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를 당한 집의 구휼과 자향미한의원 화상흉터치료

in #kr9 years ago

화재를 당한 집의 구휼과 자향미한의원 화상흉터치료

포도청에서 체포한 ‘수상한 놈’이란 당시 조선 천주교회의 수장이었던 프랑스 선교사 시메옹 베르뇌[Siméon François Berneux, 1814~1866, 한국식 이름은 장경일(張敬一)] 주교였다. 포도청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냥 오다가다 우연히 수상한 사람을 발견하고 체포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열흘 전부터 포졸들이 베르뇌 주교의 집 주위를 치밀하게 조사했으며, 언제쯤 덮쳐서 주교를 붙잡을지도 미리 정해놓았던 것 같다. 포도청에서 일차로 조사를 받고 다시 의금부로 압송되어 심문을 받은 베르뇌 주교는 심문관이 죽이지 않고 석방하여 본국으로 돌려보내겠다고 말하자 이렇게 대답했다.
이 나라에 머무른 지 이미 10여 년이 지났고, 이 나라 말을 배워 익혔습니다. 천주교를 자못 널리 전하여 교우들도 많아 이미 이 땅에서 편안히 사는 즐거움을 누립니다. 참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습니다. 정말로 만약 죽이지 않고 그대로 살게 한다면 큰 다행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록 죽더라도 돌아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 『추안급국안』 29, 「죄인 종삼 봉주 등 국안」, 동치 5년 정월 19일
    도대체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 왜 머나먼 이방의 땅에까지 왔던 것일까? 죽이지 않고 자기 나라로 돌려보내겠다고 해도, 싫다면서 죽어도 이 나라를 떠나지 않겠다던 사람들. 그들 가운데에는 무려 20년 동안이나 조선 땅에서 조선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천주교를 전한 선교사도 있었다. 가까운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 사람도 함부로 들어와서 사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던 19세기 조선에 프랑스 천주교 선교사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낯설다 못해 기이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상인이나 여행가, 군인, 외교관처럼 조선을 잠깐 다녀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터를 잡고 살다가 죽을 생각으로 왔다니 더욱 그러하다. 이 사람들의 행적을 더듬으면서 개항 이전 조선 사회를 샅샅이 훑고 다니던 낯선 시선의 정체를 파헤쳐보자.

유럽의 이기주의에 경각심을 준 조선의 가족애

한편 선교사들은 보통의 유럽인들이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보기도 했다. 서양의 상인이나 탐험가, 군인들은 조선에 대해 유럽에서 간행된 책에 실려 있는 내용만 알고 있거나, 잠시 조선을 들러서 겉으로 보이는 것만 구경한 사람들이었다. 이에 비해 선교사들의 처지는 사뭇 달랐다. 길게는 20년 넘게 조선에서 살면서 별별 광경을 다 목격했던 것이다. 그래서 조선 사람의 생활에 관한 것도 무척 잘 알고 있었고, 또 조선에서 벌어지는 정치적인 일이나 사회적인 일들도 비교적 소상하게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잠깐 조선을 다녀간 서양 사람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상세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었다.
선교사들이 인상 깊게 보았던 조선의 모습에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 다블뤼(1818~1866) 주교의 기록을 읽어보면 선교사들이 사랑한 조선 사람들의 생활이 잘 나타나 있다. 몇 가지만 추려서 이야기해보자. 먼저 그는 조선 사람들이 무척 따뜻한 가족애를 지녔다고 적었다.
조선 사람들은 자기 아이들을 끔찍이 생각하며, 너무나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에서는 딸이든 아들이든 어떤 자식도 내버리지 않습니다. 대기근이 들 경우에 어떤 부모들은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여 자식을 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약간이나마 여유가 생기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들을 다시 데려오려고 합니다. 유럽에 비할 때 조선 사람들은 아이가 많은 것을 덜 짐스럽게 여깁니다. 그리고 자연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조선 사람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솔직하게 받아들입니다. 가난하다고 자녀들을 내버리는 유럽 사람들은 창피해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다블뤼 주교는 시골이나 작은 도시의 마을에서 마주친 조선 사람들에게서 가족이나 친척들과 매우 평화롭게 어울려 사는 모습을 발견하고 감동하곤 했다.

우리가 볼 때 조선 사람들 사이에서 친척 관계는 솔직하며 형제애가 넘칩니다. 자주 서로를 찾고 또 만나면 기쁨과 행복으로 대합니다. 이것이 바로 가족이지요. 심지어 가족의 친구나 아버지의 친구도 동등하게 대합니다. 자주 서로를 찾아가 보고, 상대방의 주변 형편을 보살펴서 쌀쌀하게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조선 사람들은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여깁니다. 유럽 사람들의 차갑고 부자연스러운 풍속과 비교하면 얼마나 다른지요!
다블뤼 주교는 또한 조선 사람들이 이웃끼리 서로 돕는 착한 마음씨를 지녔다고 편지에 적었다.

조선 사람들은 자선 행위를 정말 소중하게 여기고 실천합니다. 적어도 식사 때 먹을 것을 달라면 거절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일부러 밥을 다시 하기도 합니다. 들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식사하다가 가난한 나그네가 지나가면 자기 밥을 나누어줍니다. 잔치가 벌어지면 언제나 이웃 사람들을 초대하여 형제처럼 모든 것을 나눕니다. 없는 사람과 나누는 것, 이것이 바로 조선 사람들이 가진 덕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심지어 조선 사람들의 공동체 생활에 무척 감동했고, 차갑게 메말라버린 유럽 사람들도 조선 사람들을 본받아야 한다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조선 사람들에게 서로 돕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우리는 여러 번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천주교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형제애를 실천하는 것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또 그만큼 우리 유럽 사람들이 지닌 근대적인 이기주의에 대해서 증오와 가증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이웃집에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있을 때에 마치 자기 일처럼 가서 도와줍니다. 화재를 당한 집이 있으면 이웃들이 각자 조그마한 것이라고 조금씩 가져다주고, 또 집을 다시 지을 수 있도록 공짜로 일을 해줍니다.

다블뤼 주교 외에도 많은 프랑스 선교사가 조선의 공동체 문화를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유럽인으로서의 자의식을 약간 유보하는 듯한 모습마저 보인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들은 오랫동안 조선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서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같은 모양의 집에서 생활했다. 그러다보니 조선 사람들의 마음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또 겉으로 보면 알 수 없는 내적인 맥락도 잘 파악하고 있었던 듯하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남의 신발을 신고 1킬로미터를 걸어보아야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개항 이전 조선에서 프랑스 선교사들이 살았던 모습도 이와 비슷하다.

규장각 교양총서 6 세상 사람의 조선여행,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엮음 김수진 책임기획, 글항아리, 페이지 178, 199-203
Klimt Moving Water, 1898,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jpg
화재를 당한 집이 있으면 이웃들이 각자 조그마한 것이라고 가져다 준다고 했다. 그만큼 화재의 물질적 피해가 큰 편인데 인체에 불이 붙으면 화상으로 또한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가져다준다.
특히 화상은 그 이후에 화상흉터란 악순환의 싸이클을 그릴수 있는데 강남 02-3482-9975 자향미한의원에서는 화상흉터침인 BT침을 사용하여 화상흉터를 제거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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