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식, [토끼의 아리아] - 한국 SF는 역시 곽재식입니다.

in #kr8 years ago (edited)

저는 책을 상당히 많이, 또 빨리 읽는 편입니다. 어릴적부터 책 좀 그만 보라고 혼나가면서도 읽는 재미를 버리지 못하다 보니, 어느 정도 속독 능력도 생긴 편이구요. 하루에 한 권 이상 소설을 읽다보니, 이를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책을 그렇게 많이 읽는데,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냐고 묻기도 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어느 작품을 정말 재밌게 읽고 나면 작가에게 한껏 경도되어서 다른 좋은 작품을 읽기 전까진 마음 속 넘버 원은 가장 최근에 읽은 작가가 되는 편입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물을 때마다 대답이 이래저래 바뀌는 편이죠. 그런데, 질문의 범위를 좀 구체적으로 좁히는 경우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를테면 저에게 한국 SF 작가 중에서 누구의 작품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2010년 이래로 답은 언제나 한결 같습니다. "한국 SF 작가라면 역시 곽재식이죠."

물론 한국 SF 작가 분들 중에서 좋은 작품을 쓰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곽재식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사회의 관료화/형식화를 통렬하게 비꼬는 재주입니다. 판소리인 '수궁가'에서 힌트를 얻어 쓰여진 표제작인 '토끼의 아리아'만 하더라도, 이렇다할 목표 없이 대기업이 탈세를 목적으로 세운 연구소, 외국계 회사로 스카우트 된 연구원을 기업 기밀 누설로 몰아가는 관료, 비열한 재벌 회장에 대한 미디어의 비호, '우리 기업'에 대한 애국주의적 열광 등으로 위기에 빠진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특히 곽재식의 작품에서 많이 등장하는 패턴은 '말만 번드르한 정부 기관 지원금', '무사안일한 공무원의 관료주의', '실제 사업의 진행보다는 서류 작성이 우선되는 형식주의' 속에서 이공계열 주인공들이 고통 받는 이야기들인데, '마션', '인터스텔라' 같은 작품들이 공돌이 주인공들의 개척자적 활약이 빛나는 '미국적 SF'라면, 곽재식의 작품이야말로 공돌이들이 갈려져 나가는 한국 사회 그 자체를 SF로 구현한 '한국적 SF'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하는게 저의 감상입니다. 그래서, '한국 SF'라면 역시 곽재식입니다.

곽재식의 작품은 이런 한국 공돌이들의 고난과 위기를 유머러스한 필치로 펼쳐 냅니다. 물론 고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어떤 경우는 고난 끝에 기이한 성과를 올리기도 하고, 달달한 로맨스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연애에 서툰 공돌이'가 천신만고 끝에 로맨스에 성공하는 스토리는 곽재식이 가장 잘 만들어내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곽재식의 단편집인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는 이런 곽재식 풍의 연애담들을 모아낸 책인데, 좋아하는 여성에게 자전거 데이트를 약속한 후에야 부랴부랴 자전거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공돌이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다룬 '최악의 레이싱'이라던가, 사랑하는 그녀와의 결혼식을 위해 세계의 절반을 돌아 그녀를 만나러 가는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는 읽을 때마다 참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이 드는 명작입니다.

곽재식의 작품은 SF라고 해서 과학기술이 발전한 미래 세계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빅뱅 이론'처럼 이공계인들의 우당탕탕 소동을 보여주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물론 '로봇 복지법 위반'이나 '조용하게 퇴장하기'처럼 미래의 로봇 복지 문제라던가 디스토피아를 앞둔 인류의 선택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묻어나는 단편들도 빛을 발하고 있구요. 비단 SF 뿐 아니라 역사소설, 추리소설, 괴이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왕성하게 펼쳐내고 있으니 취향에 맞는다면 곽재식의 다른 작품들도 꼭 한번 찾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곽재식, [토끼의 아리아] 알라딘 링크 -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9471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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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c8394님 안녕하세요. 겨울이 입니다. @eversloth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는 두근거리고 싶을 때 다시 꺼내 읽으면 좋더라구요. 다른 소설들도 기대가 됩니다. 갈려나가는 한국공돌이라니 눈물이... ㅠ_ㅠ
보팅파워 회복되기 전에 일단 @홍보해
PS. 태그 구성에 변화를 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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