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수술의 발명자 폴 윈첼과 심장 개흉술 수술흉터 치료

in #kr8 years ago

인공심장[artificial heart, 人工心臟]
요약 기능이 떨어졌거나 악화된 심장 대신 생체 내에 기계적으로 장치하여 전신순환을 영구적으로 보조 또는 대행하도록 만든 심장.
인공심장의 목적은 다른 어떤 치료법에도 반응하지 않게 된 병든 심장을 인공펌프로 치환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서는 인공좌심실 보조심장이나 완전인공심장이 있다. 인공심장은 기본적으로 구동기구(驅動機構:즉 에너지源과 전달기구), 혈액펌프기구 및 제어기구(制御機構)의 세 가지로 되어 있으며 에너지원으로는 유체전기(流體電氣, 배터리) 등이 이용되지만, 핵생물학적 ·화학적 에너지에 대해서도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인공심장의 펌프는 심실판막 및 생체와의 결합부로 되어 있다. 좌심실보조심장의 심실은 1개로 관상(管狀) 또는 U자(字) 모양이고, 완전인공심장은 2개의 심실이 있어서 각각 혈류가 들어오고 나가는 통로가 공급받는 환자의 심방 및 대혈관에 대응하도록 주머니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좌심실 보조심장에 비하여 혈액의 과류(過流)나 정체, 혈전형성이 생기기 쉽다. 재질(材質)은 폴리우레탄(polyurethane)이나 실리콘 등 의료용 합성고분자재료로 되어 있다. 인공심장의 제어기구는 심박수 ·심박출량 ·유량파형(流量波形) ·심실압력파형, 그 밖에 혈액가스분압 pH, 체온 등의 조절을 위해 필요한데, 이들의 조절이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인공심장을 임상에 응용한 것은 1963년 D.바케 등이 좌심실보조심장을 시도한 것이 처음이며, 1966년에 칸트로비츠 등도 비슷한 시도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단기간에 그쳤고, 오래도록 사용된 임상례는 1982년 최초로 미국의 치과의사 B.클라크의 생명을 112일간 지속시켜 주었던 자비크 7이라는 공기가동식 플라스틱심장으로, 외부에 다소 큰 동력장치가 부착되어 있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인공심장이 1957년 최초로 연구가 시작될 때는, 완전히 인공적인 심장으로 자연심장을 대치하는 것을 뜻했다. 그러나 때로는 모든 인공혈액펌프를 인공심장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완전인공심장과 심실보조장치를 추려서 설명하기로 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두 가지 연구과제가 같은 해인 1957년 두 연구소에서 동시에 시작되었다. 그것은 콜프와 아쿠츠에 의한 완전인공심장과 구츠로에 의한 심실보조장치이다. 심실보조장치에 관해서는 몇 해 동안 진전이 없다가 1975년 새로 임상에 사용하게 되었다. 이 보조장치는 모두 일시적으로만 사용되었기 때문에 D.바케가 1963∼1967년에 사용했던 일차적인 바이패스형 좌심실보조장치를 시술하였던 몇 가지 예는 포함되었어도 칸트로비츠와 아쿠츠가 보고한 연결식 좌심실 보조장치 2례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좌심실 보조장치를 사용한 후에 성공적으로 심장기능이 회복된 환자수는 31%를 약간 넘는 정도였고, 그런 뒤에 완쾌되어 퇴원한 환자수는 16%에 불과했다.
심실보조장치를 임상에 사용하는 데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① 사용하는 것이 늦고, ② 출혈경향이 있으며, ③ 여러 기관의 기능부전, ④ 우심실부전, ⑤ 높은 폐혈관저항, ⑥ 약물치료와 혈액응고방지에 대한 치료, ⑦ 좌심실첨연결관(左心室尖連結管), ⑧ 좌심실 보조장치에 의존하게 되는 일 등이다. ①의 문제는 큰 문제로, 연구팀이 사용자인 심장외과 의사가 아닐 때는 특히 문제가 된다. 언제 어떤 경우에 어떤 환자에게 이런 장치를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리려면 연구팀과 임상의(臨床醫) 사이에 긴밀한 협조 아래 보조장치를 충분히 이해하고 사용해야 한다. ②의 출혈경향은 초기의 텍사스 심장연구소의 모든 환자에게서 나타났다. 다른 연구소에서는 20∼30% 환자가 출혈성을 나타냈는데, 그것은 대동맥내 벌룬펌핑(balloon pumping)이나 좌심실보조장치 때문이 아니라, 앞서의 장시간 체외순환을 한 때문이다. 실제로 텍사스 심장연구소에서 좌심실보조장치를 사용한 환자들은 먼저 체외순환을 4시간 이상 시행했던 경우였다. 이 동안에 각 기관의 기능은 이미 손상을 받은 데다가, 추가로 대동맥내 벌룬펌핑과 각종 약물치료로 더욱 손상을 받게 된다. 피어스는 처음 체외순환을 중지하려고 시도한 시간부터 1시간 이상 기다리지 말도록 권장하고 있다. 우심실 기능부전이 동반되는 경우는 전체 환자의 25%였다. 이런 경우에는 양쪽 바이패스를 폐혈간 저항에 따라 실시해야 한다. 양 심실보조를 시작해서 생존한 보고사례는 아직 없다.
1970년 이후 인공심장 분야는 급속하게 발달하였는데 첫번째와 두번째 인공심장 이식수술은 텍사스 심장연구소에서 1969년과 1981년에, 세번째는 유타대학에서 1982년에 있었다. 이후 인공심장은 장기간 심장 박동을 일정하게 유지하기가 어렵고 오작동시 사망에 이르는 위험성이 있어 2000년 이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좌심실 보조장치(LVAD)는 개발완료되어 환자에게 시술되고 있는데 환자의 좌심실에 파이프를 연결하고 모터를 작동시켜 피를 흐르게 하여 대동맥을 통해 전신으로 피를 보낸다. 모터를 작동시키는 배터리와 컨트롤러를 착용하도록 고안되어 있는 장치이며 2012년 한국에서도 수술에 성공했다.
(출처 두산백과)

폴 윈첼.PNG
MBC에서 방송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는 2018년 4월 1일 일요일 오전 10시 40분에 방송되었다.
수술이 끝난 이후 집도의는 인공심장을 발명한 이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밝혔는데 바로 곰돌이 푸와 만화 스머프의 악역 ‘가가멜’ 목소리를 낸 그래미 상도 받은 폴 윈첼이라고 말했다.
폴 윈첼은 어린시절 앓은 병으로 10대시절에 말을 더듬었다. 그의 어머니는 말을 더듬는 것을 고치려고 인형을 이용한 폴에게 복화술을 가르쳤고 말더듬을 고치고 나서 복화술사가 됐다. 그는 TV에서 복화술쇼를 하고 성우로까지 발탁됐다.
폴 윈첼은 직접 인형을 만들었는데 일회용 면도기, 라이터, 보이지 않는 가터벨트등 발명했다.
폴은 파티에서 하임리히 메뉴버로 유명한 외과의 헨리 하임리히를 만나게 되고 심장절개 수술에 참관하게 됐다. 폴은 이 수술을 빨리 집도하는 모습을 보고 의아하게 여기니 심장을 대체하지 못해 빨리 수술을 해야만 했다고 했다. 1956년 인공심장을 최초로 만들었고 1963년 특허를 출원해 지금의 인공심장의 초석이 돼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있다.
폴은 유타주 의과대학에 무료로 특허를 기증해 연구를 계속하게 했다.
최초인공심장.JPG
인공심장의 발명으로 심장수술의 일대 혁신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심장수술을 할수록 개흉술을 하면서 가슴 흉부에 흉터가 생긴다는 점이다.
실제 소아 심장 기형의 경우 어린시절에 수술을 하는데 흉터가 세로로 손가락 굵기정도로 매우 큰 수술후 흉터가 남는 경우가 있다.
강남역 4번출구 자향미한의원 www.imagediet.co.kr 에서는 개흉술 심장수술 이후에 흉터를 수술후 흉터침, 침, 한약 재생약침등으로 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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