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다스리는 법과 글쓰기steemCreated with Sketch.

in #kr6 years ago (edited)

블로그와 달리 스팀잇에 글을 올릴때 내 글을 읽는분들에게 다소 죄송한 느낌이 든다. 스팀잇에 올리는 글들은 대부분 유익한 정보가 담겨있거나, 한번글을 올리는 순간 모든 스팀유저들에게 노출되는 까닭에 글을 정성스레 다듬고 다듬어야할 수도 있겟다.

물론 정성스레 쓰기는 하지만 죄송하게도 그렇게 다듬고 다듬을 마음은 없다. 대게 쓰고싶은 막연한 주제만 가지고 시작하기에 쓰기전에는 글이 어떻게 전개될지 어떻게 끝날지 모르고 시작하는 부분이 대부분이다. 이런글을 사적인 장소가 아니라 다소 '공적'인 곳에 올리게 되어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을드리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글을 써보는 이유는 글을 쓰는 이유가 꼭 '정보를 제공' -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은 남을 위해서 라고 볼수 있다 - 하는 목적이 아닌 '자신을 위한 글을 써보라' 라는 것이다. 믿기지는 않겟지만 글쓰기의 기능 중 하나는 '치유'에 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말하건데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함에 있어서 글쓰기 보다 좋은 약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도 난 나를 위한 끄적임을 해본다.

오늘 얘기하고 싶은 주제는 '분노 혹은 억울함'이다.

몇일 전에 뉴스기사를 보았다. 선진국에서는 아이들에게 '분노'를 다스리는 법을 가르친다라는 내용이었다. 돌이켜 보니 나도 어릴적에 청소년기에도 '분노'란 감정말고도 '감정' 자체를 다스리는 법을 배운적이 없었다. 때문에 질풍노도의 시기와 혈기왕성한 모두 '본노'할 일이 많았다. 나 자신에 대한 분노와 때로는 억울한 일이 발생했을때는 정말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실수도 많이 했다. 차차 성장하고 철들기 시작하며 나 자신에 대해 화가나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고 내 스스로 초래한 일을 잘 극복하는 법을 깨닫게 되었던거 같다. 하지만 문제는 '억울한' 상황이었다.

나는 내 실수를 잘 인정한다. 상대의 나이 성별 모든것을 불문하고 내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한다. (한 가지 예외대상이 있다면 부모님이다. 아직은 철이 덜 들었나 보다) 반면 억울한 일에 대해서는,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닌 경우에는 정말 죽었다 깨어나도 인정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든 끝장을 봐야하는, 어떻게 해서라도 상대에게 '엿'을 먹여야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이것도 뜻대로 대랴.. 나이가 들며 억울함에 대한 나의 분노는 줄어들지 않지만 참아야하는 이유는 더 많이 생긴다. 그리고 몇일전에도 이런일이 발생했다.

회사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그날 밤은 너무나 분노하여 밤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집에서 침대에 누워 고함을 지르고 싶던 나를 가까스로 부여잡고 참았다. 그렇게 '무사히?' 아무일 없이 3일이 지났다. 그나마 나이가 들며 뼈저리게 깨달은 한가지는 감정의 기복이 요동을 칠때 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었다.

거의 3일 내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하는가 보다 어떻게 해야 상대방이 그런 행동을 한것을 뼈져리게 후회하게 할까 라는 복수심에 불탓다. 이런말이 적합할까? 정말 나 스스로 타버리는 줄 알았다. 이런 상황에 대하여 사람이 겪게되는 감정의 사이클이 있다. 분노-좌절-슬픔? 분노-슬픔-좌절? 뭐 이런 내용의 것이었던거 같다. 오늘저녁이 되어서야 분노의 단계는 지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몇일 가고 싶지 않았던 운동도 가야겟다는 생각이 들었고 추웠지만 좀 걷고 싶다는 마음도 들어 30분간 퇴근길을 걸었던거 같다.

무엇이 정리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리가 되었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상대방에 대한 복수심보다 이제 어떻게 해야 상황을 잘 극복할 수 있을까? 라는 점으로 마음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니 상대방이 뼈저린 후회없이 상황이 종료되는 것도 다소 마음에 안든다. 어쨋든 최선이 어떤것인지 조금 더 숙고하고 나 자신과 이야기를 더 해봐야할 거 같다.

나 같은 사람을 일컬어 '진보적인 뇌'를 가졌다고 한다. 정치성향에 대한 뇌과학자가 발견했다고 한다. 맞다 내 정치성향은 진보에 가깝고 이런 부류의 특징이 억울한 상황에 반응하는 좌?측 편도체가 많이 발달했다고 한다. 다르게 해석하면 태어날때 부터 억울함을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족속인데 분노를 다스리는 법을 못배웠으니 참 커서도 고생할만 하다.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난 겨울을 좋아한다. 왜냐고? 세상에 열받는 일이 많은 만큼, 정말 몸에 열도 참 많다. 이번주에 있었던 일이 여름에 일어났다면 정말 스스로 발화하지 않았을까라는 상상도 한다. 때문에 난 칼바람이 부는추운 겨울 걷기를 좋아한다. 칼바람이 부는 몸에 힘을 빼고 크게 숨을 들이쉬면 차가운 공기가 폐를 얼리는 듯한 느낌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각이 아주 또렸해진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몇일간의 추위는 견디기 힘든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늘에서 와이프의 기도를 들어준 것일까? 타버릴 듯한 나의 분노를 잠재우기에 충분한 추위였던거 같다.

그렇다면 억울함은 왜 발생할까? 억울함에 대해서 검색해보니 일본인 집필한 한권의 책이 나온다. 내용인 즉, 조직생활에서 억울함 상황이 발생하면 조직의 성격을 이해하고 배우라고 권하다. 그렇게 좋게 들리지는 않는 대목이다. 억울함은 억울한대로 참고 조직의 혹은 상사의 생리에 맞추라는 것인가? 그렇다고 억울함이 해소되는가? 억울함을 피하도록 조직의 생리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킨다면 억울한 일이 안생기는가? 우리에게 필요한건 '억울함'을 피하거나 예방하도록 자신의 방식을 바꾸는 것 보다 '억울함'이란 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일지도 모른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억울함이란 인관관계의 역학에서 나오며 다시 말하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인간의 탐욕과 욕심, 예측불허한 감정, 복잡계가 얽혀있는 세상에서 '블록체인'원장 처럼 모든게 깔금하고 공평할 것이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버리는게 낮다. 인생이 예측불허의 연속인만큼 억울한 일도 있겟지만 예측하지못한 좋은일이 생길수 있는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생각해봐라, 인생의 모든 측면이 공평하고 예측가능한 결정론적 세계라면 얼마나 심심하겟는가. 억울함 이란 이 울퉁불투한 인생의 길에서 다소 극단적인지점에 해당하지만 반대로 좋은 일을 발생할 일도 그만큼 있을 것이다. 억울함을 억울함 자체에 초점을 두기보다 인생의 굴곡, 그로인한 인생의 묘미를 깨닫는 계기로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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