 손탁의 "타인의 고통"은 타인의 고통을 피상적으로,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진정으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방법을 찾아 연대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영화 스토리상으로는 이윤희가 임중경에게 보내는 구조 신호이기도 하지만, 억압적인 체제가 가하는 타인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서로 연대하여 전체주의에 맞서라는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것으로도 보여진다. 그러나 이런 주제 의식과는 별개로,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과정 자체는 심각하게 투박하여 얼핏 보면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무리 좋은 주제 의식이 있더라도 영화는 연출로써 이를 누구나 알아보기 쉽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전달해야 한다. 원작 인랑이 지나칠 정도로 주제를 직설적으로 설파하여 조잡한 느낌을 줬을지언정 메시지 어필은 확실히 했던 반면 인랑 실사 영화는 이런 점이 처참했다."

맞습니다. 그게 감독의 연출 의도입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 특기대와 손을 잡은 구미경이 등장해서 이러한 작위적인 연출을 비웃어 주죠. 애초에 이 설정의 의미는 임중경을 속인 이윤희가 그에게 자신을 구해달라고 하는 장면이 얼마나 이기적이면서도 작위적인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니까요.
김지운 감독이 이 영화의 배경을 근 미래로 설정했지만 사실 영화속 캐릭터들이 처한 상황은 우리 역사에서 반복된 문제입니다.
무력한 한 개인은 늘 '어느 편'에 설 지를 강요받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일제시대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반복된 문제입니다.
영화속에서 이윤희는 살기 위해 , 동생의 수술비를 벌기 위해 살인도 하고 , 남자에게 접근도 합니다. 이것을 과연 그녀의 죄라고 해야할까요?
저는 그런 점에서 감독이 이 장면을 삽입했다고 봅니다.
이 장면의 의미는 임중경이 그녀를 구할 것을 선택한 것이 임중경 자신의 의지라는 점을 위한 설정이라고 봐야 합니다.
영화속에서 임중경에 영향을 미친 건 그 책보다는 자신이 평소 읽던 책들의 영향이 더 크다고 봐야 합니다.
솔직히 이런 비판을 하는 것 자체가 영화를 제대로 본 건가 의심스러운 부분입니다.
바로 뒷 장면에서 늘 그녀를 비웃던 구미경이 등장해서 그녀의 '가식'을 지적하고 정작 임중경은 그 책은 크게 신경도 안 쓰는데 이걸 주제의식 운운하니 어이가 없네요.
오히려 감독이 이야기하는 주제의식 자체가 변경된 엔딩을 선택한 것인데 그건 원작 운운하면서 비판하기 바쁘고 정작 저 장면 하나로 감독이 주제의식을 전달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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