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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성전청소 #1. 마녀의 나무

in #kr6 years ago (edited)

중세에는 나름대로 민속적인 삶의 일부로 생각되었던 주술적인 행위들에 대한 이미지가 계속 되어 근세에 '이론화'와 함께 흑색 선전의 정점을 맞았는데, '이론화' 작업의 대표적인 예시가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이죠.

하지만 이단 재판과 마녀 재판은 구분해야 하죠. 이단 재판과 화형은 원래부터 만연했고,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서도 많이 사용되었던 반면, 민속 요법으로 사람을 고치려다 실패한다던가 주술을 한다던가 하는 민속적인 '마녀'의 특징은 보통 벌 받고 풀려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근대 초 이전까진 말이죠. 무려 900년도에는 마녀에 의한 마술 등은 허구라고 교회에서 발표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단은 다른 문제였죠. 이단의 자격(?)이 있으려면 대체적으로 학식이 기본적으로 있었어야 하고, 악마와 계약하는 전형적인 인간상은 파우스트적인 인간이지, 못 배운 사람들이 아니었죠. 마녀가 원래는 그리 심각한 범죄로 생각되지 않았던 것도 전형적인 마녀상이 초라한 일반인이었기 때문이고...이런 '초라한 일반인=마녀'라는 이미지는 성서가 그 출처라기보다는, 민속요법 치료사라거나 산파, 약초 채집꾼 등 현실적인 인물들에서 온 이미지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물론 성서에도 노파 같은 주술사가 나오긴 하죠.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에는 중세부터 있었던 그런 '고대 종교/이교'의 잔재 이미지들이 죄다 담겨 있죠. 가령 '악한 눈(the evil eye)'라던가...이 표현은 현대 영어에도 "째려보는 눈"으로 그 의미가 살아 있죠. 눈으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저주를 가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더 중요하게는, 말레우스~에는 저자의 매우 강한 사견들이 담겨 있어요. 여성혐오라고 해도 무방한 사상으로, 특히 여성의 성적 방종에 매우 집착하는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말레우스 속의 이런 모든 이미지들 중 완전히 새로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죠. 제 본문에서처럼 이미 고대부터 존재했고 중세에까지도 매우 실질적으로 각인되었던 이미지들이니까...

그런데 말레우스~는 초기에, 이단 심문을 맡아 하던 '종교 재판부'에 의해서는 무시 당합니다. 심지어 출판 후 몇 년 되지 않아 아예 공식적으로 거부도 해요. 즉 말레우스~를 가장 많이 활용한 것은 세속 법정들이었습니다. 법정마다 구비해놓았다고도 하죠. 종교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자는 교황을 직접 공략합니다. 그리고 승인을 받아내죠. 이때만 해도 교회의 체계적인 마녀 재판 절차(고문 등)는 서 있지 못했다고 봐야 하겠죠. 물론 금방 실행할 수는 있었어요. 이미 이단 재판의 경험은 풍부했으니까요.

곧이어 종교 개혁과 함께, '마녀'는 '이단'만큼이나 심각한 죄목이 되어버리죠. 구교 신교 할 것 없이 다 '마녀론'을 인정했으니...그래서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은...종교 권위자들이 처음엔 비웃었던 그 시작에 비해서는 엄청난 위상을 갖게 된 것이죠.

어쨌든 출간 당시에 종교재판부로부터 무시 당했던 저자 크레이머가 갑자기 당시에 회의적이었던 모든 종교 권위자들의 의견을 뒤집고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교회를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갑자기 이루어진 일이죠. 말했다시피 교황이 인정하기 전까지는 교회에서 거부를 했고, 심지어 저자의 증상이 '치매'라고까지 했었니까요.

결국 마녀사냥의 가장 근본적인 배경은 '원래부터 있었던 민속적 요소들'에 대해 모두가 알고 있었고 (물론 중세에는 크게 심각하게 생각 안했으나) 부정적인 이미지가 이미 오래도록 형성되어 있었다는 점이라고 봅니다. 그게 재료이고, 재료 없이 만들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요.

근대 초에는 이미 있었던 것에 혐오의 당위성을 갖다 붙인 것이죠. 세속 권위자 입장에서는 유아 살해를 하거나 남의 자선으로 살아가야 하는 "잉여 인간"을 처벌할 필요가 있었고, 교회는 종교 개혁을 거치면서 전형적인 이단자 외에도 일반인인 마녀를 처별하기 위해, 수 세기 전에 이미 부정했던 마녀 개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죠. 그래서 근대의 중앙집권화/이성의 시대와 교회 둘 다 마녀사냥에 기여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딱 그 조건들이 맞물려서, 말레우스~는 유용한 책으로 선택 되었죠. 어떻게 보면 상당히 우연적인 과정을 통해서요.

이렇게 보면, 결국 말레우스 말레피카룸이 너무나 설득력이 있고 논리적이어서, 또는 독창적이어서 마녀사냥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옛 영어지만 읽을만해서 읽어봤는데, 거의 여성 이야기더군요. 실제로 저자가 치매였는지도 모릅니다. 단, 마침 딱 그런 교과서가 필요할 때 그 책이 그 자리에 있었고, 그런 책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유용한 내용이었다...고 봐야겠죠.

후대의 역사학자들, 특히 여성학적 관점을 가진 학자들이 보기에 말레우스~가 가장 여성혐오가 짙은 책이라, 그 책에 실제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한 점도 감안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번역이 된 유일한 책이기도 했고요.

암튼 말레우스~도, 본문에서 언급하지 않은 내용이지만 흥미롭죠. 마녀사냥 이야기는 아마 언제가 될진 몰라도 또 등장은 할 것입니다. 너무 흥미로운 사건들도 많고 해서요. 특별히 잔다르크에 관심이 크진 않으나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으니, 기억하겠습니다. :)

p.s. 인간이 시행착오를 거쳐왔으나, 그걸 다 극복하고 더 나은 인간이 되었거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해피한 시나리오는 개인적으로는 믿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여전히 같아요. 다른 방법으로 정적의 악마화와 인격 말살을 쉽게 하고 있죠. 수레바퀴는 굴려야 하니, 쉽게 행해지는 고문과 처형이 줄어들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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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크 제이미. 이렇게 댓글을 길게 쓰면 어떡하니? ㅋ
  2. 나는 마녀재판의 정식용어가 이단재판으로 알고 있었는데, 다른거구나. 제대로 알려줘서 고마워.
  3. "말레우스~"에 대한 상세한 설명 까지. ㅋ 이 책이 원래 듣보잡 취급받던 졸렬한 책 정도로만 알고 있었어. ㅋ 법적으로 주술사들을 압박하기 위해 명문화된 기준이 필요했던 상황과 잘 맞아떨어졌구나. 이 책이 마녀사냥 교본으로 대두된 우스꽝스런 배경은 이후 끔찍한 상황과 대비되며, 마녀사냥이 얼마나 허황된 사상에서 비롯된 비극인지 잘 보여주는 것 같군. ^^
  4. 그렇게 보면, 내가 이 책을 "원인"이라고 말한 건 과도한 표현같아. ㅋㅋ 나는 인간의 왜곡된 신념과 폭력성이 법적 당위성을 부여받았던 역사적 비극에 관심이 많지. 행정 시스템은 비극을 양산하는 공장이 되버리잖아. 한국에도 그런 문제는 많았던 것 같군. 그냥 마녀사냥의 그런 측면을 말하고 싶었어. ^^
  5. 그리고, 진보에 대한 생각은 다크 제이미와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겠군. 나는 스티븐 핑거의 의견에 공감하거든. 어쨌거나 세상의 폭력은 줄었고 보다 살만한 세상이 되었다고 할까. 인간 내면의 폭력성은 변함없이 계승되고 있지만, 과거의 비극을 토대로 자기 검열과 규제로 도덕적 진보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꼰대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난 법치주의 신봉자지. ㅋㅋㅋ
  6. 잔다르크 누나는, 다크 제이미 정도되면 언젠가 제대로 대면하게 될 인물이 아닐까. 자연스럽게 만나길 바랄께. by 카스트라다무스.
  7. 성전청소 시리즈에 애착이 생기는 중이야. 깨알문학에서 성전청소로 옮겨탈까봐.
  8. 굿나잇. 고양이들에게 안부를.

쓰다보니 언젠가 혹시 포스팅에 써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ㅋ

바바야가...

바바야가 뭐냐구

바바야가가 중요한게 아냐

그럼 뭐시중헌디! 뭐시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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