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블라이스의 <긴축> 독후감

in #kr7 years ago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블라이스는 브라운대학 정치학과의 국제정치경제학과 교수이다. 또한 같은 대학 산하 왓슨국제문제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현재의 이력으로만 보면 부유한 집안에서 근심걱정없이 자라난 엘리트인 것 같지만 그는 실제로 스코틀랜드 던디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복지 정책의 수혜를 받으며 자란 인물이다.

그는 이 책의 26쪽에서도 “가계소득이라고 해 봐야 정부로부터 나오던 기초노령연금과 육체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찔끔찔끔 벌어 오는 푼돈이 전부였다. 나는 사회보장제도의 도움을 받아 성장한 이른바 복지 수혜 아동으로 자랐다. 나는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라고 쓴다. 불행했던 자신의 과거를 당당하게 밝히는 그의 모습이 참 좋은 인상으로 남았다. 또한 그의 책, <긴축>에 대해 쏟아진 찬사는 실로 어마어마한데 프린스턴대학 경제학과 폴 크루그먼 교수,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 국제정치경제학 대니 로드릭 교수, 캘리포니아대학 경제학과 및 정치학과 배리 아이컨그린 교수 등이 바로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써주었다. 가령 폴 크루그먼은 긴축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마크 블라이스의 <긴축: 그 위험한 생각의 역사>은 여러 좋은 점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지출을 줄이는 것이 오히려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는 ‘확장적 긴축’이라는 생각의 흥망을 탐색하는 방법이 특히나 탁월하다.”

많은 지식인들의 찬사를 얻은 책이라 신뢰도가 높은 책이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어려운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인문학, 정치학, 경제학 등의 지식이 어느 정도 쌓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다행히 이 책은 관심사에 따라 필요한 부분을 골라서 읽을 수 있도록 쓰여져 있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소개하면서 긴축을 둘러싼 갈등에서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면 서론을 읽으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긴축정책이 강요된 이유와 미국의 악성 주택담보증권 더미가 어째서 유럽 경제를 몽땅 날려 버렸는지에 대해 알고 싶으면 1장과 2장을 보라고 친절하게 안내한다. 긴축이 좋은 생각이라는 관념이 어디서 왔는지 그 지성사적 계보가 궁금하다면 3장과 4장을 보면 된다. 긴축이 왜 위험한 발상인지를 알고 싶다면 1장과 2장에 덧붙여 5장을 읽으면 된다. 왜 이렇게 세상이 엉망진창인지, 왜 당신에게 그 비용이 전가되고 있는지를 한 번에 정리하고 싶다면 책 전체를 읽으면 된다고 설명한다.
사실 이 책을 한 번에 처음부터 읽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책의 두께도 어마어마하고 미국의 명문대학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수가 자신의 눈높이에서 쓴 책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책이 아니기 때문에 독자들이 스스로 공부를 하면서 읽어야한다. 이렇게 수고스러움이 필요한 책이지만, 강력 추천하고 싶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자유주의’, ‘자유주의 경제학’, ‘로크, 흄, 스미스’ 등에서 배우긴 했지만 사실 잘 이해되지 않은 적이 많았다. 하지만 <긴축>을 읽으며 내가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이 술술 이해되는 느낌을 받았고, 왜 경제학에서 철학 공부가 중요한지도 깨닫게 되었다. 대학에서 어설프게 배웠던 지식들이 한 번에 이해되는 기쁨이란 말로 표현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의 경우, 인문학적인 지적 풍토가 취약해서 철학, 국어국문학, 사학 등과 같은 순수 인문학이 경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미국은 최첨단의 실용학문이라고 여겨지는 경제학, 사회과학의 한 분과인 정치학에서도 서양철학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서 <긴축>의 201쪽에는 ‘긴축의 고전적 기원’이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다름아닌 존 로크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들어있다. 저자는 존 로크에 대해서 이렇게 쓴다.

“존 로크는 잉글랜드가 배출한 가장 저명한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잉글랜드 내전기를 살았던 로크는 시민 정부의 올바른 기초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다만 로크의 저술들은 사변적 연구라기보다 당시 영국 귀족 엘리트들로부터 야금야금 권력을 빼앗아 오고 있던 상인 계급을 옹호하는 선전물이었다. 로크는 1688년 명예혁명을 정점으로 하는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는 세력 중 하나였다. 명예혁명은 국왕을 무력화하고, 로크 같은 사람들의 권력을 강화한 사건이었다. 로크는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인 시민들의 권리와 이들을 지배하려는 국왕이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한계를 이론화했을 뿐 아니라 경제 영역에서 혁신적인 인물이었다. 로크는 합법적 지배가 어떻게 성립하는지 사유재산권을 중심으로 논했다.
오늘날의 경제적 자유주의, 시장과 국가의 분리, 자본주의 등은 이 논리 위에서만 성립한다.” 존 로크의 이론이 굉장히 낡은 것 같고, 현대 정치와 경제를 논할 때 왜 그의 이론을 끌어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바로 마지막 문장을 생각하면 된다.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경제의 논리가 다름 아닌 존 로크의 이론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 역시 로크만큼 중요한 인물로 이 책에 소개된다. <긴축> 205쪽에 의하면 로크의 최소주의적 국가관이라는 기초 위에 생각의 층위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사람이 둘 있다.
계몽주의 시대 스코틀랜드의 거물급 지식인인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흄이다. 우선 흄을 보자. 그가 정치경제학에 공헌한 바는 실로 크다. 그는 통화적 경기부양이 단기적으로 경제 활동을 촉진할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거나 실질변수에 효과를 미치지 못한 채 소멸되어 버린다고 생각했다. 이는 그의 논문 <화폐에 관하여>에 잘 나타나 있다. 이는 현대 거시경제학 이론의 골간을 이루는 명제이며, 화폐의 장기 중립성에 관한 이론이라고도 불린다. 뿐만 아니라 흄은 ‘가격-정화-흐름 매커니즘’ 개념을 체계화시켜, 후일 리처드 캉티용의 무역수지 이론이 세밀한 골격을 갖추는 데에도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가격-정화-흐름 매커니즘’은 후일 19세기 금본위제의 기초를 이루게 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긴축>에서 긴축이 우리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무척 불편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성장과 기회를 촉진하자는 명목으로 복지국가를 축소하자는 것은 사회를 파괴하는 선동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미래가 모든 것을 갖춘 소수 집단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하고 싶다고 주장한다. 나 역시 <긴축>의 주장에 동의하며 저자가 우리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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