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물류센터 일용직 출고

in #coupang3 years ago

적지 않으려 했는데
내가 기억력이 치매 수준이라 기록을 위해 남긴다

쿠팡 시흥1에 나간 지 세 달
어제는 냉장 집품을 했다
냉장 집품은 주로 2층에서 했는데 어제는 1층으로 배정됐다
1층도 2층처럼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는데
앞구역과 뒷구역이 있다
앞구역은 육류와 달걀이 주류고, 뒷구역은 우유가 주류다
뒷구역으로 배정되면 좀 힘들다 우유가 좀 무거워야지

예전에 1층 뒷구역에서 일했던 기억은 우유를 집품한 기억 뿐이었는데
어제 오랜만에 1층 뒷구역으로 배정되어 우유를 열심히 담았다
정말 열심히 담았다
팔이 아프고
손목이 나갈 것 같고
무릎 통증으로 다리를 절면서도
우유를 담고 또 담았다

시계는 거꾸로 세워도 돈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온 지금도 무릎 통증이 가라앉지 않는다
진통제를 먹고 자야겠다

요즘은 진통제를 밥처럼 먹는다

10월 12일
출고 상온 집품

10월 13일
출고 프레시백

10월 14일
출고 냉장 집품

신선센터에도 상온이 있다
상온 집품을 처음 해봤더니,,,
상온엔 주로 과일이나 쌀이 있는데
반 이상이 바나나라고 보면 된다

대부분의 바나나는 개별포장이 매우 잘 돼있는데
델몬트 바나나는 개별포장이 안 돼있다
그래서 바나나를 손으로 들려면 손가락에 엄청난 무리가 오는데
델몬트 바나나를 한 시간 정도 집품하면 손가락에 마비가 온다

이런저런 바나나를 집품하다보니 각 상표별로 차이점이 보였다
델몬트 바나나는 전혀 안 익은 상태다
델몬트 바나나를 제외한 모든 바나나는 바로 먹어도 될 만큼 익은 상태였다
왜 델몬트 바나나는 전혀 안 익은 상태일까?
궁금하다

델몬트 바나나만 개별포장이 안 돼있고
전혀 익지 않았다는 걸 조합하면 뭔가 추리가 가능할 것도 같다
그러니까, 델몬트 바나나는 수입한 상태 그대로 쿠팡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전혀 익지도 않았고 개별포장도 전혀 안 돼있는 거고
다른 바나나는 수입처에서 수입한 후에 개별포장을 한 후에 쿠팡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포장하느라 걸리는 시간에 바나나가 익어버린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물류센터에서 일하다보니, 현장의 목소리가 사무직이나 관리직 귀에 안 들어가는 걸로 느껴진다
다양한 불편함, 다양한 개선점이 보이는데 안 고치기 때문이다.
'이런 불편함 고치면 집품 속도가 더 빨리질 것 같은데'
'이런 문제점을 요렇게 하면 집품 속도가 더 빨라질 것 같은데'
등의 해결방법이 보이는데 개선을 안 한다
내 직업이 개발자라서 그럴까?
내 눈엔 온통 문제점 투성이, 고칠 것 투성이, 개선할 것 투성이다
내 눈에 보이는 것들만 고쳐도 쿠팡은 월 수천억은 아낄 건데 왜 안 고칠까
그 이유는, 공무원 탁상행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과, 사무직이 만날 일이 없으니 고쳐질 게 없다

실제 사례를 예로 들면 이렇다
전전 직장에 다닐 때였다
회사 회식 때, 한 번은 내가 설계한 걸 조립하는 사람들과 한 자리에 앉았다
조립하는 직원들은 나를 처음 봤기 때문에 어느 부서에서 뭐 하느냐고 물었고
난 당신들이 조립하는 거 설계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온갖 문제점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듣고 보니 정말 상상도 못했던 문제점들이었다
조립하는 직원들의 불만만 반영해도 하루에 천 대 조립할 거 하루에 2천 대는 조립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 이래서 회식이 중요한 거구나'
'아~~ 이래서 탁상행정이라는 말이 나오는 거구나'
등 온갖 배움을 얻었고
그 후로는 시간만 나면 생산라인에 가서
생산라인 노동자들과 직접 대화하며 모든 것들을 개선해 나갔다
그렇게 나는 초고속 승진을 했고 승승장구했다

쿠팡 사무직들이 현장직들과 월 1회만이라도 간담회를 한다면
쿠팡은 월 수천억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안 한다
원래 대기업이 그렇다
대기업의 특징이다
'내게 주어진 일만 잘하면 돼'가 대기업의 특징이다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쿠팡에서 일하며 온갖 개선사항이 눈에 보여도 '대기업이 그렇지 뭐'라며 그냥 넘긴다
내 성격이, 고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도 그냥 참는다

내 성격을 잘 아는 거래처 사장이 2주쯤 전에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단단하면 부러져. 유하게 살아!'
15년이나 거래한 거래처라서 나를 너무 잘 아는 사장.
그래서 한 마디 한 마디가 뼈에 와 닿을 수밖에 없었다

유하게 살고 있다
단단하면 부러지니까


시흥1 출고에 출근하면
집품, 포장, 간접
이 세 줄에 서야 한다
좀 더 상세하게 하면
집품, 리빈, 멀티포장, 싱글포장, 간접

집품에 줄을 서면
앞사람부터 그날의 업무를 배정해준다
앞사람부터 냉동을 배정하고, 냉동 배정이 끝나면 냉장을 배정한다. 냉장이 끝나면 상온을 배정한다.
상온 배정도 끝나면 집품에 줄선 사람은 여기저기 팔려다닌다

리빈, 멀티, 싱글은 딱히 설명할 게 없고,
내가 간접에 팔려간 경험만 적어보겠다

집품에 서있다가 토트 수거로 팔려간 적이 있는데,
8시간 동안 토트만 수거했다
손가락과 팔이 떨어질 것 같더라.

간접으로 팔려가면
배치, 워터, 프레시백
이렇게 3가지가 있다. 더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 경험으론 그렇다.

배치는, 토트가 오면 토트 바코드를 찍어서 그 토트에 담긴 상품의 성격을 보고 포장대로 나르는 업무를 한다.
보통은 애초에 토트가 싱글과 멀티가 나뉘어 오기 때문에, 배치는 마감 시간만 확인한다고 보면 된다.
마감이 먼저인 토트부터 포장대로 옮기고, 마감이 뒤인 토트는 잠시 미뤄두면 된다.

워터는 포장사원들이 수월하게 보장하도록 포장자재를 채워주는 일을 한다
신선센터 기준임을 미리 말해둔다
포장자재는 이렇다
드라이아이스, 아이스팩, 오퍼스, 뽁뽁이(에어캡), 박스 3종, 달걀박스 2종 등이다
이 중에 드라이아이스가 가장 무거우나 몸에 무리가 올 정도는 아니다
워터 일은 그다지 많지는 않고 배치 일이 더 많다고 보면 된다

프레시백은, 포장사원들이 프레시백을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프레시백을 라인에 올려주는 일을 한다
시흥1 기준으로 보면
1층은 한 라인에 10명 정도 들어가서 포장하는데,
프레시백 올리는 속도보다 포장 속도가 더 빠르다
그래서 프레시백 올리는 사람은 물 한 모금 마실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다
그런데 2층은 한 라인에 6명이 들어가서 포장하기 때문에
1층에 비해 노동 강도가 반 밖에 안 된다
같은 프레시백 일을 하더라도 2층이 수월하다

내가 아직 안 해본 건
리빈이다
리빈을 배워보고 싶은데 누가 좀 가르쳐줄 사람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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