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창문 앞에 앉아서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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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이 되었네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창문 앞에 앉아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근황을 적어봅니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 하던 직장인 생활에서 벗어난 지 한 달이 되었습니다. 아, 퇴사를 한 건 아니고 잠시 휴직 중입니다. 휴직을 하자마자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습니다. 부모님 운전기사 겸 비서입니다. 정규/비정규직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노동권을 홀로 외롭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단 작업용 장화를 얻어냈습니다. 다음에는 작업용 장갑을 요구할 생각입니다.

올해 초, 부모님은 좀 더 잘살아보겠다고 나무 집을 지었습니다. 한창 추울 12월에 시작한 집 짓는 일이 3개월동안 뚝딱-뚝딱-하더니 금새 마무리됐습니다. 덩달아 제 방도 멋진 테라스가 있는 2층으로 옮겼습니다. 맞은편에 옛날 집 지붕 위로 연탄공장이 아주 잘 보입니다. 서울에서 미세먼지를 피해 왔는데, 방 안에서 석탄가루를 마시게 될 줄은 생각 못했습니다. 집에서 마스크를 끼고 있어야 될 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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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공을 구정에 맞춰 조금 급하게 진행하다보니, 여기저기 손볼 곳이 좀 많습니다. 나무 집이라 비가 오면 썩을 수 있기 때문에, 집 외부에 오일을 발라줘야 합니다. 듬성듬성 오일칠이 빠진 부분을 채워넣었습니다. 그리고 급하게 공사한 마당 데크를 12시간동안 장시간 노동 끝에 뜯어냈습니다. 이제 데크를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언제 시작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집주인께서 나무로 할지, 돌로 할지, 고민하고 있으십니다. 쉽게 결정내리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내려오자마자 한 일은 텃밭에 풀이 자라지 않게 검은색 가림막을 덮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박과 옥수수 모종을 심었습니다. 하, 뒤돌아서면 풀이라고 한탄하는 어르신들 말이 이해가 됩니다. 집 주위 곳곳이 풀들입니다. 작은 공간이어도 풀을 뽑으려면 한참이 걸립니다. 상추와 치커리 옆 풀로 무성했던 작은 공간에 풀을 뽑고, 그 자리에 열무를 심었습니다. ‘이렇게 씨만 뿌리면 나는건가?’하고 의아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니 나름 모양을 갖추면서 자라고 있습니다. 지금은 꽤나 많이 자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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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본업인 건강원 일도 좀 돕고 있습니다. 사실 본업이 건강원인지, 만남의광장 주인장인지 모르겠습니다. 집에 뭐 이렇게 동네 어르신들이 자주 놀러 오시는지... 사람들하고 노는 거 좋아하는 것도 유전인가 싶습니다. 아무튼, 저는 건강원 서열 3위입니다. 주로 하는 일은 무거운 것을 들거나, 즙이 담겨 나오는 약봉지를 받고, 상자에 담아 배달하는 일입니다. 제 목표는, 건강원 시스템을 좀 이해하고 나면, 이후에 아버지가 다시는 바가지를 잡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 내의 혁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직 휴직을 하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곧 7월 10일이 되면 실감이 날 것 같습니다. 늘 찍히던 월급이 찍히지 않을테니까요. 카드회사는 카드값을 달라고 울며 보채겠지요. 통장에 카드회사가 '퍼가요~♡'할 돈이 없을텐데, 어떻게 채워 넣을까 고민중입니다. 그래서 작은 돈이나마 벌어보려고 생계형 영상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도움주신 덕에 조회수는 100을 넘겼습니다. 감사합니다.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누군가가 짜놓은 시간표대로 살았습니다. 학교에 등교하면 시간표가 있었습니다. 그게 끝나야 집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대학시절도 사실 그 시간표를 내가 짤 수 있다는 것 뿐이었지, 그에 맞춰 사는 건 똑같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들어간 직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상이었습니다. 가끔 일탈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반복된 삶을 6년, 아니 약 25년을 살았습니다.

이 곳은 짜여진 시간표가 없습니다. 덥지 않은 아침과 저녁에 주로 일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늘 지켜지지는 않습니다. 아직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적응하는 데 꽤나 애를 먹고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정들이 쑥-쑥- 들어오고, 조금만 게으름을 피워도 하루가 지나갑니다. 시간관리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남은 기간동안 좀 더 시간관리에 신경을 써볼까 합니다. 그리고 이 시간을 잊지않고,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기말고사를 무사히 마치고, 성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성적을 늦게 올려주시는 덕에, 31년 내 인생의 성적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환갑이 넘은 부모님을 보며 머리를 젓습니다.

비가 좀 더 세차게 내립니다. 무언가 씻겨 나갔으면 좋겠다- 싶어 고개를 들어 창문을 봅니다. 연탄공장이 보입니다. 오늘은 석탄가루를 많이 마시지는 않겠네-라며 위안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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