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기 '동행' - 3.산티아고 가는 길이란?

in KOREAN Society3 years ago (edited)

에스파냐(España, 영어로는 스페인Spain이라 부른다)에는 종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순례길이 있다. 중세풍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이 길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누구나 한 번쯤은 걷고 싶어 하는 길이다.

종교가 곧 구원이자 생명이던 중세시대, 수많은 순례자들이 목숨을 건 모험이나 다름없던 험난한 길을 두 발에 의존한 채 걸어갔다. 무려 천년의 시간이 오롯이 녹아든 이 길을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는 뜻으로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라 부른다.

요즘은 이 길을 통상 까미노Camino라 줄여 부르기도 한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제일 먼저 순교한 야고보 성인의 무덤을 찾아가는 까미노는 이제 종교적 의미를 초월하여 인생의 목표를 찾아가는 희망의 길로도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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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Santiago는 에스파냐어로 성聖스러움을 의미하는 산토Santo에 야고보의 에스파냐식 이름인 이아고Iago가 합해진 단어로 「성 야고보」라는 뜻이다. 사도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는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예수의 말씀에 따라 지금의 에스파냐로 전도여행을 떠났으나 그리 성공적인 전도를 하지는 못했다.

7년간에 걸친 에스파냐의 전도 활동을 마감하고 예루살렘으로 되돌아 온 성 야고보는 서기 44년 유대왕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참수형에 처해졌다.

그즈음 헤로데 임금이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치려고 손을 뻗쳤다. 그는 먼저 요한의 형 야고보를 칼로 쳐 죽이게 하고서.(사도 12, 1-2)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중 순교내용이 성경에 기록된 유일한 사도가 바로 성 야고보(santiago,영어/Saint James, 프랑스어/Saint Jacques)였다. 야고보 성인의 제자들은 그의 시신을 거둬 배를 타고 성인이 복음을 전파했던 에스파냐로 향했다.

그리고 해안에 접한 갈리시아 지방의 알려지지 않은 곳에 묘지를 썼다. 그 후 고트족의 침입, 서로마의 멸망 그리고 이슬람 세력의 점령과 같은 혼란 속에서 그의 무덤은 이내 사람들의 기억에서 아스라이 잊혀 진 채 수백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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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는 서기 570년 태어나 15년의 명상 수행 끝에 서기 610년 알라신의 계시를 받아 이슬람교를 창시하게 된다. 아라비아의 이슬람 세력은 점차 북아프리카의 모리타니아Mauritania까지 진출하였다.

아프리카 북서부는 척박하였다. 하지만 폭 14km에 불과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면 지중해성 기후로 살기 좋은 이베리아 반도가 있었다.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세력은 이베리아 반도의 서고트 왕국에서 반란이 일어난 틈을 타 서기 711년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불과 7년여 만에 최북단의 험준한 아스투리아스 산악지형을 제외한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해 버렸다.

이때부터 이슬람 세력이 정복하지 못했던 아스투리아스 지역을 중심으로 780여 년에 걸친 이슬람 세력과의 국토회복전쟁, 즉 레콩키스타Reconquista가 시작되었다.

서기 813년 어느 캄캄한 밤, 은둔수도자 펠라요Pelayo는 찬란히 빛나는 별빛의 인도를 받아 성 야고보Santiago의 유해가 묻힌 장소를 발견했다. 그는 초자연적 현상의 계시에 경외심을 느끼고 테오도미르Teodomir 주교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 발견된 무덤은 성 야고보와 그의 두 제자의 유해가 안치된 세 개의 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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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의 유골이 발견된 곳을 별빛의 들판이라는 의미로 ‘캄푸스 스텔라Campus stellae’라고 부르다가 나중에 콤포스텔라Compostela로 합성하게 되었다. 지금은 ‘별빛의 들판에 있던 성 야고보’라는 의미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라는 지명으로 불려진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줄여서 산티아고로 부르기도 한다. 이제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의 이름이자 도시의 지명으로 굳어져 버렸다. 하기야 남미에 있는 칠레의 수도가 산티아고이기도 하니 얼마나 산티아고가 유명해 졌는가!

야고보 성인의 무덤을 발견한 이후인 서기 844년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명운을 건 이슬람 세력과의 전투가 있었다. 끌라비호Clavijo전투로 알려진 이 격전에 야고보 성인이 백마를 타고 발현한 것이다. 이를 목격한 기독교도는 야고보 성인의 이름을 부르며 결사 항전을 벌여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야고보 성인, 즉 산티아고의 발현은 별이 빛나는 평야에서 발견된 무덤이 성 야고보의 무덤임을확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슬람 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신앙의 구심점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야고보 성인의 전도 활동이 그의 사후 800년이 흐른 뒤에야 에스파냐에서 강력한효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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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부터 가톨릭에서는 에스파냐 북부 지역 신도들의 개종을 막기 위해 산티아고 순례를 장려하기 시작했다. 중세에는 죄악에 물든 육체가 고행을 통해 영혼을 깨끗이 정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순례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서기 1071년 이슬람교도인 셀주크튀르크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령되자 순례의 방향이 산티아고로 변했다. 물론 1099년 제1차 십자군 원정단이 예루살렘을 탈환하였으나 원정이 끝나자마자 대부분의 병사들이 귀국해 버림으로써 예루살렘 순례길은 위험천만하기 그지없었다. 그마저도 예루살렘 탈환 88년 만인 1187년 이슬람 술탄 살라딘Saladin에게 예루살렘을 다시 빼앗긴다.

그후 무려 700년간 예루살렘은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유럽인들은 위험하고 먼 예루살렘보다 비교적 안전한 산티아고로의 순례를 선호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1세기부터 15세기까지산티아고순례길은최고의전성기를누리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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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 길Caminos은 너무도 많지만 그 중 대표적인 길은 4곳이다. 하나는 프랑스 생장피드포르에서 시작하여 800km를 걸어가는 프랑스길Camino Francés, 에스파냐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시작되는 은의 길Vía de la Plata, 에스파냐 북쪽을 따라가는 북부길Camino del Norte, 마지막으로 포르투갈에서 시작하여 에스파냐 산티아고에 이르는 포르투갈길Camino Português로 나눠진다.

나는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가장 유명세를 타고 있는 프랑스길 800km을 걸은 다음, 포르투갈 해안길 280km를 걸어갔다. 포르투갈길은 내륙중앙길과 해안길로 나눠진다. 그 중 순례자가 거의 없는 해안길을 걷기로 했다. 돌아가신어머니께서바다를더좋아하시리라는확신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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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과 관련된 지명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최근에 배낭여행객들이 찾아서 유행이 되고 유명해진게 아니라 엄청 역사가 깊고 오래된 길이네요~

유명한 길이라 TV에서 방영되니까 한국사람들이 많이 찾아가서 그렇게 한국사람이 많아진 거여요. 제주 올렛길 서 이사장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깨우친 바 있어서 올레를 만든 겁니다. 물론 파올로 코엘료도 산티아고 길을 걷다가 깨우쳐서 소설가가 됐고, 그래서 순례자, 연금술사 등을 집필한 거여요. 산티아고 길의 폰세바돈이라는 마을이 연금술사의 마법으로 폐허가 됐다는 전설이 있어서 거기에 착안 연금술사를 집필했구요, 순례자는 자신의 순례를 생각하면서 집필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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