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블리] #52. 크립토키티와 KittyVerse
1. Cryptokitties
“언제적 크립토키티야?”
라는 질문을 던지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네, 그만큼 블록체인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크립토키티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크립토키티는 지난해 10월에 발표됐습니다. 캐나다의 Axiom Zen이라는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만든 고양이 수집 게임으로, 발표되자마자 246.9255 이더, 당시 한화로 약 1억 3천만원에 달하는 고양이를 판매하며 크립토 스페이스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폭발적인 트랜잭션으로 이더리움 네트워크 전체를 마비시킨 전적도 있었죠. ICO 외에 처음으로 크립토 스페이스에서 유저를 끌어모은 첫 컨텐츠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습니다.
크립토키티의 예상치 못한 성공 덕에 크립토 스페이스에는 많은 일이 생겼습니다. 다소 느긋하게 진행되고 있던 이더리움의 확장성(Scalability) 개선이 커뮤니티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고, 크립토키티를 모방한 수많은 아류가 쏟아져나왔습니다. 한 때의 유행으로 지나갈 것 같았던 크립토키티는 아직도 이더리움 DApp 순위에서 6위에 위치하며 식지 않은 주제임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7/5 기준, https://www.stateofthedapps.com/rankings)
2. KittyVerse
위와 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Axiom Zen은 바로 지난주인 6월 27일, KittyVerse를 런치합니다. KittyVerse는 Nifty License라는 크립토키티만의 오픈소스 라이센스 정책과 함께 크립토키티의 IP와 유저베이스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서드파티앱 생태계를 뜻합니다. 고양이 수집에 멈추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Axiom Zen의 전략이죠. 덕분에 크립토키티는 구매, 교배, 판매의 단순한 모델에서 벗어나 실제로 보유한 고양이를 활용해 다양한 응용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엄밀히 말해 KittyVerse는 Axiom Zen의 작품은 아닙니다. 크립토키티가 성공하면서 자연스럽게 크립토키티를 중심으로 한 서브컬쳐가 생겨났고, 이렇게 생겨난 풍토를 지칭하는 하나의 명칭으로써 KittyVerse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Axiom Zen은 이 흐름을 돕기 위해 Nifty 라이센스를 바탕으로 KittyVerse를 공식화한 것 뿐이지요. 실제로 이번 런칭과는 별개로 이미 십여개 이상의 DApp이 크립토키티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다만, 서드파티 생태계를 공식화함에 따라 잠시 주춤했던 크립토키티의 응용이 보다 활발해지는 데에는 좋은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3. DApps on KittyVerse
그렇다면 KittyVerse에 속하는 DApp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긴 말하기 전에 DApp을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 KittyRace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고양이 경마(경묘?)입니다.
경주에서 이긴 고양이는 쌓아둔 이더를 가져갑니다. 경마와 똑같죠? 승패를 가르는 기준은 아마도 각각의 고양이들이 보유한 유전적 특성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크립토키티 앱에서는 희귀한 고양이일수록 가격이 높았는데, 여기서도 같은 원칙이 적용되는 걸까요?
인터페이스는 단순합니다. 고양이들이 경주를 할 트랙이 있고, 출발점에 고양이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용자는 join을 눌러 게임에 참가하게 되구요. 한 게임당 게임비는 0.005 이더로, 트랜잭션에 필요한 가스비까지 더하면 현재(7월 5일) 시점 기준으로 약 3.3달러 정도가 소모됩니다. 고양이들은 트랙을 총 세 바퀴 돌아 승부를 결정짓고, 이긴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들이 걸어둔 이더를 상금으로 획득합니다. 각 시합마다 쌓이는 상금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가져가는 것이 개발사의 비즈니스 모델 되겠습니다.
- KittyFamily & Crypto Kitty Data
https://www.kitty.family/
키티패밀리는 게임은 아닙니다. 크립토키티를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 도와주는 유틸리티앱입니다. 자신이 보유한, 혹은 관심있는 고양이의 ID를 넣으면 그 고양이의 조상들을 볼 수 있게 해줍니다. 한 화면에서 해당 고양이의 증조부모까지 확인이 가능하고 그렇게 확인된 고양이들의 조상 트리도 역시 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조상 고양이의 유전자로부터 후손 고양이의 숨겨진 형질이 발현되도록 설계된 크립토키티의 특성상 고양이의 혈통은 매우 중요합니다. 키티패밀리를 통해 내 고양이가 앞으로 어떤 자손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겠네요.
https://cryptokittydata.info/
크립토키티데이터는 키티패밀리보다도 한 발 더 나아간 유틸리티 앱입니다. 사용자의 어카운트 주소를 넣으면 보유한 고양이들의 유전자를, 우성과 열성을 구분해 보여줍니다. 크립토키티를 보다 하드하게 즐기는 유저들 가운데서는 고양이의 유전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마치 인간 지놈 지도와 유사한 고양이 유전자 지도를 만드는 이들도 있는데요, 아마도 거기에 필수적인 앱이라고 보여집니다.
이 두 앱은 전송된 데이터의 내역을 누구나 보고 검증할 수 있는 블록체인의 특성을 제대로 활용한 유틸리티앱입니다. 기존 게임에서는 개발사가 데이터베이스를 공개하지 않는 한 사용자가 직접 값을 분석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죠. 앞으로 나오는 크립토 게임들을 대상으로도 이와 같은 방식을 활용하는 유틸리티가 많이 생겨날 것을 알 수 있겠죠.
- KittyHats
https://kittyhats.co/
이번엔 고양이에게 모자를 씌우는 게임입니다. 종이로 하는 옷입히기 게임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사실 모자가 아닌 것이 더 많습니다. 코스튬도 있고 애완동물(이미 고양이의 범주를 넘어섰네요)도 있습니다. 고양이에게 원하는 아이템을 쥐어주려면 키티햇 상점에서 구매를 해야만 합니다.
가장 특이한 점은 크립토키티가 이미 Crypto collectibles에 속하는 앱인데, 여기에 또 Crypto collectibles를 모으는 컨텐츠를 붙였다는 점입니다. 그런데도 놀랍게, 구매욕이 생깁니다. 제가 가진 고양이들에게 KittyHats에서 제공하는 아이템들이 너무나 잘 어울리거든요. 사고 싶네요.
4. ERC721
이처럼 크립토키티의 유저베이스를 다양한 DApp에서 활용할 수 있게 된 기술적 배경은 무엇일까요? 크립토키티를 구현하는 바탕이 된, ERC721 표준에 그 답이 있습니다.
ERC721은 Non-Fungible Token Standard라는 이름으로 Axiom Zen에서 제안한 표준입니다. ERC20 토큰과 다르게 하나의 토큰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단위를 표현하도록 고안했죠. Axiom Zen은 스스로 이러한 표준을 제시하면서 크립토키티를 그 첫 번째 응용으로 출시한 것입니다.
이 표준에서 토큰의 소유권은 메인 토큰 컨트랙트의 storage에 숫자값으로 저장이 됩니다. 또한, 해당 토큰을 교환하거나 조회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도 컨트랙트에 구현을 하게 되구요. 따라서 토큰의 고유한 ID, 크립토키티의 경우에는 고양이 ID만 알면 누구나 해당 토큰의 전송내역, 고유정보 등을 조회할 수 있게 되어있죠. 물론 공개를 원하지 않는 정보에 대해서는 개발자가 숨길 수도 있습니다. 크립토키티에서는 고양이의 유전정보는 공개해놓은 데 반해 해당 유전자가 어떤 원리로 후대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감추어 두었습니다.
KittyVerse의 DApp들은 이처럼 자유롭게 공개된 정보를 가공해 자신들만의 프로그램을 설계한 것이지요. 기존 게임에서 서드파티앱을 만들기 위해 약간의 해킹을 한다거나, 복잡한 절차를 거쳐 개발사의 허락을 맡아야 했던 것과 조금 다른 양상이죠? 이런 부분이 바로 크립토키티와 그 KittyVerse 친구들이 보여준 블록체인의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생각되네요.
5. 널리 공유 할수록 저작권자에게 돌아오는 이익
기술적인 면 외에도 흥미로웠던 부분은 오픈소스를 통해 저작권자에게 직접 수익이 돌아오는 경제 구조입니다. 오픈소스 라이센스, 1차 저작물을 활용한 2차 컨텐츠 생태계 등등은 인터넷에서도 흔한 사례이고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파생이 원작자에게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는 경우가 흔치 않아, 저작권 소송이 일어나거나 때로는 원작자가 파생 수익을 포기하는 라이센스를 적용하곤 했습니다. 수익을 분배해줄 마땅한 중계자가 없었던 것이죠.
허나 크립토키티와 KittyVerse는 재생산 될수록 원저작자에게 돌아가는 보상이 큽니다. 어찌되었든 KittyVerse의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Axiom Zen이 처음 배포한 크립토키티 게임에서 고양이를 마련해야하고 해당 트랜잭션은 Axiom Zen에게 수익으로 돌아가기 때문이죠. "정보의 완전한 공개와 분배의 공정함”이라니, 마술같지 않나요? Axiom Zen이 자신있게 KittyVerse를 런칭한 데에는 생태계의 성장이란 측면 외에도 이러한 경제적 판단이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6. 그리고 DApp의 미래
크립토키티를 알고 계신 분들이나 플레이를 해 본 사람들 가운데서도 KittyVerse DApp을 접한 분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직은 블록체인 게임을 진정한 재미보다는 호기심으로 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이상적인 수익 분배 역시 아직은 ‘순수한 선의’를 가진 플레이어가 더 많기 때문에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KittyVerse는 그 자체로 크립토 스페이스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다양한 시도라는 면에서요. 크립토키티라는 성공적인 IP를 바탕으로 작은 컨텐츠만 첨가해도 그럴싸한 하나의 DApp을 만들 수 있어 개발자 입장에서는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단순한 모델이라도 DApp이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짧은 시간 내에 선보였습니다. 이러한 시도를 바탕으로 보다 정교한 DApp이 나오겠죠? 머지 않아 블록체인 위에서 <레디플레이어원>을 플레이하고 크립토키티 코스튬을 입을 수 있길 기대하고 응원해봅니다.
케블리 2기 최승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