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민 소설 태극기와 국기모독죄 3 이번 추석 연휴때 정말 마음단단히 먹고 소설을 완성하려고 합니다

in #kr9 years ago (edited)

과거에는 애국가의 저작권이 국가에 귀속되지 않고 안익태의 유족이 그 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1992년부터 이에 따라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신탁을 통해 저작권료를 받고 있었다. 이에 따라 2003년에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는 프로축구단 경기에서 애국가를 무단으로 사용한 두 구단을 고소하였으며, 이에 따라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 애국가의 저작권을 국가에서 사들이는 것에 대한 논의가 일어났으며, 2005년 3월 16일 안익태의 유족이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에 저작권을 기증하였다. 안익태 유족의 저작권 기증으로 논란은 종결되었다.

김검사는 윤치호란 글자에 눈이 가서 말했다. ‘윤치호 친일파 아냐?’ 다시 확인차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다음과 같았다.
윤치호(尹致昊, 1864년 12월 26일 - 1945년 12월 9일). 대한민국의 교육자, 정치가, 기독교 운동가, 계몽운동가, 언론인. 호는 좌옹(佐翁)이며 한국 최초의 남감리교회 신자이자, 초기 개신교 세례교인이었다. 개화파로 독립신문사의 제2대 사장이자 독립협회, 만민공동회를 통해 계몽운동, 민권운동을 벌였으나 민중들의 배척을 받게 되자 민중을 경멸, 노선을 변경하여 실력양성론에 매진하였다가 흥업구락부, 청구구락부 사건 등을 계기로 결국은 친일로 전향하였고, 이것이 죽음에도 영향을 줬다. 공식화되진 않았지만 여러 자료들을 통해 애국가의 작사자임이 확인되었다. 6.25 전쟁 중에 대한민국 정부에서 공식 발간한 문서에 윤치호 이름이 박힌 걸로 확정하였다.
‘애국가는 작사가도 친일파, 작곡가도 친일파’ 김 검사는 입가에 쓴 웃음이 배였다.
별안간 뇌리에서 한 기사가 스쳐 지나갔다. 수사 당국에 따르면 이석기 전 의원은 2012년 5월 초 서울에서 열린 경기동부연합 내부 회의에서 “전시를 대비해 물질적·기술적 준비를 해야 한다”며 무장봉기에 대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강연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자리에선 "유사시를 대비해 총기를 확보해 무장하라”는 등의 발언이 나왔다. 이 의원은 또 통진당 김미희·김재연 의원 등 130여 명이 모인 경기동부연합 모임에서 북한군 군가인 ‘적기가(赤旗歌)’를 합창한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민중의 기 붉은 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적기가는 북한의 혁명가요다. 수사 당국 관계자는 “이석기 의원은 당 공식행사에서 애국가 제창을 거부해 물의를 일으켰는데 북한 군가인 적기가를 제창했다는 것은 이들의 이념을 잘 드러내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김검사는 생각했다. ‘아무튼 결국 애국가, 태극기 거부하는 세력은 간첩이잖아. 나는 간첩이나 불온 세력을 잡을 의무가 있는것이구. 우선 태극기와 애국가는 별개의 사건이니 태극기나 찾아봐야지.’
그런데 김 검사는 평소 프랑스에 대해서 우호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갑자기 프랑스 라 마르세예즈(프랑스어: La Marseillaise ‘마르세유의 (노래)’)는 프랑스의 국가의 가사 내용이 궁금했다.

1절가자, 이 땅의 아들딸들아, 빛나는 날이 온다!지성을 뒤엎는 폭압이,피에 찌든 깃발이 있는,피에 찌든 깃발이 있는//저 들판에서 나는 병사들의흉악한 소리가 넌 들리나?//그들이 우리 코앞까지 왔다우리 자식들과 아내들의 목을 찢으러! 후렴시민들아, 무기를 들고무리를 만들어나가자! 나가자!더러운 피를 밭고랑에 대자! 시민들아, 무기를 들고무리를 만들어나가자! 나가자!더러운 피를 밭고랑에 대자!2절저 노예떼가 뭘 바라서매국노와 왕과 짰나?누가 이런 비열한 쇠사슬을,이러한 긴 다리미를 준비하는가?이러한 긴 다리미를 준비하는가?프랑스여, 우리에게, 아! 어떤 모욕을!어떤 감정을 자극하는가?그것은 그들의 계획이 감히 우리에게 있다니,옛날의 노예로 돌아가려면 말이다!후렴3절뭘까? 이 외국의 동료들이여!그들은 우리의 집에 법률을 만들 것이리라!뭘까? 이들 팔란세의 용병이여,우리의 자랑스러운 전사들이여, 엎드리라!우리의 자랑스러운 전사들이여, 엎드리라!어머나, 세상에! 쇠사슬에 묶여있는 손으로우리의 눈썹의 멍에는 밑에 잡힐 것이리!야비한 군주의 것이다,우리의 운명의 주인이 말이다!후렴4절폭군과 반역자를 떨게 하리!모든 당사자들의 치욕은,귀하의 약속 파리시데를 떨게 하리!그들에게 상을 달라고,그들에게 상을 달라고,모두가 당신과 싸우는 군인일리!그들이 쓰러진다면, 우리의 젊은 영웅들은,지구는 새로운 것을 봐라!죄수 팀은 싸움을 준비하라고.후렴5절프랑스여, 도량의 전사로,곰 또는 프랑스를 다시 잡아서,이 슬픈 희생자들을 모아서,행정관은 우리에 대한 무장을 갖추었도다! 행정관은 우리에 대한 무장을 갖추었도다! 하지만 피에 굶주린 왕이여,하지만 이들 공범의이러한 모든 호랑이를, 누가 사정없이그들의 어머니를 떼었느냐?후렴6절신성한 조국애여,우리의 복수심에 불타는 팔을 인도하고 떠받쳐라.자유, 사랑하는 자유여,너희의 지지자와 함께 싸워라,너희의 지지자와 함께 싸워라.우리의 깃발 아래에, 승리가너희의 씩씩한 노래에 맞춰 돌진하리라.너희의 죽어가는 적들이너희의 승리와 영광을 보도록.후렴7절우리는 구덩이를 누르고 있도다!우리의 선조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우리는 그들의 먼지를 발견한다,그리고 그들의 미덕의 흔적을,그리고 그들의 미덕의 흔적을,그들은 생존을 위해 질투하였고,그들의 상자를 공유하였으며,우리는 숭고한 자존심을 가지고복수를 하거나 아니면 기다리거라!

“뭐야 라 마르세이즈가? 내가 프랑스 말을 모르니 믿을 수밖에. 완전 빨갱이 노래 아냐? 프랑스 혁명이 완전 폭력을 찬양하네.”
‘프리메이슨이 프랑스 혁명하고 러시아 공산 혁명 배후라는데 비슷하긴 하네.’
‘아무튼 이상한 놈 취조하느라 나도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군.’
‘피곤하면 그 놈에게 밀리니, 퇴근해 집에 가서 맑은 정신으로 내일 출근해야지. ’

김 검사는 집에 와서 샤워하고 간단한 운동후에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꿈에 고조할아버지가 나타나서 꾸짖는 악몽을 꾼 김 검사는 간단히 아침 식사를 때우고 일어나 서둘러 출근했다.
검찰청에 도착하니 미리 진한국이 나와있었다.
진한국이 말했다. “커피 한잔하시겠어요?”
김 검사는 말했다. “아뇨 됐습니다. 얻어먹으면 뇌물죄죠.”
썰렁한 농담을 던진채 같이 들어갔다. 김 검사는 말했다. “변호사는 있습니까?”
진한국이 말했다. “아뇨.”
김 검사가 말했다. “없으시면 국선변호사가 선택될 것입니다. 괜찮으십니까?”
진한국이 말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김 검사가 말했다. “결혼은 하셨나요? 자녀분은?”
진한국이 말했다. “결혼은 했고, 딸 둘이 있습니다.”
김 검사가 말했다. “부인께서 태극기 사건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진한국이 말했다. “미쳤다고 그러죠.”
김 검사가 말했다. “부인도 설득시키지 못하고, 저를 이해시키려구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도 모르십니까?”
진한국이 말했다. “사서중에 대학에 나온 말이죠. 그런데 그 뜻이 아닙니다.”
김 검사가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됐습니다.”
진한국이 말했다. “아무튼 몸과 맘을 닦는 수신이 먼저라는 뜻입니다.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지 집안꼴이 잘 돌아가야 다른 일도 한다는 내용은 아닙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의 계기가 된 운요호 사건 자체가 일본 국기 문제가 크게 제기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계속해서 국기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1882년 만들어졌다.

제작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박영효가 1882년 만들었다는 설이 기존의 설이었으나, 2011년 현재 국사학계에서 김홍집의 명을 받은 이응준이 만들었다는 설이 현재 가장 유력한 통설이다. 자세한 내막은 다음과 같다.

임오군란 이후 청은 조선의 속국화[4]작업을 진행해 나갔다(이건 베트남에서도 마찬가지로, 청프전쟁이 일어난 이유이기도 하다)[5]. 임오군란 이후 흥선 대원군이 되돌린 관제를 다시 고치는 과정에서 조선 정부 조직까지 청의 입김 아래 뜯어고쳐지고 고문이 수십 명 파견될 정도였으니 주권 침해의 정도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청의 깃발 황룡기 중에서 삼각기[6]. 정식명칭은 황저남용창적주(黄底蓝龙抢赤珠)

청나라는 당시 청 황실의 깃발로 사용하던 삼각형의 황룡기를 변형하여 속국의 모습을 보일 것을 제안하였는데, 말이 제안이지 사실상 명령이었다. 이 과정에서 황색을 청색으로 바꾸라는 등, 즉 청룡기를 쓰라는 세세한 부분까지 다루었다. 동양의 방위적 관점에서 황색은 중앙을 의미하고 청색은 동쪽을 의미한다. 또한 청룡은 동쪽을 관장하는 사신무로써 청이 황룡기를 사용하고 우리나라가 이를 변형한 청룡기를 사용하라는 것의 의미를 충분히 알 만 하다. 또한 우리나라의 용은 격식이 낮게 표현하여 발톱이 하나 적게 하도록 하였다. 때문에 고종은 용기는 절대 못받아들인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었다. 다만 민족과 국가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위해서라기보다, 청나라를 중국으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거부한 것. [7]
1882년 4월 6일 부터 조선 측의 이응준과 청나라 측의 마건충이 국기 문제로 마찰을 빚었다

이것이 바로 최초의 태극기인 이응준 태극기이다.(괘의 위치가 이상하지만 지금도 흔히하는 외국인의 실수 일지도 모른다.) 참고로 위의 Corea라고 쓰여 있는데 이걸 일본이 나중에 Korea로 바꾼게 아니다. Corea가 Korea로 바뀐 것은 일본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일본의 Korea 조작설 참고.
그러던 중 1882년 5월 조미 통상조약 당시, 조인식에 사용할 국기를 지정해달라는 미국 공사 로버트 슈펠트의 요청을 받은 김홍집은 역관 이응준에게 국기를 그리게 하였다. 이게 최초의사용례이다. 이게 속칭 이응준 태극기로 2004년 미국 해군부 해상국의 자료에서 그 실체가 발견되었다.
실제로 고종은 이 단계에서 태극기를 국기로 사용하기로 마음을 거의 굳힌 단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응준 태극기의 사용은 최초의 공식적 사용이라는 의의가 있지만 정부의 공인이 있지 않은 약식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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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그림이 깨져서 나옵니다.

그러네요 그냥 한글파일 붙여 넣기 한건데 지워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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