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기> - 절망으로 가득 찬 이 책을 당신에게 권하는 이유

우리 앞에 거대한 벽이 있다고 해보자. 만일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 이 벽을 반드시 지나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여러 가지 방안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긴 막대를 들고 와서 뛰어 넘으려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아예 벽을 부수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되었든 이렇게 벽을 지나가서 목적지에 도달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영감을 준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어떨까? 벽을 넘지 못했다면? 뭐가 되었든 사람들은 그 사람을 이 한마디로 정의한다. 바로 ‘실패자’라고.
우리는 벽을 넘어 목적지에 도착한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 또한 성공해야 한다고 결심한다. 이런 가운데 철저하게 실패만이 있는 이야기가 있으면 어떠하겠는가? 보고 싶지도 않을 것이고, 보더라도 끝까지 읽을 수 없을 것이다. 너무 비극적이고 참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책으로 나온 많은 성공담보다 사람들 경험 속에 존재하는 실패담들이 훨씬 많다. 성공은 꽤나 적지만, 실패는 꽤나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을 해부해서 어떻게 성공하느냐를 따지기보다, 실패를 살펴보면서 어떻게 그곳에 빠지는지, 빠지면 나는 무슨 방식으로 이겨낼 것인지 살펴보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실패자로서 이야기를 하나 썼다. 그게 바로 공병기라는 책이다. 공병기는 ‘공군 병사의 이야기’의 약자다. 656일 동안 군대에 있으면서 있었던 일들을 적은 글이다. 보통 군대 관련 수기는 어떤 절망이 있어도 결국에는 행복이나 어떤 성취를 이룩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계속 불행한 상태로 있다가 밖으로 나온다. 이 책의 주인공은 계속 비관하고 절망한다. 각 이야기마다 차이가 있다면, 그 감정의 농도일 뿐이다.
이 책은 군대에 대한 절망만이 가득하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육체적인 폭력이 난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은 적절한 배려를 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럼에도 군대가 주는 정신적인 폭력이 어떻게 사람을 극단으로 몰아넣는지 계속해서 보여준다. 무너지는 내면이 어떻게 발산되는지 충분히 보여주게 썼다. 나는 이 책을 보고 당신이 가슴 아팠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서워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해했으면 좋겠다. 누군가에는 군대가 이리도 끔찍한 것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단순히 모두가 군대를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선 그 무언가를 느끼는 사람이 있었음을 인지하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비웃을지도 모른다. 이런 이상한 군대 생활을 한 사람은 필시 거의 없을 것이고, 대부분 버티는 일이니까. 지금도 주위에서(심지어 부모한테도) 그런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모두 같을 수 있을까? 나는 그 비웃음들에 그저 ‘이런 사람도 있다.’라고 응답할 뿐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것에 대한 일종의 부연 설명이다. 전부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도 그 질문들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받아들이려고 노력은 해보고 있다. 그렇기에 비웃기 전에 부디 그런 노력이라도 해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절망의 노래를 부른다. 책에서는 일부 희망을 품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그렇게 되었다. 평생 짊어지게 될 숙명이 되어버렸다. 떨칠 수 없다. 지금도 종종 꿈에서 그 때의 끔직한 기억들이 재생산 되어 내 앞에 나타난다. 내가 만들어낸 환상이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저 무기력하게, 비난이나 받으면서 얼굴을 찡그릴 뿐이다. 이런 면에서 어찌되었든 많은 사람 앞에 한 권의 책으로 공개하는 것은, 그 환상들을 현실로 끌어올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여전히 많은 질문들을 받고 있고, 그것에 충분히 답변할 수 있는 글들이 있다. 더 이상 말을 통해 기억을 꺼내고 싶지는 않다. 환상이 현실이 된다고 하더라도,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니 이제는 부디 물어보기 전에 읽어주었으면 한다. 어떤 비난을 받더라도, 바라는 건 그것뿐이다.
첨언
누군가 이 글들을 보고 나중에 미시사 사료로 쓰면 참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들은 찬사 중에서 가장 좋은 말이었다. 하나의 사례로 내 책이 이용될 수 있다면 그건 엄청난 영광이다. 실제로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능성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고 싶다.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그렇지 않더라도) 감사드릴 사람들이 너무 많다. 모두를 열거하고 싶지만, 기억력이 나빠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중에 서로 무안할 수 있으니, 여기서 공병기를 쓰기까지 지나쳐온 모든 인원들에게 경의와 감사를 드리려고 한다. 여러분들이 없었더라면 이 책은 탄생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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