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투기 모란꽃과 튤립 버블과 비트코인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차이점 나열

in #kr8 years ago

최초의 투기, 모란꽃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꽃을 사다(買花)’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장안의 봄이 저물려고 하니(帝城春欲暮)
시끌벅적 마차들이 다닌다(喧喧車馬度)
모두들 모란의 계절이 왔다며(共道牡丹時)
줄지어 꽃을 사러간다(相隨買花去)
귀천 따라 일정한 값이 없으니(貴賤無常價)
낸 돈만큼 꽃송이를 보게 될 터(酬直看花數)
....
집집마다 따라들 하니 풍속이 되어(家家習爲俗)
사람마다 정신없이 열중해 깨닫지 못한다.(人人迷不悟)
어느 늙은 시골농부가(有一田舍翁)
우연히 꽃 파는 곳에 왔다가(偶來買花處)
고개 떨구고 홀로 길게 탄식한다(低頭獨長歎)
그 한숨을 알아채는 이 아무도 없다(此歎無人喩)
한포기 짙은 색 모란꽃이(一叢深色花)
중농 열 집의 세금이로다.”(十戶中人賦)
목단꽃.jpg
시가 묘사하는 것처럼 전성기 당나라 장안에선 오늘날 닷컴 열풍, 부동산 광풍, 펀드 열풍에 버금가는 모란 광풍이 있었다.
모란은 꽃으로 정원과 사원, 각종 연못과 공공기관을 장식하길 좋아했던 당나라 사람들이 최고로 쳤던 꽃이다. 당대의 시인 유우석(劉禹錫)은 “연못의 연꽃은 순수하긴 하지만 모란에 비해선 아취가 적다”며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인 모란이 만개할 때 장안 전체가 들뜰 수밖에 없다”고 흥얼거렸다.
모란꽃에 대한 애착은 사실 수나라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수와 당 황실에서부터 시작돼 민간으로 빠르게 번졌다. 화려함을 좋아하는 장안의 귀족들은 모란을 앞 다퉈 사들였다. 연꽃이 불교와 관련된 정신적 고귀함의 상징이었다면 빨간색과 자주색 모란은 부의 상징이었다. 자연스럽게 "여러 꽃을 보았지만, 모란보다 아름다운 건 없다"거나 "오만 가지 꽃 중에 으뜸"이라는 식의 찬사가 뒤따랐다.
당나라 장군 혼감(渾瑊)은 당대의 유명 시인들을 불러 모아 자신이 가진 모란의 아름다움을 읊게 했고, 이 자리에서 백거이는 “모란을 가지는 것은 장안에서 가장 고귀한 향기와 색을 소유하는 것”에 비견했다.
이에 장안의 재력가들은 수천 전을 내고 꽃 한 송이를 샀고, 한그루에 수만전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한 승려에게서 귀한 모란을 그루 채 훔친 뒤 위안조로 황금과 고급차(茶)를 남기고 떠난 도둑의 일화도 있었다.
“도성의 대로마다 꽃피는 시절, 만 마리 말과 천대의 수레가 모란을 보러 갔다”는 게 당대의 평이다. 모란 때문에 유명해진 사찰과 정자, 개인의 저택도 여러 곳이 있었다. 모란꽃을 키우고 재력가의 정원을 가꾸는 것을 업으로 삼는 전담 ‘중산층’도 등장했다.
특히 모란이 피는 3월 중순에 열리는 모란 경연대회에서 1등을 수상한 모란은 집 한 채 가격을 훌쩍 뛰어넘었다.
모란광풍을 통해 권세 있고 부유한 집에서 온갖 사치를 부리며 앞 다퉈 모란꽃을 즐겼다. 이 같은 모란 열풍은 장안을 벗어나 소주나 항주 같은 중국 남부 지역으로도 번졌다.
결국 이 같은 사치풍조가 자연스레 인심을 퇴폐하게 만들어 당나라의 쇠락을 재촉한 것이라고 『장안의 봄』의 저자 이시다 미키노스케는 설파한다. 실제 당대의 시인들은 “모란꽃 탓에 장안의 10만가구가 파산했다”고 노래하기도 했다.
흔히 경제발전과 신규 일자리의 원동력으로 테크놀로지와 취향(taste)이 꼽히곤 하는데 당시 ‘조숙한’ 국가였던 중국은 전근대 시대라는 상황을 고려하면 매우 앞선 기술발전과 다양한 취향을 갖췄다. 하지만 그로 인한 각종 문제도 일찍 수반된 셈이다.
우선 부가 넘치면서 상류층의 취향은 특정 음식과 의복, 습관, 공공시설 등에도 적용됐다. 당시 장안의 귀족들은 의복과 헤어스타일, 가구, 서예, 스포츠, 시문 짓기, 연극에서 모두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 춤과 노래 등에서도 중앙아시아 이국풍 문화를 받아들이며 다양한 문화를 꽃피웠다.
당시 중국은 전근대 사회로는 드물게 취향이 경제성장의 동력 역할을 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던 것이다. 이는 잘 알려진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기’ 때와 비슷한 상황이 900년 이상 앞서 나타난 모양도 됐다.
17세기 네덜란드의 모습도 당나라의 재판이었다. 16세기 중반 유럽에 들어온 튤립은 1634년이 되면 네덜란드에서 ‘튤립 광풍(tulipomania)’이라고 불릴 정도로 일반 까지 확산된다. 부자는 물론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 까지 튤립 거래에 뛰어들었고, 사람들이 튤립에 열광할수록 튤립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1635년에는 튤립구근 40뿌리에 10만 플로린이 투자됐다. 튤립이 너무 고가다 보니 미세한 무게 단위인 ‘그레인(gr·0.064799g)’보다도 작은 ‘페리트(perits)’단위로 팔렸다.
튤립이 귀한 존재가 되면서 사람들은 튤립을 ‘장군’ ‘제독’ ‘총독’등으로 불렀다. 알렉산더 대왕이나 스키피오 같은 역사상 위인의 이름이 붙기도 했고, ‘장군 중의 장군’ ‘제독 중의 제독’이라는 이름도 등장했다.
19세기 영국의 작가 찰스 매케이에 따르면 17세기 튤립 광풍 기간에 ‘리프켄 제독’이라고 이름 붙은 400페리트짜리 튤립은 4400플로린의 가치로 평가받았다. ‘반 데르 에이크 제독’튤립은 446페리트에 1260플로린으로 가격이 매겨졌다. ‘총독’으로 불린 튤립은 400페리트짜리가 가격이 3000플로린이었다.
가장 비싼 튤립은 ‘셈페르 아우구스투스’라는 것으로 200페리트짜리가 5500플로린에 달했다. 이 종자는 상태가 좋지 않은 것조차도 보통 2000플로린은 갔고, ‘완벽한’ 구근은 암스테르담과 할렘에 각각 1개씩 단 두개만 존재한다고 발표됐다. 할렘에 있는 완벽한 구근을 얻기 위해 12에이커의 건축물 부지를 제공하겠다는 제안까지 나왔다. 암스테르담에 있던 것은 4600플로린에 마차 새것 하나, 말 두 마리와 마구세트를 얹어서 팔렸다.
튤립 광풍의 전성기인 1637년 3월에는 튤립구근 한개 가격이 숙련공 연봉의 10배 이상에 달했다. 당시의 유명작가 문팅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총독’ 한 뿌리 가격이 밀 두짐(448플로린), 호밀 한짐(558플로린), 4마리 살찐 황소(480플로린), 돼지 8마리(240플로린), 양 12마리(120플로린), 와인 476리터(70플로린), 맥주 1008갤런(32플로린), 버터 504갤런(192플로린), 치즈 1000파운드(120플로린), 침대 1개(100플로린), 은물잔 1개(60플로린), 옷 한벌(80플로린)을 합친 것과 같았다.
희귀종 튤립 수요가 계속되면서 1636년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에서 튤립이 상설 거래됐고, 로테르담, 할렘, 레이덴, 알크마르, 호른 등의 도시에서도 상설장터가 생겼다. 사실상의 정규 선물거래도 이 때 정비됐다.
이제 튤립 투기꾼들은 가격 등락을 예상해서 투기에 들어갔다. 가격이 조금 떨어지면 샀다가 오르면 팔기 시작한 것이다. 쉽게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튤립시장에 뛰어들었다. 모든 사람들은 튤립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이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국내외 부자부터 농부, 기계공, 선원, 하녀, 굴뚝청소부, 세탁부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튤립을 거래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가재도구와 재산을 팔아 현금화한 뒤에 튤립에 투자했다. 집과 토지는 튤립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헐값에 팔렸다.
유럽각지에서 돈이 몰리면서 집과 땅, 말 등 일용품부터 각종 사치품 까지 가릴 것 없이 물가가 올랐다. 튤립 거래 규모가 너무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거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법과 규제도 만들어졌다. 튤립 거래 전담 공증인과 부기기록원도 등장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바보짓’이 계속될 수는 없었고, 일부 부자들은 튤립을 사지는 않고 팔기만 했다. 튤립 가격은 계속 떨어졌고, 사람들은 확신을 잃었다. 신뢰가 사라지자 공황이 시작됐다. ‘셈페르 아우구스투스’를 4000플로린에 팔기로 계약을 맺더라도 6주후가 되면 튤립 가격이 300~400플로린씩 떨어진 탓에 거래 자체가 성립되지 못했다. 계약 파기가 난무했다. 결국 사람들은 구매가격의 4분의1 에도 사려는 사람이 없는 구근들을 재워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순간적으로 부자가 됐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다시 가난한 사람으로 되돌아갔다. 부유한 상인도 거지가 됐고, 귀족 중에도 재산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줄어든 사람이 적지 않았다. 돈은 그렇게 사람들 사이를 빠르게 돌고 돌았다.
대박을 노리는 인간의 본성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는 모양이다.

세계사속 경제사, 돈 성 권력 전쟁 문화로 읽는 3000년 경제 이야기, 글항아리, 김동욱, 페이지 106-112

≪삼국유사≫ 권1 기이편(紀異篇)에 신라 선덕여왕의 지혜로움에 얽힌 설화로 신이담(神異譚)이 있다. 향기 없는 모란꽃 이야기로, 당나라 태종이 붉은색·자주색·흰색의 세 가지 색으로 그린 모란의 그림과 그 씨 석 되를 함께 보내 왔다. 왕은 그 꽃 그림을 보고 그 꽃이 향기가 없음을 예언하였는데, 이듬해 핀 그 모란은 과연 향기가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일반적으로 튤립이 양파인줄 알고 먹었다가 집한채 값을 날린 일화등 네덜란드 튤립 버블은 경제적으로 무척 유명한 이야기인데 사실 당나라에서도 모란꽃이 투기로 쓰였다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 마음은 비슷하다.
비트코인 가치 상승을 네덜란드 튤립 투기와 버블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튤립은 생물이며 실체가 있고 비트코인은 코드와 장부로만 존재하는 가상의 싸이버 세계이다. 튤립 버블은 네덜란드 한 국가내에서 진행되어 한계가 있지만 비트코인은 국경과 세상을 넘어서 쓰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필자가 보기에는 튤립 버블은 전형적인 일명 피라미드 폰지 사기에 가깝다. 즉 자신이 산 튤립을 남에게 돌리고 돌려서 결국 폭탄이 터지게 된다. 또 튤립은 식물이니 구근을 통해 무한 번식 시켜 공급량이 무한 증가하거나 타국에서 수입이 가능하니 공급을 통제할 수 없는 반면에 비트코인은 2100만개 한정이 되어 디플레이션 되어 있기 때문에 다르다.
하지만 필자는 비트코인의 중앙화된 결정권자가 없어서 혼란, 비트코인 채굴자의 거대한 거래비용 꿀꺽과 비트코인 시간 지연에 대해서 진절머리가 나서 결국 다른 대안화폐인 알트코인이 투자중이다.

Sort:  

Nice flower. I love pink color very much

i dont understand this langueg but i saw this beautiful flower so my heart say comment "the beautyful flower made a well post"

very beautiful flowers ... suitable this flower is given to the lovers heart.

Coin Marketplace

STEEM 0.04
TRX 0.32
JST 0.082
BTC 60573.65
ETH 1550.46
USDT 1.00
SBD 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