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글은 독자와의 소통하기 위해 쓰여진다
모든 글은 글을 쓰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독자를 위해 쓰여진다. 이 사실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어떠한 종류이더라도 창작자는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문장을 작성해야 한다. 글을 사용하고 이해하며 공감하고 글을 통해 정보와 지식을 얻는 주체가 독자들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창작자들은 독자들과 글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 의사소통을 하려는 주체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상대방을 위해 글을 쓴다. 페이스북과 스팀잇에 작성되는 글에서부터 소설과 수필, 뉴스 기사, 논문을 비롯한 모든 글들의 결국 독자와의 소통을 위해 쓰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말과 글의 관계, 특히 글이 말(language)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글쓰기를 배우고 몸에 익히는 데 정말, ㅎㅎ 진정 중요한 도움을 준다.
인류에게 말과 글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말과 글은 인간이 지닌 최소한의 소통 방식이자 최후의 소통 방식이다. 인류는 무리를 지어 살던 시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서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말(language)과 글(writing)을 사용해왔다. 따라서 말하기와 글쓰기는 서로 동전의 앞 뒷면처럼 의사소통에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말을 잘 하는 사람들이 글을 잘 쓰고, 글 잘 쓰는 사람이 말도 잘한다는 이야기는 빈말이 아니다.
하지만 말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자연의 소리를 흉내내면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놀라움이나 기쁨 같은 느낌에서 자연히 우러나오는 소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여럿이 함께 노동하면서 지른 소리나 노래에서 나왔다는 노동요설(Yoo-hee-hoo theory)도 있다. 인류학자들은 인류가 말을 하기 시작한 시기를 짧게 잡아도 100만년 전, 길게는 5,6백만년전이라고 보고 있다.
말은 목구멍을 통하여 나타나는 소리인데 그 장소 그 시간에서만 들을 수 있는 특성을 지녔다. 문자가 없던 시절에서도 정보는 말로서 전해졌다. 현재에도 언어가 있는 아프리카의 오지에서는 말을 통해 정보와 지식이 전달된다. 인류의 최소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는 소리였던 것이다. 입으로 내는 소리는 북을 두드리는 등의 행위로 발전하였다.
인류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기록으로 남겨 더 많은 시간에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었게 되었는데, 그 최초의 기록은 동굴에 그려진 벽화들이었다. 동굴 벽화들은 대부분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를 거쳐 만들어졌다.
말은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소리로서 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意思疏通)의 역할을 한다. 역사 연구에 따르면 BC 8000년경에 인류는 농경 생활 시작하여 정착 생황을 시작한다. 집회 장소가 발굴되고 있으며, 여행과 동네를 돌며 알리는 사람(crier), 봉화, 북 등이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흔적이 발굴되고 있다.
말은 목구멍을 통해 나타나는 소리여서 말을 하는 그 시간, 그 장소에서만 들을 수 있는 반면 글은 표현 방식이 다르다. 가장 위대한 발견인 문자(文字)를 통해 인류는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여 전달하게 한다. BC 6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청동기를 제작한 문명이 발생하여 농경생활을 하는 국가가 발생한다.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문자는 기원전 3천년 경의 쐐기 문자(cuneiform script. 설형문자)이다.
문자(文字)는 언어를 기록하기 위한 상징 체계로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으로 꼽는다. 문자는 이 시기에 개발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문자가 없었다면 인류의 지식과 생활들이 작성되어 전달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 음성 언어를 기록하기 위해 생겨나거나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우리는 글쓰기에 관한 중요한 중요한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글쓰기가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방법이며, 따라서 글은 내용과 형식에서 자기중심적이거나 일방적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창작자와 독자, 그리고 사회적 관계와의 대화라는 사실이다.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문자는 기원전 3천년 경의 쐐기 문자
말하듯이 자연스러운 문장의 중요성
100만년 이상이었지만 문자의 역사 8천년 정도밖에 안되었다는 사실은 글쓰기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인간의 사회적 관계와 상호작용을 위한 의사소통은 말을 기본으로 하며 그 커뮤니케이션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목적으로 문자가 만들어진 것이다.
말하듯이 자연스러운 문장을 접할 때 우리는 그 내용과 의미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말과 글의 특성상 어떠한 기술적, 사회적, 경제적 혁신과 변화가 일어난 후에도 말과 글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기 위한 기본 도구로써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왜 글을 쓸까. 다른 사람들과의 효율적인 소통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해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글쓰기를 배우고 연습하는 것이다.
말하기가 발달하여 노래와 음악이 나왔듯이 글쓰기가 발달하여 모든 스토리텔링과 콘텐츠의 기본이 되었다. 수많은 역사적인 문학 작품과 문서들에서부터 연인에게 쓰는 편지나 이메일 또는 실무를 위해 작성되는 서류들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글을 떠나서 어떠한 활동도 벌일 수 없다. 말하듯이 자연스러운 글과 해학성을 지닌 전형적인 문장의 사례는 김유정 작가의 1932년 작품 「봄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입으로 소리내어 읽어서 말하듯이 자연스런 글이 주는 느낌을 경험해보자.
"장인님! 인제 저……"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대답이 늘, "이 자식아! 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하고 만다.
이 자라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아내가 될 점순이의 키 말이다.
내가 여기에 와서 돈 한푼 안 받고 일하기를 삼 년하고 꼬박 일곱 달 동안을 했다. 그런데도 미처 못 자랐다니까 이 키는 언제야 자라는 겐지 짜장 영문 모른다. 일을 좀더 잘해야 한다든지, 혹은 밥을 많이 먹는다고 노상 걱정이니까 좀 덜 먹어야 한다든지 하면 나도 얼마든지 할말이 많다. 허지만 점순이가 아직 어리니까 더 자라야 한다는 여기에는 어째 볼 수 없이 고만 빙빙하고 만다.
이래서 나는 애초 계약이 잘못된 걸 알았다. 이태면 이태, 삼년이면 삼년, 기한을 딱 작정하고 일을 해야 원할 것이다. 덮어놓고 딸이 자라는 대로 성례를 시켜 주마, 했으니 누가 늘 지키고 섰는 것도 아니고, 그 키가 언제 자라는지 알 수 있는가. 그리고 난 사람의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 줄 만 알았지 붙배기 키에 모로만 벌어지는 몸도 있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때가 되면 장인님이 어련하랴 싶어서 군소리 없이 꾸벅꾸벅 일만 해 왔다. 그럼 말이다. 장인님이 제가 다 알아채서, "어참, 너 일 많이 했다. 고만 장가들어라." 하고 살림도 내주고 해야 나도 좋을 것이 아니냐.
작가 김유정(金裕貞)_1908년에 태어난 일제 강점기의 소설가이다. 고향에서 1930년부터 1932년까지, 1년 7개월을 머무르면서 김유정은 마을 청년들을 모아 농우회와 부인회 등을 조직하는 등 농촌계몽운동에 참여한다. 『조선중앙일보』에 응모했던 「노다지」가 가작으로 당선되면서 비로소 문단 활동을 시작하게 되며 같은 해에 대표작이라 불릴 작품 「금 따는 콩밭」, 「금」, 「떡」, 「만무방」, 「산골」, 「솟」, 「봄봄」, 「안해」 등 대부분을 발표하였다.
글은 이성으로 준비되며 미디어를 통해 읽혀진다
모든 글은 미디어에 쓰여져 사람들에게 읽혀진다. 기자, 작가, 저자들은 자신 스스로를 위해 글을 쓰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독자를 위해 미디어에 글을 쓴다. 온전하게 자신만을 위한 글쓰기란 있을 수 없다. 글은 독자들을 위해 쓰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 작업은 천재적 영감이나 감정에 의해 쓰여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성적인 자세로 준비되고 기획되어야 한다. 글은 독자와의 소통을 통해 공감과 이해, 그리고 지식 전달을 이루어내는 작업이며 글을 쓰는 매 순간에 아이디어가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뉴스 기사, 문학적 감수성과 상상력으로 쓰여진 소설, 누군가의 인생의 역정을 다룬 글, 아름다운 쿠바 여행을 담은 글, 새롭게 발견되고 정리된 지식과 정보를 다룬 글, 소소한 자신의 일상과 감정을 묘사한 글, 소비자를 구매행동으로 인도하기 위한 제품 설명서, 자신의 기업에 자금을 유치하기 위한 투자자들을 위한 제안서, 하루에도 몇만 권씩 출판되는 책들, 심지어는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글도 자신의 사회적 네트워크로 형성된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공감받기 위해 쓰여진다.
모든 글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신문, 잡지, 종이책 또는 블로그, 페이스북과 같은 미디어에 쓰여진다는 점이다. 미디어(media)란 인간 사회에서 자신의 의사나 감정 또는 객관적 정보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마련된 수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디어 덕분에 글은 세상의 군중과 사용자들에게 광범하게 전달된다. 미디어의 힘과 권력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다양한 미디어들 중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스팀잇 같은 소셜 미디어는 글쓴이와 독자들간의 실시간 상호작용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다중의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던 전통적 미디어과 비교하면 창작자와 사용자의 소통은 혁명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독자는 글을 읽어주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창작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지어 창작자의 기획에 아이디어를 주기도 하고 내용에 대한 조언과 문제제기도 한다.
그러나 뉴미디어의 등장과 매스미디어의 보급으로 인해 현대사회에서 미디어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이 사는 사회 전체를 통괄하고 제어하는 기능까지도 떠맡게 되었다. 미디어를 소유하여 비즈니스에 활용하는 기업을 미디어 기업이라고 하는데,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출현으로 사용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이 미디어를 소유하고 활용하게 되었다. 매스미디어가 정보를 일방적으로 보내는 활동을 한다면 소셜 미디어는 상호작용에 기반한 정보와 메시지의 소통 관계를 운영한다.
모든 글은 독자와의 소통하기 위해 쓰여진다. 그런데 모든 글은 매스미디어에서 소셜미디어, 책과 웹이라는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읽혀진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미디어가 창작자와 독자의 상호작용과 소통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창작자는 독자와의 소통을 통해 공감과 이해, 그리고 지식 전달을 목적으로 글을 쓰지만 독자는 글을 통해 자기나름의 의미를 해석하고 소화한다. 이 과정이 미디어라는 공간에서 일어난다.
그래도 글쓰기는 너무 어려워요ㆍ읽기는 즐거운데 ㅎㅎ자연스런 글쓰기는 더더욱 넘나 넘사벽 ㅠㅠ [언어의 사용은 부족간 전쟁에서 연합을 이룰수있는 강력한 요소였다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는
순식간에 전 지구에서 네안데르탈인을 대체했다 ㅡ 전쟁과 문명] 이 아저씨에겐 소통이 무시무시한 파워네요
임대받은 파워로 보팅하니 숫자가 변하넹
감사합니다. 무엇이든 진입장벽이 있지요. 저도 글쓰기는 배우는 과정이지만 몇번의 단계는 넘어야 자유로울 거에요. 전 요즘 그림 그리기도 배우고 있는데 거기에도 만만치 않은 진입 장벽이 있더군요. 그렇게 배워야 더 소중한 거 일지도 모르겠어요.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그렇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대학생 때도 소통의 중요성을 모르다
대학원생이 되서야 이제야 알게되었네요..
소통이 되야 뭐라도 풀리고 일이 진행되네요...
글에서도 역시 소통이 메인이군요
소통 잘하고 싶네요 ㅠㅠ...
ㅎㅎ 네 어찌 보면 소통이 주요한 것이고 글은 수단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결국 소통이 목적이라는.. 좋은 글이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