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 바이블>을 읽고

in #kr7 years ago

나는 건축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 게다가 딱히 건축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편도 아니다. 그런데 <집짓기 바이블>을 읽는 내내 가슴이 설레는 경험을 했다. 정말 우연한 계기로 읽게 된 책임에도 말이다. 나와 친한 친구 중의 한 명은 현재 건축가로 일을 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건축학교를 졸업하고 전 세계를 누비며 일을 하고 있는 친구가 종종 부러울 때가 많아 건축가라는 직업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던 터에 <집짓기 바이블>이라는 책을 그 친구에게 선물 받게 되었다. 이 책의 25쪽에도 나와있듯, 건축가는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직업은 아니다. 정재식 건축주의 인터뷰 내용처럼, 건축학과는 의대처럼 5년제이고 건축사를 따기 위한 절차도 사법고시 응시보다 더 까다롭다고 들었으나 그럼에도 주변에 건축가란 존재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각광받는 몇 안 되는 직업, 가령 판검사, 의사, 공무원은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거나 돈을 많이 번다는 장점만 빼면 누구라도 대체할 수 있는 일이고, 금방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직업군이라는 게 나의 견해이다. 비록 나는 건축을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고 밝히긴 했지만, 천재적인 건축가들을 보면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판검사, 의사, 공무원들에게 ‘천재적이다’라는 경이로움을 단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 직업에 대한 이야기는 접고 다시 친구 이야기로 돌아가도록 하겠다. 사실 그 친구는 나에게 <집짓기 바이블>을 선물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원래는 자신이 읽으려고 산 책이었는데 그 책을 보는 순간 내 얼굴이 떠올랐다고 했다. 건축에 무심한 것 같으면서도 건축가라는 직업에 대해서 집요하게 물어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가라는 직업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 책을 읽어가기 시작했지만, 책을 읽으며 ‘나만의 집을 짓고 싶다’라는 꿈이 생겼다. 나는 지금까지 아파트에서만 생활을 해 왔다. 텔레비전이나 잡지에서 나오는 멋있고 예쁜 집들을 보면서 딱히 갖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집짓기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해주는 이 책을 읽고 나니 아파트를 벗어나 나만의 공간에서 지내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지게 된 것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집이 문화를 드러내는 척도라고 보고 있는데, 나는 집에 대한 이러한 관점에 충격을 받았다.

그저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집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정말 집이 나의 문화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102쪽에 나타난 집에 대한 관점을 몇 개 살펴보겠다. 먼저 정재식은 집을 지으면 누구나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 쓴다. 집을 짓고 거기서 살아서 생기는 변화가 아니ㄹ 집을 짓는 과정에서 사람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또한 문성광 역시 집을 짓고 그 집에 들어가서 살면 정말 많은 내면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믿는다. 창을 어디에 달고 크기는 어떻고를 떠나, 집짓기는 집 이상의 다른 것들을 가져다준다고 본다.

생각과 행동을 바꿔주기 때문이다. 집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안식처라는 게 문성광의 생각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나만의 집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실용적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내가 갖고 있는 꿈이 허황된 것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도 갖게 되었다.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면 언젠가는 이룰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령 이 책의 77쪽부터 Q&A 코너가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실제로 집을 지을 때 겪게 되는 궁금증들이 정리되어 있고 답변 역시 솔직하게 적혀 있어서 참 좋았다. 가령 ‘주위에서 상가를 짓든, 다세대를 짓든, 단독주택을 짓든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이 첫 번째로 등장하는데, 이는 정말 한국의 상황에 적합한 질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건축가라는 직업은 생소한 것이고, 따라서 건축가의 도움 없이도 건물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본다면 반드시 건축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답변은 다음과 같다.

‘전문성과 신뢰의 문제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허가만을 목적으로 하는 소위 허가방은 땅이 가지는 특성보다는 규모의 일반적인 상황에 맞춰 설계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축물은 땅의 특성을 넘어 동네, 나아가 도시적인 상황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단지 허가를 받아 건물을 짓는 것을 중시하기보다, 지어진 이후 내 건축물이 동네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어떻게 보일지 등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합니다. 건축가들은 이런 층위의 고민을 하는 전문가입니다.’ 무척이나 성실하고 알찬 답변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건축사무소와 설계 계약은 어떻게 맺을까. 이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떠오르게 된다. 다행히도 이 책의 104쪽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상세하게 적혀 있어서 굳이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도 건축사무소와 무난하게 설계 계약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설계 계약 시 주의해야 할 사항을 몇 개 보도록 하겠다. 이 책의 104쪽에 의하면 설계 계약서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은 프로젝트 제목과 개요, 계약자의 확인, 업무의 범위와 일정, 제출 도서, 대가의 산출 및 지급 방법, 설계 변경시 대가의 조정, 계약의 변경과 해지, 저작권 등이다. 그리고 설계 프로세스와 그 일정에 관해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가장 먼저 설계의 규모를 언급한다.

가령 대략 50평 규모의 설계라고 동의하고 진행했는데 막상 실시 설계 단계에서 100평으로 바꾼다면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설계의 규모를 정확하게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정에 대해서도 미리 정해놓는다면 설계 진행이나 허가 등이 늦어질 경우 오해나 분쟁을 방지할 수 있다. 업무의 범위와 제출물도 설정해야 한다. 기본 설계, 실시 설계, 건축 인허가, 감리 등으로 업무의 범위를 나눌 수 있는데, 더 세부적으로는 실시 설계의 범위까지 설정할 수 있다. 설비, 전기, 토목, 통신, 구조 등이 설계에 포함될 수 있고, 특히 인테리어와 조경을 포함하는지 그 범위를 정해야 한다. 더불어 모형이나 투시도 등을 제시할 의무가 있는지도 표기할 수 있다.

물론 건축가는 건축주에게 설계를 이해시키고 공감을 구해야 하니 이런 수단을 표기하지 않아도 일반적으로는 제시하게 마련이지만, 아주 근사한 모형을 만들어 집에 조형물로 두고 기념하고 싶을 때 먼저 요청을 하면 순조롭다고 한다. 집짓기에 대한 실용서 <집짓기 바이블>을 통해 집짓기에 대한 나의 꿈에 한 발짝 더 나아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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