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였어

in AVLE 일상24 day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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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살며 사료를 먹고 자랐던 애완고양이가 야생에 버려진다면 어떻게 될까.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어렵지만 주인에게 버림받았다는 아픔이 더 큰 상처일지도 모른다. 극단 ‘연우무대’가 마련한 가족극 ‘대장만세’는 이런 설정에서 출발하고 있다. 버려진 고양이 아람이가 나약함을 벗고 씩씩하게 성장해 대장이 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성장극’이라는 말에 각자가 상상하는 것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통속적인 교훈을 던져주거나 억지 감동을 강요하는 무덤덤한 이야기를 떠올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성장극’의 탈을 쓴 유치한 아동극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거기다 ‘아동극’이라고 하면 과도한 몸짓과 과장된 말투로 인해 아이들만 재밌어하고 어른들은 지루하다는 선입견도 지배적이다.

그러나 ‘대장만세’는 이 모든 고정관념을 깨며 아동극의 모범을 보여준다. 1997년 초연된 이후 평단의 호평을 받은 것은 물론 지금까지 8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어린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비단 어린 관객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 인생에 대한 깊이있는 사색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한마디로 ‘대장만세’에는 어른들이 자녀들에게 해주고 싶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몰라 주저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에게 손 내밀기, 실패했을 때 울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줄 것 등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70분이라는 공연속에 녹아냈다고 볼 수 있다.

그뿐인가. 철학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장만세’는 쉴 새 없이 웃음을 던져 주다 갑자기 뭉클한 감동의 순간을 만들어주는 힘을 갖고 있다. 미취학 아동에서 초등학생은 물론 성인까지 마음으로 이야기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힘은 오랜 현장 경험을 쌓은 연우무대와 현직 교사가 함께 이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대장만세’는 아이들의 행동과 사고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을 초등학교 선생님인 이응률 작가와 연극무대의 특성을 잘 알고 있는 극단 연우무대의 합작이다. 그 결과 ‘대장만세’는 경쾌하면서도 묵직한 감동을 전하는, 진정한 가족극의 정형을 보여준다.

‘대장만세’는 상처입은 채 버려진 고양이 아람이가 할아버지 집 마당에 오게 되면서, (원작에서는 할머니이나 아시테지 겨울축제 무대에서는 할아버지가 등장했다.) 마당에 살고 있는 똥개인 똘깨, 생쥐 깜찍이의 도움으로 용기를 얻게 되고 새로운 모험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 야생고양이인 날쌘돌이와 별빛이와 경쟁하고 친분을 나누면서 진짜 대장이 되기 위한 도전을 하게 되고, 자신만의 모험을 떠나게 된다.

‘대장만세’에서 가장 주목할 지점은 주인공이 강아지와 고양이, 생쥐라는 점이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애완고양이와 야생고양이로 구분해야한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고 친숙한 동물이 주인공들이다보니 관객들의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지사다. 거기다 이들의 먹이사슬은 수많은 이야기로 만들어졌을만큼 전통적인 소재다. 얽히고 설킨 이 먹이사슬을 토대로 대사가 짜여지면서 익숙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여기에 관객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장치가 있다. 바로 애완고양이인 주인공 아람이다. 고양이지만 고양이의 본능을 모른채 살아온, 또 고양이의 본능을 따르고 싶어하지 않는 이 독특한 주인공이 만들어낸 아이러니한 상황은 극의 웃음과 긴장을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가 된다.

생각해보라. 생쥐를 보고 침을 삼켜야 할 고양이가 오히려 도와달라고 바짝 달라붙어 있는 모습을, 생선을 보고도 무심하고, 고등어는 비린내가 나서 못먹겠다며 개사료가 더 좋다는 고양이를 말이다. 황당한 듯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지극히 당연한 아람이의 말과 행동은 관객들의 배꼽을 책임진다. 그 작은 차이 하나로 만들어 낸 웃음은 사회의 편견을 일격에 무너뜨린다. 이런 아람의 캐릭터는 야생고양이들의 관습을 거부하고, 실명을 해도 친구인 생쥐는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친구를 위해 마당을 떠나 새로운 모험을 하겠다고 선포해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기막힌 설정이 있기 때문에 ‘대장만세’는 아동극 특유의 과장된 연기가 전혀 보이지 않지만 아이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화려한 무대장치나 소품은 물론 과장된 연기마저 없는 상황에서 오롯이 이야기의 힘만으로 70분간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이야기의 힘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동물들의 특징을 잘 살려낸 배우들의 농익은 연기가 이야기를 튼실하게 뒷받쳐주고 있음은 물론이다.

무대도 단조롭다. 몇 개의 블럭이 무대를 구성하는 전부다. 배우들은 이를 이리저리 옮기면서 마당과 숲속을 만들고 각종 상황을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물론 판타지를 자극하는 무대장치도 있다. 고양이들이 달밤에 모여 회의를 하는 달빛집회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단조로운 무대 배경에 동물 인형을 이용한 그림자극과 배우들의 연기가 조화를 이루면서 환상과 현실을 혼동케 만드는 몽환적인 판타지를 선사한다.

버려진 고양이 아람이가 마당에서 만난 동물 친구들과 관계를 통해 스스로 실력을 키우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가는 모습에서, 눈이 안보이는 상황에서도 다른 친구들을 배려해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용기있는 모습에서 어린 관객들은 친구나 가족에 대한 소중함,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배려, 미래를 스스로 찾아가는 용기와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진정한 대장이란 무엇인가 깊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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