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문제의 행방과 황궁의 화재 화상흉터치료
명 혜종 건문제(明惠宗 建文帝, 1377년: 홍무(洪武) 10년 12월 5일 ~ 1402년(?))은 명나라의 제2대 황제로 명 태조 홍무제 주원장(朱元璋)의 장손이자 의문황태자(懿文皇太子) 주표(朱標)의 아들이다. 휘는 윤문(允炆)이다. 역대 명나라 황제 중 숭정제(崇禎帝)와 함께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황제로 숙부인 연왕 영락제에게 황위를 빼앗겼다. 조선의 단종과 비슷한 부분이 많은 인물이기도 하다.
1398년에 할아버지인 주원장이 71세를 일기로 붕어하자, 주윤문이 22세로 명나라의 제2대 황제로 오르니 이가 혜종 건문양황제(惠宗 建文讓皇帝)이다. 건문제는 제일 먼저 할아버지 주원장의 유지에 따라 숙부들에게 남경으로 문상을 오지 말라 하였다. 또한 너무나 커져있던 숙부들의 세력을 끊으려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왕 주체를 필두로 한 번왕, 즉 건문제의 숙부들과 사촌들은 이에 반발하며 주체를 중심으로 몰래 연락을 주고받으며 정부에 대항할 방책을 세우고 있었다. 명 조정에서는 이에 대해 고심한 끝에, 세가 약한 번왕들을 수도인 남경으로 한 명씩 은밀히 불러들여 체포한 후, 유배를 보내거나 죽여 버렸다. 유약했던 건문제는 숙부들을 핍박한다고 손가락질을 받을까 봐 적극적으로 찬동하지는 않았다.[2] 그러나 방효유를 비롯한 여러 근황파 대신들이 간곡히 주청한 결과, 지방 번왕들의 영지로 첩자와 자객들이 파견되었으며, 그들의 언동을 비밀리에 감시하였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연왕 주체는 건문 1년인 1399년에 반란을 일으키니 이것이 바로 '정난의 변'(靖難之變)이다.
건문제는 신료들에게 주체를 막으라고 지시하였으나 관군은 북방에서 잔뼈가 굵은 주체군에게 계속 지고 있었다. 사실은, 건문제가 크게 승리하여 연왕을 거의 사로잡을 뻔했지만, "숙부님의 생명까지 위협해서는 안 된다. 지나치게 몰아붙이지 마라"라며 제동을 걸었다.[3] 반면, 연왕은 주변 번왕들을 끌어들이면서까지 필사적으로 승리만을 위해 싸웠다. 건문제는 이번 사태가 그리 심각하지 않다하고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번왕들은 주체의 편에 서거나 중립이 되어 있었고, 조정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주체는 무려 3년간이나 이 반란을 끌었는데, 그 이유는 번왕들과 장군들의 지지를 얻기 위함이었고 병기와 군마를 모집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건문제는 빨리 대책을 세워야 했으나, 관군이 계속해서 패전하는 바람에 물자 등이 바닥났기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1402년 7월, 연왕 주체는 결국 수도 남경성을 포위, 함락시킨다. 건문제는 남경의 궁전에 불을 지르라 명령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의 건문제의 행적은 전혀 알 길이 없다. 얼마 뒤, 연왕 주체는 황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명나라의 제3대 황제인 영락제(永樂帝)이다.
건문제의 최후설은 여러가지로 나뉘어 있다. 남경의 궁전에 불을 질렀을 때, 그 불에 타 죽었다는 설과, 남경을 빠져나와 양자강에 투신했다는 설, 도사가 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설은 승려가 되어 중국 곳곳을 유람하며 다녔으나, 정통 5년인 1440년, 영락제의 증손자인 정통제(正統帝) 때에 이르러 신분이 알려져 북경에서 살다가 1445년에 생을 마쳤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일설에 의하면 영락제가 대대적으로 추진한 정화의 남해 대원정의 목적도 건문제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1402년 6월 12일, 홍무제의 4남 연왕 주체가 대군을 이끌고 남경을 공격해 궁궐 안으로 들어갔을 때 황궁에 화재가 일어났다. 주체는 급히 병사들에게 명해 불을 껐지만 황궁이 거의 소실되고 재만 남은 후였다. 황궁 안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건문제를 발견할 수 없었다. 주체는 성문과 궁문을 봉쇄하고 살아 있다면 생포하고 죽었다면 반드시 시신ㅇ르 찾아내라고 명령했다.
건문제의 행방과 관련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졌다.
영락제 때 편찬된 명실록에는 건문제가 불에 타 죽었다고 기록되었고, 청나라 때 편찬된 명사에서도 명실록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실었다. 사실 명실록에 그렇게 기록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명확하다. 건문제를 잊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그가 다시 나타나 재기하리라는 기대를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명사는 이 기록을 그대로 옮겨 실었지만 다른 부분에는 이 내용과 모순되는 점이 발견된다. 명사 공민제본기에서는 “도성이 함락되고 황궁이 불길에 휩싸였는데 황제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고 여왕은 잿더미 속에서 시신을 찾아 8일후에 장례를 지냈다.”라고 기록한다. 이미 불에 타 죽었다면 왜 어디로 갔는지 알수 없다고 했으며 또 왜 시신을 찾고서도 8일이나 지난 다음에 장례를 지냈을까. 잿더미 속에서 찾았다는 시신이 정말 건문제였을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황제들의 숨겨진 중국사, 장위싱 지음, 허유영 옮김, 이가출판사. 페이지 109-110
건문제가 불에 타 죽었다고 하는데 황궁이 불타니 결국 재만 남아서 시신도 못찾고 달아났는지 살아났는지 의문이 남는다. 영락제 정화의 배를 타는 해외 원정도 건문제 행방을 찾기 위해서라는 소문도 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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